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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남자 신부 - 6 [完]

[오이이와] 남자 신부 - 6

 

 

 

 

이와이즈미는 분주하게 가방을 싼 뒤 작은 이불 위에 누은 채 모빌을 보며 방긋방긋 웃는 아기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기를 낳은 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와 했던 약속을 완벽하게 지켰다. 비록 두 사람만의 조촐한 결혼식이었지만 이와이즈미가 그러길 원했기에 일부러 작은 교회 하나를 빌려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와 똑같은 차림으로, 똑같은 부케를 들고 이와이즈미가 입장했고 오이카와는 그때와 전혀 다른 표정으로 손을 맞잡았다.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조용히 리마인드 웨딩을 올렸다. 보통의 리마인드 웨딩이라 함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뒤에 다시금 처음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들에게 있어 두 번째 결혼식은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여전히 신혼을 만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 것은 사랑의 확인 아니라 확증이었다.

 

처음에 확실히 하지 못한 것을 이제라도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약속, 바로 신혼여행. 오이카와는 당시에 갔던 장소와 호텔을 그대로 예약해 이와이즈미가 육아휴직 기간에 들어가자 일부러 휴가를 내서 다녀왔다. 그때는 몰랐었던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와이즈미도 눈물과 후회로 지새웠던 길고 긴 밤의 시간을 환희와 미소로 채우고 왔다.

 

그동안 아기는 양쪽 부모님들이 번갈아 가며 봐주었고, 덕분에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일상. 오이카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 아기의 상태를 물었다. 우유는 먹었어? 잠은? 오늘도 많이 울어서 힘들었지? 이런 사소한 질문이 고맙고 행복했다. 물론 이와이즈미의 안부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잠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며 그때의 감격을 되돌아보던 이와이즈미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곤 겉옷을 챙겨 입고 아기를 품에 안았다. 능숙하게 아기띠를 맨 뒤 미리 챙겨 둔 커다란 가방까지 들었다. 기저귀를 비롯한 각종 아기 물품이 잔뜩 들어 있는 가방이었다. 아기의 정기 점진이 있는 날이어서 막 집을 나서는 길이다.

 

신생아 때부터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받고 있는 검진 덕에 아기가 얼마나 어떻게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자, 이제 갈까? 아기가 이와이즈미를 보고 방싯 웃었다. 오이카와를 똑 닮은 웃음이라고 생각하며 이와이즈미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꺄아, 하나에쨩-”

 

검진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마주친 간호사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인사했다. 오이카와가 근무하는 병원 내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은 덕분인지, 아니면 오이카와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병원 관계자들은 거의 다 이와이즈미와 아기를 알아봤다.

 

“안녕하세요.”

“네네, 안녕하세요. 사모님.”

 

이와이즈미가 어색하게 웃었다. 여전히 ‘사모님’ 소리는 잘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

 

“하나에쨩은 진짜 오이카와 선생님을 많이 닮았네요.”

 

아기가 오이카와를 닮았다는 말은 참 듣기 좋아 이와이즈미의 기분을 한껏 들뜨게 만들었다. 물론 자신을 닮았어도 좋았겠지만 내심 오이카와와 더 많이 닮기를 바랐었다. 일단 외모적인 면에서는 월등하니까. 하지만 눈동자는 영락없는 이와이즈미 자신이었다.

 

“검진 오신 거예요?”

“네. 지금 막 끝났어요.”

“그러시구나. 아유, 예뻐라.”

 

다른 아이들보다 잘 웃는 하나에가 예쁜지 간호사는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저 멀리서 백의를 휘날리며 오이카와가 날듯이 뛰어왔다. 하지메! 하지메! 크고 높은 병원이 오이카와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창피함과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이와이즈미는 커다란 혈관마크를 단 채 이마를 짚었다. 그런 것에 상관없이 오이카와는 살살 녹는 눈빛으로 아기를 살폈다. 공공장소에서는 좀 조용히 해, 멍청아. 나무라는 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나에쨩, 아빠 보고 싶었어요? 하루 종일 엄마랑 뭐 했을까? 응? 응?”

 

옆에서 간호사가 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연신 아기에게만 말을 거는 오이카와의 일방적인 소통에 이와이즈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간호사는 이만 가겠다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사라졌다. 아, 진짜 쪽팔려 죽겠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끌고 쉼터로 갔다. 환자나 보호자가 아닌 의료진들이 주로 휴식을 취하는 곳이라 비교적 사람이 적었다. 오이카와 덕분에 이런 장소를 속속들이 꿰고 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하아, 너는 진짜…….”


한마디 하려고 했건만, 아기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니 화낼 생각이 싹 사라졌다. 이와이즈미가 허탈하게 웃었다. 저렇게 좋을까? 어느새 아기띠에 있던 딸을 자신의 품에 안고 눈을 맞추며 까꿍- 하는 것이 영락없는 아이 아빠다. 아기도 제 아빠인 줄 아는 것인지 눈을 깜박이며 열심히 까꿍 중인 오이카와를 향해 연신 방긋방긋 미소를 날렸다.


“그렇게 좋아?”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이냐며 오이카와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걱정 마, 오이카와 씨는 하지메쨩도 많이 사랑하니까. 그 말에 이와이즈미도 픽- 웃었다.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회진 돌 시간 아니야? 어서 가야지.”

“응. 조금만 더 있다가.”


대답을 하면서도 오이카와는 아기를 들어 올리며 비행기 태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재미있지, 하나에? 더 해줄까? 이미 회진은 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결국 이와이즈미가 강제로 부녀를 떨어뜨려 놓은 후에야 겨우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졌다.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서는 오이카와의 등에 대고 이와이즈미가 조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사무실에서 기다릴게!”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기다린다고 하니 또 금세 화색이 돈다.


“응응, 빨리 끝내고 올게!”

“그러지 마, 끝까지 제대로…….”


아직 말을 다 맺지도 않았는데 오이카와는 벌써 저만치 멀어졌다. 저 딸 바보가, 제발 사람 말 좀 들어! 그러다가도, 이왕즈미는 점점 작아지는 오이카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이카와는 그야말로 가정적이고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이렇게 신경 써 주는 것이 늘 고마웠다. 이와이즈미는 아기를 안고 오이카와의 사무실로 향했다.


막 사무실로 들어서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그를 불렀다. 저기, 이와이즈미 씨……? 어느덧 ‘오이카와 하지메’로 불리는 것에 익숙해진 이와이즈미는 오랜만에 듣는 자신의 성에 옅게 미소 지으며 돌아섰다.


“네.”


돌아선 순간, 얼굴은 금세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 쿠라하시였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쿠라하시는 쭈뼛거리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무의식적으로 그만큼 뒤로 물러났다. 그런 이와이즈미를 보고 쿠라하시가 쓰게 웃었다. 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 그랬다.


“제가 많이 불편하신 건 알지만, 그래도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오이카와 선생님께 저에 대해서 잘 말씀해 주신 덕분에 잘리지 않고 지금까지 다닐 수 있었으니까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저와 만나시는 건 아무래도 껄끄러우실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말하게 되네요.”


이와이즈미가 도망이라도 칠까 싶어 쿠라하시는 더 이상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 있는 자리에서 곧바로 허리를 90도로 숙여 마음을 전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말에 이와이즈미도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일전에 있었던 일은 이미 충분한 사과를 받았으니 더는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재능이 있는 의사라고 토오루가 늘 말했었죠. 저는 단지 그런 훌륭한 의사가 사라지는 게 싫었을 뿐이에요.”

“네, 더 열심히 해서 꼭 오이카와 선생님 같은 의사가 되겠습니다.”

 

쿠라하시와 헤어진 뒤 사무실에 앉아 그간의 일을 돌아도던 이와이즈미는, 지금의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괜스레 웃음이 났다. 어릴 때부터 자주 보아온 친구이자 연인이자, 이제는 남편인 오이카와와 이런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될 줄이야. 그야 상상은 늘 했었다. 하지만 한번 어긋한 인연으로 인해 다시는 맛보지 못할 꿈이라고 생각했었다.

 

오이카와의 가슴에 새긴 깊은 상처를 회복시키지 못할 줄 알았건만, 그는 기꺼이 자신을 용서해 주었고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이 든 딸을 보니 더욱 뭉클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과 오이카와의 아이였다. 어려운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나 얻은 아이인 만큼 많은 애정을 쏟았다. 이와이즈미는 통통한 아기의 볼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귀엽고, 솔직하고, 건강하고,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줘.

 

잠시 후, 일을 마치고 온 오이카와는 소파에 반쯤 누워 아이를 안은 채 잠든 이와이즈미를 발견했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잠들어 있었다. 하얀 가운이 더러워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으며 오이카와는 소파 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와이즈미의 이마에 입술을 꾹 눌렀다. 그리고는 자신과 똑 닮은 아기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고마워, 하지메. 정말, 정말로 많이 사랑해.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에게는 두 번째 천사가 찾아왔다.

 

 

 

*

 

 

 

- 두 번째 결혼식

 

나는 오늘 오이카와와 결혼한다.

 

새하얀 턱시도에 같은 색의 베일을 쓰고. 이미 한 번 했던 일이라 별로 떨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처음보더 더 긴장하고 있다. 부케를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려 잘못하면 떨어뜨릴 것 같다. 그런 내 손을 누군가 꼭 잡아 주었다.

 

“긴장할 거 없어.”

 

하나마키가 따뜻하게 웃는다. 하나마키는 우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츠카와와 함께 흔쾌히 이 한적한 시골 교회로 달려와 주었다. 부쩍 자란 어린 아들도 함께였다.

 

“옛날 생각난다.”

 

그 옛날, 이라는 건 아마도 우리의 첫 번째 결혼식을 말하는 것이겠지. 아아, 나도 기억나. 긴장이 아니라 오해와 슬픔으로 잔뜩 굳어 있던 내 모습이. 오이카와 얼굴은 뭐, 말할 것도 없지.

 

“너희가 결혼한다고 해서 진짜 놀랐었는데. 화해한 줄 알았거든.”

“둘 다 경직된 얼굴이라 더 놀랐었겠다.”

“뭐 그렇지. 결혼한다는 놈들 표정이, 무슨 사람 하나 죽이고 온 것 같았으니까.”

 

특히 오이카와가. 그렇게 설명을 덧붙인다. 정말이지 그때는 그랬다. 결혼인지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부모님들이 갑자기 정하신 탓도 있지만 서로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했으니 행복할 리가 없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래서 다른 의미로 떨린다.

 

“아, 지금 잇세이한테 문자 왔는데, 오이카와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대기실을 헤맨다고 어떻게 좀 해보래.”

 

보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다. 아마 나보다 더 긴장한 얼굴로 왔다 갔다 하고 있겠지.

 

“걔는 너보다 더 긴장했나 보다.”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하나마키가 킥킥 웃는다. 너 준비 다 됐다고 알려 줘야겠다. 문자로 찍으려던 하나마키는 이내 핸드폰을 내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니다. 직접 가서 말할래. 가서 오이카와가 얼마나 얼빵하게 굳어 있는지 좀 봐야겠어.”

 

그러고는 말릴 새도 없이 나가 버렸다. 피식- 웃음이 났다. 다시 결혼식을 하자던 오이카와의 말은 지금 현실이 되었고, 그래서 너무 기쁘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척이 없다는 것이다. 하객은 일절 없이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만 불렀다. 아무리 조촐하게 한다 한들 두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자면 둘은 하객이 아니라 도우미다. 뭐, 이제와 그런 명칭이 뭐가 중요하겠냐만은.

 

잠시 후, 시간이 됐다는 하나마키의 목소리에 괜찮아졌던 마음이 다시 술렁인다. 문을 열고 얼굴만 빼꼼 내민 하나마키는, 실컷 웃고 왔는지 볼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어지간히도 오이카와를 놀렸나 보다.

 

“알았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 진짜. 바보 같이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거야? 겨우 한 걸음 떼자 하나마키가 피식 웃는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걸어.” 

 

그 말에 조금 안심이 되어 다시 한 걸음 뗐다. 하나마키는 자신이 부케를 받아도 되냐며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난 상관없는데, 마츠카와가 가만 안 있을 것 같은데? 그러자 또 이렇게 받아친다. 우리도 다시 결혼하자고 하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럴지도 모르겠네.”

 

웃으며 대답은 했지만 여전히 손이 떨렸다. 문이 열리자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무척 따뜻했다. 마치 우리의 결혼식을 축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빛줄기가 내려왔다. 몇 걸음 더 걷자 예배당 입구 앞에 서 있는 오이카와가 보였다. 블랙 턱시도를 입은 모습이, 그때와 똑같다. 옆에 서 있는 마츠카와가 손가락으로 오이카와를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얘도 엄청 긴장했어,’라고. 과연, 바싹 굳은 얼굴이다.

 

예배당 안을 응시하던 오이카와는 마치 알고 그러는 것인듯 슬며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다. 아아, 나는 저 미소가 좋다. 오롯이 나만을 향한 미소. 천천히 다가가 오이카와의 손을 잡았다. 길고 하얀 면사포가 바닥에 너풀거리며 걷는 걸음마다 따라온다. 듬직한 팔에 팔짱을 끼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처음보다 작고 약소한 결혼식이지만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고 두근거린다. 그리고 이 떨림이 참 기분 좋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마츠카와와 하나마키가 자리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마츠카와의 품에는 두 사람의 아이가, 하나마키의 품에는 우리의 아이가 안겨 있었다. 아마 나는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나눠 끼며 다시금 사랑을 고백하는 우리.

 

나는 오늘 오이카와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