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다른 세계 - 2화

히비아 2016. 11. 22. 22:17

[오이이와] 다른 세계 - 2화 

 

Written by. Sanzo

 

 

 

오이카와 토오루

 

X

 

이와이즈미 하지메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와이즈미는 가운으로 몸을 가린 채 발치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입기는 해야겠는데, 어제 하루 종일 땀을 흘려가며 입고 다녔던 옷을 다시 입는 건 찝찝했다. 게다가 속옷도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오이카와의 옷장을 열려는데,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낯선 목소리의 누군가가 정중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오이카와의 집에 그가 아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이 괜스레 신경에 거슬렸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잠시 후 손잡이가 부드럽게 돌아가며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깔끔한 수트 차림에 단정한 외모. 대체 뭘 하는 사람일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는 가지고 들어온 커다란 종이 가방을 문 앞에 내려놓았다. 갈아입을 옷입니다. 그 말을 남긴 채 다시 조용히 나갔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남자가 놓고 간 가방을 들여다보자, 과연 안에는 속옷부터 겉옷까지 다 들어 있었다. 누가 준비한 것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이카와 말고 누가 또 있으랴. 좋으나 싫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가져다 준 옷으로 갈아입은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넓은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자식, 진짜 좋은 집에 사네. 아무리 집에 대한 안목이 없다 해도 현재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이 최고급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까 이와이즈미에게 옷을 가져다 준 남자가 탁 트인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이와이즈미를 확인했다. 남자의 정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이와이즈미는 어딘지 모르게 그가 익숙하게 보였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미간을 찌푸리는데, 고맙게도 그가 알아서 자기소개를 했다.

 

“소파에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궁금한 점이 많으실 줄은 알지만 커피를 내리는 중이라서요.”

“아, 네.”

“그렇게 경계하실 거 없습니다. 저는 보스, 그러니까 오이카와 님의 수하에 있는 사이토라고 합니다.”

 

마치 자신은 별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듯 ‘수하’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와이즈미는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그가 단순히 수하라는 명칭으로 불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더라니. 사이토라면 오이카와 녀석의 최측근이잖아. 오른팔 주제에 잘도 피라미인 척 하는군.

 

거의 마주친 적은 없지만 오이카와를 통해 사이토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일이나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오이카와가 ‘사이토’에게 맡기라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네. 부탁합니다.”

 

잘 모르는 상대와 마주하는 건 딱히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검사 특유의 예리한 눈빛으로 사이토를 응시하며 관찰했다. 그러는 사이, 사이토는 방금 내린 커피를 들고 이와이즈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은은한 커피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드시죠, 하며 이와이즈미에게 잔을 밀어 준 사이토는 자신이 먼저 한 모금 마셨다. 그가 마시는 것을 본 후에야 이와이즈미도 커피 잔을 들었다.

 

“여긴 오이카와의 집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자기도 모르게 취조하는 듯한 말투가 나왔지만 이와이즈미는 자각하지 못했다.

 

“맞습니다. 보스에겐 여러 채의 집이 있지만 이곳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도쿄 시내의 전망이 한눈에 보이는 게 마음이 들어서, 라고 하셨지요.”

 

사이토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그랬다. 넓은 거실의 창밖으로 복잡한 도시의 전경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탁 트인 시야로 인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표정을 바꾼 이와이즈미가 불퉁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겠지. 초호화 멘션의 최고층에 살고 있으니. 거기다 복층형이라, 진짜 비싼 데 사네.”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거실 한편에 있는 계단으로 향했다. 복층형 집이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번듯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혼잣말을 들은 사이토가 소리 없이 웃더니 설명을 이었다.

 

“원래 이 집은 저도 거의 드나들지 않는 곳입니다만, 오늘은 특별히 와서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보스가 워낙 좋아하시는 공간이라 대체로 본인 외의 사람은 잘 들이지 않으십니다, 라고 한마디 더 덧붙였다. 하지만 이와이즈미의 귀에는 뒷 설명은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직 ‘지시’를 받고 왔다는 말만 맴돌 뿐이었다. 그러니까 날 감시하라고 보냈단 말이지? 하! 어이가 없군. 자신이 도망치기라도 할까 봐 감시자를 붙여 놓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마주 앉아 일일이 감시하지 않아도 아무데도 가지 않을 테니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라고 전해 주시죠.”

 

가시 돋힌 말에도 사이토는 흔들림이 없었다.

 

“제 역할은 당신을 감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왜 있는 겁니까? 당신이 오이카와의 오른팔인 걸 내가 모를 줄 압니까? 그런 최측근을 붙였다는 건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라는…….”

“점심 약속을 지키지 못하실 것 같다고, 식사를 잘 챙겨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뭐, 그,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할 말을 잃은 이와이즈미가 황망한 표정으로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뭘 챙기라고? 밥? 지금 내 밥을 챙기러 왔단 말이야? 장난하냐?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이렇게 보여도 요리는 꽤 잘하는 편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요리는 나도 잘해! 라고, 하마터면 충동적으로 대꾸할 뻔했다. 사이토가 감시 역할로 붙은 게 아니라는 말은 여전히 믿을 수 없었지만 의심한다고 해서 그가 돌아갈 것도 아니었기에 좋으나 싫으나 오이카와가 올 때까지는 함께 있어야 했다.

 

“그럼 쉬고 계세요. 아직 점심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까요.”

 

정말로 식사 때 말고는 무엇을 하든 관심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사이토는 빈 잔을 들고 유유히 주방으로 향했다. 멍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와이즈미 역시 조용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오이카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와이즈미의 이름이 뜨면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곧바로 받는 오이카와였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받지 않았다.

 

그냥 끊으려는 찰나,

 

- 응, 이와쨩.

 

오이카와의 목소리였다. 이와이즈미는 기다렸다는 듯 짜증을 쏟아 냈다.

 

“너 뭐 하자는 거야? 왜 감시자를 붙였는데? 그렇게 날 못 믿냐?”

 

말을 하고 나서 이와이즈미 본인이 가장 놀랐다. 날 못 믿냐니, 내가 이 자식이랑 무슨 사이라고 이런 말까지 하는 거지? 당황할 겨를도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 당연히 믿지. 사이토는 그런 뜻으로 보낸 게 아니야. 점심 약속을 저녁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아서, 이와쨩 식사 챙기라고 보낸 거야.

“웃기지 마! 내가 애냐? 밥 정도는 알아서 먹을 수 있어.”

- 알아. 그래도 맛있는 걸 먹게 해 주고 싶었단 말이야. 그래 보여도 사이토, 이쪽 세계로 오기 전엔 일류 셰프였어. 아마 점심 때 엄청난 걸 먹게 될 거야.

 

뭐, 셰프? 기가 막혀 뭐라고 반박하려는데, 일 때문에 끊어야 할 것 같다며 오이카와가 먼저 선수를 쳤다.

 

- 점심에 예약했던 곳은 저녁으로 바꿨으니까 이따가 꼭 가자. 그럼 끊을게. 사랑해.

“야, 이…….”

 

뚜뚜뚜-

 

이미 끊어진 휴대폰을 바라보며 짧게 욕설을 내뱉었다. 대체 내가 왜 이 자식에게 휘둘리고 있는 거야?  

 

 

 

***

 

 

 

이와이즈미에게서 온 전화를 끊으며 오이카와는 못내 아쉬운 얼굴을 했다. 일을 하는 중만 아니라면 몇 시간이고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기를 거래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결코 전면에 나서는 일이 없었다. 거래는 언제나 부하 중 하나에게 맡겼다. 그리고 자신은 근처에 세워 놓은 차 안에서 실시간으로 거래 상황을 체크했다. 귀에 꽂고 있는 리시버를 통해 부하와 거래 상대의 대화가 또렷하게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오이카와 대신 거래에 나선 부하가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무기 구입을 원하는 상대방은 누군가를 찾는 듯 자꾸만 고개를 빼고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오이카와 씨는 안 오십니까?” 

 

거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나오자 부하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대답했다.

 

“보스는 안 오십니다. 거래의 원칙을 모르시는 거라면…….”

“아, 아뇨. 오이카와 씨가 직접 오시지 않는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냥 혹시나 싶어 물어본 거니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무기가 필요하긴 한데, 오이카와를 통하지 않고서는 단 한 정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그의 부하에게 밉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구매하고 싶다고 말씀하신 무기는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부하가 손짓하자 그보다 더 아래에 있는 부하 둘이 커다란 나무 상자를 가지고 왔다. 성인 남자 둘이서 들기에도 벅찬지 끙끙거리며 겨우 들고 왔다.

 

“각종 총기류 스물 다섯 정입니다. 확인해 보시죠.”

 

그가 상자의 뚜껑을 열자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의 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래자는 직접 만져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오오, 과연. 역시 훌륭합니다. 모두 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전 통화로 말씀드린 금액을 보여 주시죠.”

 

그러자 남자가 의자 옆에 세워 두었던 007가방을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잠금을 해제한 뒤 오픈한 채로 보여 주었다. 가방 안에는 지폐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액수 확인을 마치자 서로가 자신이 챙겨야 하는 물건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구매자인 남자가 갑자기 투덜대며 말했다.

 

“정말이지 요새는 이런 거래를 하는 것도 참 힘들지 않습니까? 누구더라, 검사 중에 이와이즈미라는 놈 말입니다. 그놈이 요새 눈에 불을 켜고 야쿠자를 잡으러 다닌다지요.”

 

오이카와의 부하가 움찔- 손끝을 떨었다. 자신의 귀에 꽂혀 있는 리버스에서 낮고 서늘한 숨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상대방은 계속해서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했다.

 

“그깟 놈이 무슨 대수라고 그렇게들 몸을 사리는지. 대체 야쿠자가 언제부터 경찰이나 검찰들 눈치를 봤답니까? 그런 자식은 그냥 없애 버리면 그만인데. 아주 거슬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이카와의 부하는 빳빳하게 굳은 얼굴로 앉은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리 물어도 대답은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더니, 잠시 후 서 있던 곳에서 옆으로 비켜서고는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 오이카와의 수하로 있는 모든 자들이 다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영문을 모르는 거래자만 멀뚱히 앉아 있을 뿐.

 

“날 찾던데.”

 

허리를 숙인 남자들 사이를, 마치 갈라진 홍해에서 산책하듯 가뿐히 걸어오는 한 남자. 오이카와였다. 조금 전에 막 불을 붙인 담배를 손에 든 채 오이카와는 자신의 부하가 앉아 있었던 그 의자에 앉았다.

 

“누구…….”

“내가 오이카와 토오루인데. 날 만나고 싶어 했던 거 아닌가?”

“다, 당신이 그 오이카와……?”

 

분명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얼굴임에도, 남자는 오이카와가 나타난 순간부터 덜덜 떨고 있었다.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 근데 그거 알고 있나? 난 내가 허락한 사람이 아닌 자가 내 얼굴을 기억하는 걸 싫어해. 그래서 앞에 잘 나서지 않는 거야.”

 

상대방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도 모자라 머리카락까지 쭈뼛 설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이거 어쩌지? 난 네가 내 얼굴을 기억하길 바라지 않는데.”

“아, 아무에게도…….”

“아냐, 아냐. 다들 그렇게 말해 놓고 꼭 실수를 하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리해 줬어.”

“으, 으읏……”

 

겁에 질린 남자가 도망을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어느새 그의 뒤에는 오이카와의 부하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를 따라왔던 자들은 완전히 제압되어 있었다.

 

“이제 왜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는지 잘 알았지?”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름이 너무 유명한 데에 반해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유명세에 비해 알려진 바도 거의 없어 오이카와를 만나도 그가 오이카와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거래를 하러 나온 남자는 후회했다. 어째서 궁금해했을까? 모두가 모르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인데.

 

오이카와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뒤에 서 있는 부하를 향해 말했다. 잘 정리하고 와. 마치 헝클어진 방 정리를 하라는 듯 별거 아니라는 말투였다. 게다가 싱긋 웃기까지 했다. 거래자의 눈에 비친 그 웃음은 사신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오이카와가 뒤로 돌아 아직 그곳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는데, 등 뒤에서 탕탕탕- 세 발의 총성이 들렸다. 곧이어 또 다시 여러 발의 총성이 허름한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오이카와를 보더니 재빨리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는 차 안으로 매끄럽게 들어가 앉는 오이카와의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거래자가 이와이즈미의 이름만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만 지껄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새로운 무기를 획득한 뒤 기분 좋은 얼굴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아까 차 안에서 리버스를 통해 대화를 듣고 있던 오이카와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이내 살기를 내뿜는 눈동자에 운전석에 앉아 있던 그는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오이카와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았다면, 살기의 기세에 눌려 그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갔을지도 몰랐다.

 

“집으로.”

“예.”

 

차가 출발하자 오이카와는 의자 헤드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깟 놈이 무슨 대수라고 그렇게들 몸을 사리는지. 대체 야쿠자가 언제부터 경찰이나 검찰들 눈치를 봤답니까? 그런 자식은 그냥 없애 버리면 그만인데. 아주 거슬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리버스를 통해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그냥 없애면 된다고? 누가 누굴 없애겠다는 거지? 쓰레기만도 못한 게 감히……! 울컥 치솟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오이카와는 부단히도 애를 썼다. 이윽고 집에 도착한 그는 문을 열자마자 이와이즈미를 찾았고, 방에서 나오던 이와이즈미는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오이카와의 품에 안겼다.  

 

야, 야! 사람 있잖아, 사람. 오이카와가 귀가하자 현관 앞에서 그를 맞이하며 정중하게 인사를 한 사이토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이와이즈미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오이카와를 밀어냈다. 보통 때는 이와이즈미의 반응에 금세 물러서던 오이카와가 이번엔 어쩐 일인지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며 놓아주지 않았다.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다, 사이토. 돌아가도 좋아.”

“예. 쉬십시오, 보스.”

 

사이토가 돌아간 뒤에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안은 채 한참을 놓지 않았다. 몇 번 밀어내다 소용이 없자 포기했는지 이와이즈미는 한숨만 내쉬었다.

 

“야, 소파에 좀 앉게 놔 봐.”

“같이 가.”

“하아…….”

 

아이처럼 달라붙어 작은 걸음으로 겨우 이동한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서도 팔을 풀지 않는 오이카와로 인해 불편한 자세로 있어야 했다.

 

“왜 이러는데? 밖에서 무슨 일 있었냐?”

 

그답지 않게 축 처져 있는 것이 이상했는지 이와이즈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음, 그냥 좀. 기분이 안 좋아. 그러면서 이와이즈미의 허리를 꽉 껴안은 오이카와가 엎드리는 자세로 바꾸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적당히 하고 회복해라. 나까지 기분 처진다.”

“에, 그럼 안 되지. 이와쨩 기분이 안 좋으면 나도 안 좋으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웃는 얼굴로 앉는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황당한 시선을 보냈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와쨩, 키스해 줄래?”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요구였다. 그래서 오히려 화도 못 내고 입술만 벙긋거리고 말았다.

 

“한 번만 하자. 응? 키스해 줘, 이와쨩.”

 

두 번째 요구가 있은 후에야 정신을 차린 이와이즈미가 눈썹을 구기며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키스는 정보 풀 때만 하는 거 아니었냐? 내가 근신인 동안엔 아무 정보도 안 풀겠다더니 왜 마음이 바뀐 거야?

 

“정보 아니야. 그것 때문에 하자는 거 아니라고.”

“그럼 왜?”

“그냥 하고 싶어.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까.”

“너는 진짜…… 그런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하냐.”

“사실인데 숨길 이유가 없잖아.”

 

감정에 솔직한 오이카와는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어 서슴이 없었다. 하지만 연애나 사랑에 숙맥인 이와이즈미 입장에서는 난감한 요구였다.

 

“키스해 줘. 아니면 내가 해도 돼?”

 

해 주겠다고도, 그렇다고 하라고도 말할 수 없어 입술만 달싹거리는데, 오이카와의 행동이 더 빨랐다. 비록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거절하는 말이 없었으니 해도 괜찮겠다고 나름대로 판단한 것이다. 이와이즈미가 물러서지 못하게 하려는 듯 손으로 작은 머리를 붙잡고는 거칠게 밀어붙였다. 살살 달래듯 부드럽게 다가왔던 기존의 키스와 너무도 달라 이와이즈미는 그저 오이카와의 어깨를 잡은 채 그가 하는대로 따라갔다.

 

오이카와의 혀가 다급하게 이와이즈미의 입술을 밀고 들어갔다. 준비가 되지 않았던 탓에 억지로 벌어진 입술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벅찬지 달뜬 소리를 내뱉었다. 오이카와는 도망치려는 이와이즈미의 혀를 붙잡아 물고 빨며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거부하던 이와이즈미도 키스가 깊어지자 자연스럽게 오이카와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벌렸다.

 

자기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지 인식할 겨를도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움직였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끌리는 제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억눌러 왔다. 의식이 될 때는 그럴 리가 없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으며 나오지 못하게 봉인했다. 하지만 이렇게 몸을 맞대고 있으면, 흘러넘치는 감정을 자제하기 어려웠다.

 

이와이즈미의 자세가 완전히 소파에 누운 모습이 되었을 때 비소로 맞닿은 입술이 떨어졌다.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그저 달아오른 마음을 대변하듯 달뜬 숨만 뱉을 뿐이었다. 소파를 짚고 있는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하마터면 이와이즈미의 상의 안으로 들어갈 뻔했다. 자신이 하려고 했던 행동을 깨달은 오이카와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힘을 주었다. 소파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듯이.

 

“이제 만족하냐?”

 

자신의 입술이 서로의 타액으로 촉촉하게 젖어 무척이나 매혹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모른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오이카와의 손끝이 다시 한 번 파르르 떨렸다. 지금 네가 어떤 모습인지 알면 놀랄 텐데.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키며 그가 픽- 웃었다.

 

“무드 없어, 이와쨩. 방금 키스했는데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그럼 뭐. 어쩌라고.”

“어쩌긴. 한 번 더 해야지.”

“뭐? 야, 절대 싫…… 으읍!”

 

거절의 말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오이카와는 얼른 입을 맞췄다. 원래부터 딱 맞는 짝이었던 것처럼 맞닿은 입술에는 빈틈이 없었다. 언제나 사랑한다고 적극적으로 표현해 주는 오이카와. 그런 오이카와를 향한 이와이즈미의 마음은 점점 더 커져갔다. 가랑비에 조금씩 옷이 젖어도 모르는 것처럼 아직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이미 시작된 마음은 멈출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