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다른 세계 - 6화

히비아 2016. 12. 7. 23:56

[오이이와] 다른 세계 - 6화 

 

Written by. Sanzo

 

 

 

오이카와 토오루

 

X

 

이와이즈미 하지메 

 

 

 

오이카와는 사이토를 통해 근래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 사고 소식을 보고 받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오이카와의 심기를 거스르는 ‘기시노’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최근 기시노 케이스케가 이끄는 조직이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그는 보스께서 무기를 독점하고 있는 것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여기저기 들쑤시며 일을 만들고 있달까요.”

“무시해. 그깟 애송이는 그냥 두면 알아서 찌그러질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오이카와는 기시노 케이스케를 상대로 보지도 않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고 사람들을 선동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문제가 터졌다. 기시노가 이와이즈미와 접촉한 것이다.

 

늦은 시간.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청사를 나선 이와이즈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랜만에 복귀한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뛰어다녔더니 금세 피로가 몰려온 것이다. 몇 번 고개를 흔들며 쏟아지는 밤을 몰아내고 막 차 키를 꺼내려는 때였다.

 

“이와이즈미 씨?”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돌아보니 젠틀하고 훤칠한 키를 가진 남자가 싱긋 웃고 있었다. 누구시죠? 다소 경계하는 듯 묻는 말투에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이상한 사람이 아니니 너무 경계하지 마세요. 저는 오이카와 씨 밑에서 일하는 기시노 케이스케라고 합니다.”

 

오이카와라는 이름이 나오자 이와이즈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기시노는 빠른 눈썰미로 그것을 포착했고, 더 친근하게 보이기 위해 눈썹을 휘며 웃었다. 오이카와 씨가 모시고 오라고 말씀하셔요.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선하기 그지 없었지만, 이와이즈미는 미간을 찌푸리며 코웃음을 쳤다.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네?”

“오이카와가 나를 데려오라고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재미있나? 놀란 척하니까 정말로 믿을 거라고 생각했어?”

“무슨…….”

 

갑자기 돌변한 태도에 기시노는 당황했다. 왜 저렇게 당당한 거지? 오이카와의 이름을 대면 금방 따라나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눈빛이 달라지며 극도로 경계하는 빛을 띤다.

 

“오이카와의 부하는 절대로 ‘오이카와 씨’라고 부르지 않아. 그런데 너는 두 번이나 그렇게 말했어. 그렇다는 건 오이카와가 보낸 놈이 아니라는 거지. 뭐 하는 놈인데 와서 아는 척이야?”

 

그러자 기시노가 쯧, 하고 혀를 차며 표정을 바꾸었다. 부드럽고 선한 인상을 주었던 얼굴은 사라지고 뒷골목 세계의 사람임을 나타내듯 비열하고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아,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

“검사를 얕잡아 본 게 잘못이지.”

“어쩔 수 없네. 신사적으로 모시려고 했더니 다 알아 버려서.”

“망했다는 거 알았으면 조용히 돌아가라.”

“아니, 그렇게는 안 되지.”

“뭐, 크헉……!”

 

눈앞에 있는 기시노 한 사람에게만 주목하고 있던 이와이즈미는, 순식간에 뒤에서 덮치는 다른 사람의 습격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옆구리를 세게 얻어맞고 고꾸라지듯 주저앉은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차피 조용히 따라올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 이게 다 오이카와 토오루 때문이니까. 당신이 오이카와와 가깝다는 거 다 알아. 그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면서. 이렇게 소리도 없이 사라진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하려나?”

 

기시노의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이와이즈미는 그가 자신과 오이카와의 진짜 관계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이토가 둘러댄 거짓말대로 그저 친하게 지내는 정도로만 아는 것이었다.

 

“뭘, 어떻게, 쿨럭, 반응해. 후우……, 일하는 중인가 보다, 하겠지.”

 

기습적인 옆구리 공격으로 숨이 고르게 쉬어지지 않아 이와이즈미는 여러 차례 기침을 했다. 만약 이 자식이 내가 오이카와랑 연인 사이인 걸 알았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대하지 않았겠지. 더 숨통을 조이고, 오이카와를 압박하려고 했을 거야. 그러니 절대로 티를 내선 안 돼.

 

“흐음, 글쎄. 그래도 야쿠자가 아닌 검사 친구니까 좀 동요하지 않을까?”

 

동요 정도가 아니라 널 죽이려고 할 거다. 이와이즈미는 속으로 혼잣말을 한 뒤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기시노의 부하가 뒤에서 그를 결박했다. 양쪽 팔을 뒤로 돌려 꽉 잡고 억지로 기시노의 차로 밀어 넣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그럴수록 뒤로 꺾인 팔이 아파 결국 차에 올라타고 말았다. 기시노는 그런 이와이즈미를 빤히 바라보며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오이카와 토오루, 당신이 언제까지 이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당신이 아끼는 걸 하나씩 부숴 버릴 거야. 자,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그 일의 첫 번째가 될 것 같아. 이름부터가 처음에 아주 잘 어울리잖아? 그나저나 생명의 은인이 잡혔는데, 당신은 과연 얼마나 태연할 수 있을까?

 

 

 

***

 

 

 

오이카와는 손에서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제 곧 퇴근할 거라는 연락을 받은 게 두 시간 전이었다. 그런데 이와이즈미는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번의 스캔들은 어떻게든 무마했지만, 더 이상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이와이즈미가 일하는 시간에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 오이카와였다. 때문에 청사를 나서기 전 보낸 이와이즈미의 문자를 받고 내내 들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랑하는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해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꺼져 있다는 메시지만 나올 뿐, 듣고 싶은 이와이즈미의 목소리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 괜스레 불안감이 고조되어 사이토에게 연락을 취했고, 사이토는 5분도 되지 않아 그의 집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는 길에 잠깐 알아봤는데, 이와이즈미 씨는 제 시간에 퇴근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건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겼거나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사이토는 오이카와의 전화를 받은 즉시 이와이즈미의 행적을 쫓았고, 정보가 부족해 그가 정시에 청사를 나섰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너무 걱정은…….”

 

우선 오이카와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전하는 때였다. 갑자기 오이카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고, 이와이즈미의 이름이 뜨자 대화는 중단되었다.

 

“이와쨩!”

 

기다렸던 만큼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지만 돌아오는 목소리는 바라고 바라는 이와이즈미가 아니었다.

 

- 이와쨩, 이라고? 하하하. 정말 귀여운 애칭이네. 평소에 그렇게 부르나 봅니다? 이거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닌가 본데.

 

목소리와 말투만 들어도 상대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듯이, 오이카와는 그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교활하고 얍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 누구야.”

 

오이카와의 얼굴에서 냉기가 떨어졌다. 전화를 받는 순간만 해도 간절한 얼굴이었던 그가, 지금 당장 사람을 찔러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살벌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곁에 서 있던 사이토는 일순간 긴장으로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이카와가 화가 났다. 보통의 화가 아닌, 들끓는 분노로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릴 것만 같은 화(火)였다. 

 

- 헤에, 화난 겁니까? 야쿠자들 사이에선 흔히 있는 일일 텐데요. 지인 납치, 이런 거 말입니다.

“그 말은 곧, 네가 이와이즈미를 납치했다는 거로군.”

- 딩동. 그렇습니다.

 

기시노는 신이 난 아이처럼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전화를 받고 있는 오이카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른 채 그저 이 상황을 즐겼다. 오이카와는 냉담한 얼굴과는 달리 지극히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 역시 얘기가 빠르시네. 원하는 거라면 딱 하나죠. 무기에 대한 모든 권한을 넘길 것.

 

말을 하고도 기시노는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 지르긴 했는데, 만약 오이카와가 거절한다면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이 된다. 게다가 납치한 상대가 아무리 그와 인연이 있다 해도 검사였다. 죽여도 야쿠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타격을 입을 일이 없다. 설령 오이카와가 죽인 것이라 누명을 씌워도 말이다. 오이카와 토오루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혐의를 벗을 것이다. 그래서 질러 놓고도 초조했다.

 

“좋아.”

 

하지만 오이카와는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의외의 선택에 기시노의 얼굴애서 노골적인 화색이 돌았다. 그가 뭐라 더 말하기 전에 오이카와가 얼른 이야기를 덧붙였다.

 

“알았으니까 네가 있는 곳 당장 말해.”

- 그건 안 되죠. 그러겠다 해놓고 여기 와서 갑자기 말을 바꾸면 곤란하니까요. 

 

슬금슬금 꼬리를 빼며 오이카와를 가지고 놀려는데, 귓가를 얼어붙게 만드는 냉랭한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흘렀다.

 

“만약 내가 너 있는 곳을 조사해서 찾아낸다면 그 땐 협상이고 뭐고 없어. 그냥 죽는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네 입으로 직접 장소를 말한다면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지. 자, 어느 쪽을 선택할 거지?”

 

얼굴을 맞댄 채 하는 대화가 아닌데도 기시노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드는 것만 같았다. 결국 기시노는 자기 입으로 직접 장소를 말했다.

 

“알았다. 곧 가지. 내가 갈 때까지 이와이즈미가 무사해야 할 거다.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상한다면 그 역시 네 죽음과 이어질 일이니까.”

 

그리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인질을 잡고 있는 쪽은 기시노인데, 협박을 하는 건 오이카와였다. 오이카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사이토에게 눈짓했다.

 

“당장 차 준비해.”

 

밖으로 나서는 그의 눈빛에는 살기와 분노가 어려 있었다. 한편, 같은 시각 기시노의 아지트에서는 시답잖은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통보하듯 끊긴 전화에 기시노가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뭐야! 자기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신경질을 내는 그를 보며 이와이즈미가 혀를 찼다. 의자에 앉아 꽁꽁 묶인 채였지만 그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그러게 왜 남의 핸드폰을 함부로 쓰냐?”

“당신 전화라면 무조건 받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전화해서 망신만 당하고 끊은 거 아니야?”

“닥쳐!”

 

퍽-

 

기시노의 주먹이 이와이즈미의 복부에 꽂혔다. 이와이즈미는 쿨럭쿨럭 기침을 하면서도 도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지질한 새끼. 꼴에 야쿠자라고 폼 잡기는.” 

“그래, 나 야쿠자야! 그러니 당신도 말 조심해. 자꾸 날 자극하면 그냥 죽일 거니까.”

“그러던지.”

“뭐야?”

“나 하나 죽는 건 괜찮은데, 네가 이런 일을 벌인 것 때문에 네 부하들까지 다 죽으면 그건 누가 책임질 건데?”

“내가 그러게 둘 것 같아?”

 

이와이즈미는 대답 대신 우습다는 듯 노골적인 비웃음을 선사했다. 그것에 화가 난 기시노가 또 한 번 주먹을 휘둘렀고,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오른쪽으로 휙 돌아갔다. 입 안과 입술이 터져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바닥에 침을 뱉자 붉은색 피가 잔뜩 섞여 나왔다.

 

“오이카와가 나 건드리지 말라고는 안 했나 봐? 이렇게 막 때리는 거 보니까.”

“했다고 해서 내가 지킬 이유는 없잖아. 야쿠자가 약속 지키는 거 봤어?”

“아아, 그래. 참 잘났군.”

 

맞은 곳이 욱씬거리는지 이와이즈미가 혀로 입 안을 살폈다. 그러는 동안 기시노는 가만히 이와이즈미를 살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세히 봐도 딱히 특별한 느낌이 없는데, 대체 오이카와가 왜 그를 싸고 도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목숨을 빚졌기 때문일까?

 

“당신들 진짜 평범한 사이 맞아? 느낌이 왜 이렇게 끈적하지? 꼭 둘이 한 침대에서 뒹굴 거 같잖아. 기분 더럽게.”

“왜. 그런 생각하니까 꼴리냐?”

“닥쳐!”

 

다시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갔다. 맞고 있는 쪽은 이와이즈미인데 잔뜩 흥분해서 날뛰는 건 기시노였다. 그는 있는 대로 얼굴을 찌푸린 채 연신 ‘더럽다.’는 말을 반복했다.

 

“뭐야, 진짜. 이 더러운 자식들! 남자끼리 붙어먹는 거냐? 와, 씨발.”

“내가 오이카와랑 자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게 검사가 할 소린가? 당신네 동료들은 알아? 검사라는 작자가 야쿠자 밑에 깔려서 좋아 죽는다는 거.”

 

속된 표현에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러나 기시노는 이때다 싶었는지 멈추지 않고 계속 떠들었다.

 

“그 자식이 낸 소문이 진짜였네. 하긴, 소문이라는 게 그냥 나오는 게 아니지. 뭔가 근거가 있으니까 한 소리 아니겠어?”

“…….”

 

이와이즈미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힐끗, 어딘가를 보는 듯하다가 이내 기시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시노는 재미있다는 듯 이와이즈미 앞에 서서 실실 웃으며 낯 뜨거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와, 이거 대박이네. 근데 오이카와 토오루가 뭐가 부족해서 남자를 골랐을까. 다리 벌려 줄 여자가 줄을 섰을 텐데. 뭐, 아무튼 소문을 낸 놈은 이미 오이카와 손에 죽었을 테지. 돈 몇 푼 쥐여 준 거에 홀랑 넘어오더라니. 큭큭큭.” 

 

그 때였다. 기시노가 무언가를 느끼기도 전에 그의 귓가에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 천천히 눈을 돌리니, 언제 온 것인지 오이카와가 그의 머리통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여, 잡담은 끝났나.”

“오, 오, 오, 오이카, 와…….”

“오라고 친절하게 주소까지 말해 줬으면서 뭘 그렇게 놀라지?” 

“어, 어떻게 소리도 없이…….”

 

오이카와가 온다면 분명 아래에 있는 부하들과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때문에 그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면 그가 온 것임을 예측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기시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소리는커녕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 뒤통수에 총구를 겨눌 때까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아, 이거 덕분이지.”

 

오이카와는 품에서 소음기를 꺼냈다. 소음기 덕분에 발포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쏘는 동안 다른 이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높은데, 비명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뒤이어 들어온 사이토가 자신의 총을 정비하며 말했다. 정리 끝났습니다, 보스.

 

“수고했다.”

“둘이서, 둘이서 끝낸 거라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기시노는 오이카와와 사이토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단 두 명에서 기시노의 조직을 초토화 시킨 것이다. 아무리 세력이 크지 않다 해도 이렇게 순살될 정도로 허술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던 그였다. 사이토는 총탄을 갈아 끼우며 피식 웃었다.

 

“보스의 실력을 너무 얕잡아 본 모양입니다.”

“그런가.”

“잘 나서시지 않아서 그렇지, 알고 보면 스나이퍼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정확한 기술을 가지고 계시다는 걸 알 리가 없겠죠.”  

“하하.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 사이토. 어쨌든 지금은 이와쨩을 데리고 나가는 게 먼저니까.”

 

그리고 슬쩍 눈짓을 하자 사이토가 이와이즈미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그의 결박을 풀어 주었다. 오이카와로 인해 움직임이 봉쇄된 기시노는 눈앞에서 그것을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먼저 나가 있어, 이와쨩.”

“뭐? 하지만 너…….”

“금방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사이토, 잘 데리고 나가.”

“알겠습니다.”

 

가지 않으려고 버티던 이와이즈미는 귀에다 속삭이는 사이토의 말을 듣고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걸음을 돌렸다. 둘만 남게 되자 오이카와는 총을 거두고 기시노와 정면으로 마주 섰다. 오이카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기시노는 자기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눈빛에 압도되어 자동으로 몸이 떨렸다.

 

“내게서 무기 매매권을 가져가고 싶었나.”

“…….”

“그래, 야쿠자라면 그 정도 야망은 있어야지. 그런데.”

 

오이카와가 한 발짝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기시노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가격을 유지했다. 도저히 오이카와와 가까이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넌 처음부터 판단 미스였어. 날 이기고 싶었으면 다른 걸 건드렸어야지.”

“뭐, 뭘 말입니까.”

“그런 건 알아서 생각해. 단지, 하나만 말하자면 말이야. 너는 납치할 상대를 잘못 골랐어.”

 

오이카와의 눈빛에 광기가 어렸다. 그 눈빛을 본 순간, 기시노는 덫에 걸린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어느 것도 자신을 구속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꽁꽁 묶여 있는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분명 경고했었잖아. 이와이즈미가 무사해야 할 거라고.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상해서는 안 된다고. 근데 아까 보니까 얼굴이 엉망이더라. 모르긴 몰라도 얼굴만 때렸을 것 같지는 않은데. 또 어딜 때렸어? 응? 말해 봐.”

 

맨손이었던 오이카와의 손에는 어느새 검은색 가죽 장갑이 자리하고 있었다. 입술은 서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섬뜩한 빛을 내뿜었다. 그 안광(眼光)에 눌린 기시노는 한 마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무어라 입술만 벙긋거렸다.

 

“기시노 케이스케, 걱정하지 마. 죽이지는 않을 거니까. 총 맞아 죽는 건 지나치게 편하잖아. 너에게 그런 죽음은 너무 사치스러워서 말이야.”

“어, 어어, 저는…….”

“입 닫고 어금니 꽉 물어라. 턱 나가면 무지하게 아프거든.”

 

말을 마치는 순간부터 오이카와는 참고 참았던 분노를 터뜨렸다.

 

 

 

***

 

 

 

밖에서 멀뚱히 서 있던 이와이즈미가 물끄러미 건물 위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감금되어 있던 건물이다. 나오는 내내 복도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봤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모두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오이카와와 사이토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만나는 즉시 팔이나 다리를 쏴 전투 불능으로 만든 뒤 급소를 쳐 기절시켰던 것이다.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 이와이즈미를 구한 뒤 그가 직접 검찰에 지원 요청을 하게 한 덕분에 기시노의 부하들은 전원 목숨을 건졌다.

 

검찰이 도착하기 직전, 유유히 걸어나온 오이카와는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자며 사이토를 데리고 사라졌다. 검찰이 왔는데 오이카와 일행이 있으면 그건 또 그거대로 좋지 않은 상황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뜨는 두 사람을 배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와이즈미에게 상황 설명을 들으며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딱 죽지 않을 정도로 맞은 기시노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

 

이와이즈미는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겠다고 한 뒤 오이카와의 맨션으로 향했다. 가면서 오이카와가 아닌 사이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연결음이 들리더니 곧 사이토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 사이토입니다.

“이와이즈미입니다.”

- 네, 말씀하시죠. 

“아까 했던 말, 무슨 뜻입니까?”

 

앞뒤 다 자르고 한 질문이었지만 사이토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기시노와 오이카와만 방에 두고 나올 때의 이야기를 묻는 것이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이와이즈미는 제 귓가에 속삭인 사이토의 말을 떠올렸다.

 

‘보스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딱히 보기 좋은 일이 아니니 먼저 나가시죠.’

 

- 말 그대로입니다. 설마 보스께서 그냥 말로만 끝내실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 죽이지 않으셨다는 건 직접 보셨을 테니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꼴이더군요.”

-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인 겁니다. 사실은 진짜 죽이실 생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검찰인 점을 감안해 더 이상의 곤란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신 일이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 당신은 모를 겁니다. 기시노 케이스케로부터 당신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을 때의 상황을요. 전화를 건 상대가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을 때의 보스의 얼굴을 말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 아닙니다. 그럼 이만.

 

전화를 끊은 뒤 집으로 가는 내내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와이즈미의 차는 검찰청 주차장에 있어 부득이 택시를 타야 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가는 길이 오래 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하면 제일 먼저 오이카와를 안아 주고 고맙다는 말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결심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집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 사이토로부터 전화가 왔다. 통화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걸려온 것이 이상했지만 이와이즈미는 의심 없이 전화를 받았다.

 

“네, 이와이즈미…….”

- 거, 검사님. 크흑, 보스가, 보스가 총에, 맞았…습니다.

 

이와이즈미는 택시에서 내린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