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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다른 세계 - 4화

[오이이와] 다른 세계 - 4화 

 

Written by. Sanzo

 

 

 

오이카와 토오루

 

X

 

이와이즈미 하지메 

 

 

 

- 이와이즈미? 여보세요?

 

갑자기 말이 없어진 것이 이상했는지 동료가 몇 번이나 이와이즈미를 불렀지만, 정작 당사자는 충격과 공포로 말을 잃었다. 그런 이와이즈미 대신 전화를 이어받은 건 오이카와였다.

 

“아아, 여보세요. 이와이즈미 친구인데, 지금 전화 받을 상태가 아닌 것 같아서요. 나중에 다시 통화하시죠.”

 

그러고는 상대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통화를 종료했다. 언제 일어난 것인지 오이카와는 말끔한 모습으로 이와이즈미를 바라보았다. 동료의 말에 완전히 얼어붙은 이와이즈미를 당겨 안고는 등을 토닥였다. 오이카와의 품에 안긴 이와이즈미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어, 어떡하지? 내가 너랑 같이 있는 걸 누가 아나 봐.”

“이와쨩.”

“나 어떻게 해야 돼. 거, 검사가 야쿠자랑 있다는 걸 알면…….”

 

거기까지 말하다 그만 흠칫 놀랐다. 지금 저를 안아 주고 있는 이가 바로 그 야쿠자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괜한 말로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닌가 싶어 속이 아렸다. 동료의 말에 놀란 나머지, 저만 생각하고 오이카와의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오히려 따뜻하게 웃으며 더욱 그를 품어 주었다.

 

“고민할 필요 없어. 이와쨩은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래야 이와쨩다울 수 있잖아.”

 

이와이즈미가 검사라는 직업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오이카와는 그의 입장을 이해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알지만, 그만큼 검사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하다는 것을. 그래서 검사와 연인이라는 두 군데의 정착지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한쪽에서만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오이카와, 나는…….”

 

오이카와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고뇌하듯 말하는 이와이즈미를 다독이고 있는데, 다시 한 번 이와이즈미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아까 그 동료였다. 전화를 그렇게 끊은 것이 못내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받지 말라는 오이카와의 말에, 괜찮다며 애써 웃는 얼굴로 휴대폰을 들었다. 그래도 오이카와 덕분에 많이 진정이 된 상태였다.  

 

“어, 나야.”

- 너 괜찮냐? 아까 다른 사람이 받아서 깜짝 놀랐다.

 

힐끗, 오이카와를 바라보곤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친구 맞아. 나 지금 친구 집에서 살거든. 연인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오이카와도 잘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 주니 더욱 마음이 놓였다.

 

“아, 그냥 좀 놀라서. 근데 어디서 그런 소문이 시작된 거야?”

- 나도 잘 모르겠어. 오늘 출근했더니 갑자기 후배들이 막 물어보잖아. 어찌나 황당하던지. 그게 말이 되냐? 어? 검사가 야쿠자한테 몸을 팔아서 정보를 얻는다질 않나, 그 야쿠자한테 빠져서 우리 쪽 정보를 넘겼다질 않나. 진짜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지. 하여간 출처가 어딘지 확인만 되면 무고죄로 싹 다 집어넣을 거야. 

 

멎었던 떨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대체 누구야.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건데. 왜 이러는 거야!

 

- 어이, 이와이즈미?

“그, 그래. 듣고 있어.”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에서 힘이 빠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억지로 힘을 주고 통화를 이어 갔다.

 

- 놀라는 게 당연하지. 그런 어이 없는 소문이 퍼졌으니까. 우리 팀에서 바로 조사 들어갔어. 어떤 자식인지 아주 잡히기만 해 봐라. 주둥아리를 그냥 확!  

 

뭐라고 해야 하지? 똑같이 화를 내야 하나? 하지만 아주 틀린 말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그러는 사이 동료는 회의가 있다며 전화를 끊었다. 연결이 끊어졌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려도 이와이즈미는 여전히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오이카와가 다가가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았다.

 

“이와쨩.”

 

불러도 대답이 없다.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 이와이즈미가 얼마나 큰 혼란에 빠져 있는지, 굳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자세한 사정을 알아야 했다. 여기 좀 앉아 봐. 겨우 소파에 앉히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도통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오이카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나한테 말 못할 일이야?”

“…….”

“있지, 이와쨩.”

 

이와이즈미 곁에 앉아 그를 당겨 제 어깨에 기대게 한 뒤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이와쨩은 낮이고 나는 밤이잖아. 낮과 밤은 만날 수도 없고 만나서도 안 되는 거지.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 테니까.”

 

이야기를 하는 오이카와는 더없이 편안해 보였지만 정작 듣고 있는 이와이즈미의 얼굴빛은 점점 어둡게 변해 갔다. 하지 마. 더 이상 말하지 마.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아니까, 그러니까 그만해. 오이카와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마음만 있을 뿐, 실제로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너, 뭘 말하고 싶은 건데.

 

“엮여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엮이면 꼭 문제가 생기더라.”

 

그래서 뭐? 날 떠나겠다는 거야? 이제야 겨우 내 마음을 정했는데? 내 얘기는 들어 보지도 않고 헤어지자는 거냐고.

 

“야! 넌 어떻게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그런 결정을…….”

“그래도 안 놔 줘.”

 

어? 울컥한 마음에 화를 내려던 이와이즈미가 넋이 나간 얼굴로 오이카와를 응시했다. 너 지금 뭐라고…….

 

“서로 다른 세계에 살아도, 하는 일이 달라도 나는 이와쨩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이제 이와쨩이 없는 밤은 생각할 수 없으니까. 너 없이 자는 건 더는 싫어. 너무 쓸쓸해.”

 

담백하고도 담담한 고백에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치솟았던 분노는 사라진지 오래였고, 오히려 다른 감정이 왈칵 차올랐다. 아무리 애를 쓰고 참으려 해도 벅차오른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새삼 느낀다. 오이카와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어디까지 가든 괜찮아. 밤이 되기 전에 내 곁으로 돌아와 주기만 하면 돼.”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지만, 다 알고 있다는 듯 묵묵히 자신을 품어 주는 오이카와로 인해 이와이즈미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삼켰다. 지금 저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오이카와라면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만이라도 모르게 하고 싶었다. 괜한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 다 괜찮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떤 사정인지도 모르면서 오이카와는 담담했다. 어쩌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와이즈미는 남은 근신 기간 내내 오이카와의 집에서 머물며 그와 몸을 섞었다. 자신에 대한 소문을 잊기 위해, 야쿠자와 검사라는 자리에서 일탈하기 위해 온전히 오이카와에게만 집중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드디어 근신이 풀리는 날이 되어 근신 이후 첫 출근을 한 이와이즈미는 저에게 쏠리는 시선들을 감내하며 묵묵히 로비를 걸었다. 막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던 동료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여, 이와이즈미! 오랜만에 출근하는 기분이 어때?”

 

이와이즈미에게 웃으면서 말을 건 사람은 그가 처음이자 유일했다. 소문에 관계없이 그는 계속해서 이와이즈미와 연락을 하며 지냈고, 그 덕에 이와이즈미도 차츰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어떻긴 뭘. 아주 더럽지.”

“애들 시선은 신경 쓰지 마. 원래 이슈가 될 만한 일이 생기면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관심을 갖잖아.”

“짜증나.”

“그래그래.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야.”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스마, 너는 나 믿냐?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아스마라 불린 예의 그 동료는 이와이즈미의 등을 밀며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는 씩 웃었다.

 

“당연하지. 내가 너를 하루 이틀 봤냐? 법대 다닐 때부터 알았어.”

“그렇지.”

“알면 묻지 마.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너 믿어. 설령 네가 야쿠자를 만났다 해도 거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

“그러니까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 소리야. 어, 다 왔다.”

 

3층 회의실에 도착하자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오늘 출근하자마자 회의실로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자신을 둘러싼 일련의 소문에 대해 해명하고, 담당하고 있던 업무에 복귀하게 해 달라는 항변을 해야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조사할 목적으로 앉아 있는 두 명의 선배 검사를 보고 한숨이 먼저 나왔다. 어쩌다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되었을까, 싶었다.

 

“일단 앉아.”

 

그중 하나가 편히 앉으라며 가볍게 손짓했다. 두 사람 모두 이와이즈미와는 막역한 사이인지라 딱히 심문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저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하는 것일 뿐.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우리가 너를 다 조사하고.”

“내 말이. 다른 애들은 몰라도 이와이즈미 같은 애를 취조하는 게 말이 되냐? 제일 성실한 앤데.”  

 

죄송합니다. 이와이즈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는 모습에 선배들은 오히려 그를 안쓰럽게 생각했다.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야. 진짜 어떤 새끼들인지 잡히기만 하면 아주! 어디 할 짓이 없어서 검사를 음해해?”

“그래도 어쩌겠냐. 위에서는 조사를 하라는데. 이와이즈미, 일단 뭐 대충이라도 말해 봐. 야쿠자랑 엮일만한 일 없었어?”

“어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이와이즈미가 야쿠자와 엮일 일이 뭐가 있는데? 잡으러 다니다 몇 놈 얼굴만 익힌 정도겠지.”

 

제 앞에 앉아 서로 말다툼을 하는 선배들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러는 사이, 후배 검사 하나가 들어와 그들에게 귓속말을 했고 곧바로 표정이 싹 바뀌었다. 들어오라고 해. 선배의 한 마디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이와이즈미는 너무 깜짝 놀라 하마터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그는 이와이즈미를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오이카와 님의 대리인으로 온 사이토 진이라고 합니다.”

“뭐, 일단 앉으시죠.”

 

매우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내내 세워둘 수만은 없으니 내키지 않아도 마주 앉아야 했다. 이와이즈미 옆으로 의자 하나를 더 놓고 나란히 앉게 되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이와이즈미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사이토가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오로지 그 생각뿐.

 

“그래서, 사이토 씨는 여길 왜 온 겁니까. 야쿠자가 제 발로 검찰청에 다 오다니.”

 

비꼬는 느낌이 있었지만 사이토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와이즈미 검사님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선배 검사 하나의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말릴 새도 없이 반발부터 찍 나갔다.   

 

“아 그러니까 그걸 왜 너 따위가 와서 해명을 하냐고! 야쿠자가 해명하면 더 불리해질 거란 생각은 못 하나? 어?!”

 

신경질적인 반응에도 사이토는 의연했다.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검사님의 무고함을 알아주지 않을 테니까요.”

“좋아. 어디 한번 말이나 해 보시지. 무슨 근거로 이와이즈미의 무고함을 주장하는지.”

 

사이토가 대답하려 하는데, 이와이즈미가 손을 뻗어 잠시 그를 제지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을 이렇게 묻는 듯했다. 여긴 왜 온 겁니까?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요! 사이토는 말끔하게 차려 입은 수트 재킷을 다듬으며 웃었다. 무척 준수한 외모를 가진 그였기에 옅게 웃기만 해도 사람 인상이 달라 보였다.

 

“이와이즈미 검사님께서 오이카와 님을 구해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잠복하고 있던 다른 조직의 습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때 오이카와 님께서 다치셨죠. 몸을 숨기고 있는 와중에 이와이즈미 검사님께서 나타나신 겁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그분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때문에 당시에는 그저 위험에 처한 시민인 줄 알고 도와주셨습니다. 사실 지금도 제가 미리 연락을 드려 사정을 설명하지 않았으면 검사님은 영문도 모르셨을 겁니다.”

“그게 정말이야?”

 

선배 하나가 매서운 눈으로 이와이즈미를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훌륭한 후배가 잘못될까 걱정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가운 시선이다. 이와이즈미가 머뭇거리자 사이토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대답하라는 뜻이었다.

 

“네. 맞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움직여 대답했다. 모래알을 씹은 듯 입 안이 깔끄러웠다. 오이카와를 두고 이렇게 대답해야 하는 순간이 올 줄이야.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도움을 받은 건 그가 아니라 자신이건만. 이와이즈미의 대답을 들은 사이토는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들으신 바와 같습니다. 도움 받은 것에 대해 보답하고자 몇 차례 만나신 것은 맞지만, 이 역시 오이카와 님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만남입니다. 우리는 이와이즈미 검사님이 누구인지 곧 알았지만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가 있으니 그에 대한 예우를 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검사님께서 야쿠자와 내통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고, 몸을 팔아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 역시 어불성설입니다. 사랑에 빠져 검찰측 정보를 넘겼다는 건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군요. 만약 우리가 다 알고 있었다면 검찰 수사를 모두 피했을 테니까요.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여러분들께서 훨씬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답변하는 사이토의 태도에 선배 검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뭐라고 되묻기는 해야겠는데, 딱히 뭐라 물어야 할지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불쑥, 따지는 투로 물었다.

 

“왜 야쿠자가 검사를 변호하지? 별로 그래야 할 이유가 없을 텐데.”

 

사이토는 조금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예의 있고 반듯한 어투로 조근조근 이야기했다.

 

“제가 조금 전까지 다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만. 야쿠자라 해도 입은 은혜는 갚을 줄 압니다. 검사님께서는 그저 사람을 구한 것뿐인데 그 일로 곤란하게 되셨으니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지요. 지금 제가 하는 모든 말은 온전히 오이카와 님의 뜻입니다.”

“야쿠자 주제에 의리 있는 척하기는.”

 

선배!! 도가 지나친 무례한 발언에 이와이즈미는 저도 모르게 발끈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지 깨닫고는 입술을 깨물며 앉았다. 울컥 화가 치밀어 감정을 드러낸 자신과는 달리 사이토는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이런 대접을 받을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오히려 이와이즈미를 향해 싱긋 웃기까지 한다. 그 사이, 아까 사이토의 출현을 알린 후배 검사가 들어와 취조 중인 선배 검사들에게 종이 한 장을 제출했다. 그가 이와이즈미를 곁눈질로 바라보다 다시 나간 뒤, 선배 검사 중 하나가 픽 웃으며 말했다.

 

“하! 전직 셰프? 그것도 도쿄 호텔의 수석 셰프였다고? 어이가 없군. 그렇게 잘나가던 사람이 왜 야쿠자가 된 거지?” 

 

뭐? 진짜 셰프였어? 언젠가 오이카와가 사이토에 대해 말해 주었을 때 너무 황당한 나머지 그다지 믿지 않았었는데, 팀에서 조사한 내용이라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와이즈미는 신기한 듯 살피는 눈길로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에 대해 대답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군요.”

“왜?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셰프 자리를 마다하고 나가서 양아치 짓이나 하는 거 아냐. 어?”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사이토의 주먹에 슬며시 힘이 들어갔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눈치챈 이와이즈미가 중재에 나섰다.

 

“선배, 지금 일과 관계없는 얘기는 하지 마시죠. 사이토 씨도 그만하면 됐습니다.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셔도 되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그리고 말이야, 목숨을 빚졌다면 응당 직접 와서 해명할 것이지, 부하를 보내? 진짜 은혜를 모르는 놈이네.”

“선배!!”

 

다시 한 번 거세게 부른 후에야 선배 검사의 비난이 멈췄다. 이와이즈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오이카와의 오른팔인 사이토가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를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화를 눌러 참고 내내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물론 누군가를 해친다면 이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사이토는 감정을 앞세우지 않았다.

 

“이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사이토 씨.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이토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선배 검사들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야쿠자인 것을 뻔히 아는데도 당장 잡아넣을 수 없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사이토가 돌아간 후, 이와이즈미는 무혐의를 인정받아 다시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고 자신에 대한 소문을 퍼뜨린 근원지를 찾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오이카와와 만나는 것. 인적이 없는 장소로 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응, 이와쨩.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다정한 목소리. 이와이즈미는 괜스레 화가 났다.

 

“너 지금 어디야.”

- 집이지. 오늘은 일이 없어서 집에…….

“꼼짝 말고 기다려. 10분이면 간다.”

- 에, 이와쨩?

 

뚜뚜뚜-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이와이즈미는 즉시 차를 몰고 오이카와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오이카와를 만나면 뭐라고 말을 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도착하자마자 득달같이 현관문을 연 이와이즈미는, 여유롭게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오이카와를 발견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 알면서, 오이카와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불리하게 되었는지 알면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편안해 보이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아니, 미안했다. 그게 더 옳은 표현일지 모른다.

 

“오이카와.”

“오, 왔어? 커피 마실래?”

“지금 커피가 문제냐.”

 

험악한 얼굴로 다가오는 이와이즈미에게 오이카와는 그저 빙긋 웃어 보였다. 왜 그래, 이와쨩. 화가 많이 난 것 같네.

 

“그래, 화났다. 왜 그랬어? 목숨을 빚진 건 난데, 왜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거냐고.”

“난 괜찮아.”

“뭐가 괜찮아! 멍청아,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네가 위험해졌잖아!”

“나는 괜찮아. 너만 안전하면 돼.”

 

따뜻하게 웃는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왈칵 눈물이 차올랐지만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내가 네 얼굴을 알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 검찰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어떻게 해서든 날 통해서 널 잡으려고 할 거야. 널 만나러 오다가 미행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할 건데!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네가 야쿠자들 사이에서 어떤 존재인지 모를 것 같아? 다 알지만 그동안은 얼굴을 몰라서, 증거가 없어서 못 잡았을 뿐이야. 근데 이젠 나를 통해서 할 거라고, 너 잡는 거!”

 

오이카와를 잡는 데 자신이 협조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싫었다. 이와이즈미의 마음이 검사라는 직업에서 오이카와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쩔 거야. 나보고 널 잡아넣는데 앞장서라고? 웃기지 마. 난 못 해. 죽어도 안 해.”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이와이즈미에게 오이카와가 손을 내밀었다. 제 옆에 앉으라는 듯 살짝 당기자 못 이기는 척 와서 앉는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머리를 맞대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잠시 후, 오이카와가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와쨩을 위해서라면 잡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리고 나 정말 괜찮으니까 너무 화내지 말고…….”

 

그 순간, 오이카와의 팔을 뿌리치고 일어선 이와이즈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물기마저 섞여 있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네가 안전하지 않은데 내가 어떻게 괜찮아! 날 위해서 잡히겠다고? 너 미쳤냐?”

 

안정이 된 줄 알았던 이와이즈미가 조금 전보다 더 크게 화를 내자 오이카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이어진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의 심장이 강하게 요동쳤다.

 

“사랑하게 만들었으면 책임을 지란 말이야, 이 망할 자식아!!”

 

끝내 이와이즈미의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