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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썰 백업

[마츠하나] 야쿠자 보스 마츠카와 x 아나운서 하나마키

야쿠자 보스 마츠카와 x 아나운서 하나마키


**수정을 거치지 않아 오타와 탈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죠온 혹은 내년 통온에 낼 마츠하나 소설을 위해 이전에 풀었던 썰에 몇 가지 설정을 바꿔 다시 정리하는 썰.





새벽 1시. 라디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나마키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보이는 커다란 무언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모른 척 지나갈까 했지만 어릴 적부터 늘 들어왔던, 돌아가신 할머니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타카히로,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다 소중하단다. 그러니 늘 아껴주렴.' 아아, 왜 하필 지금 할머니 말씀이 생각나는 거야. 몇 걸음 지나치다 결국 다시 돌아가고 만다. 가로등에 기대어 정신을 잃은 남자는 검은색 코트에 같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수려한 외모의 사람이었다. 복부에 칼에 찔린 흔적이 보였고 꽤 많은 피를 흘린 듯했다. 이대로 두면 백 프로 죽는다.

"그치만....딱 봐도 야쿠자처럼 보이는데..." 하나마키가 망설이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멀쩡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결국 저보다 더 큰 남자를 부축해 집으로 향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의료 지식은 없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치료를 한 뒤 젖은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아, 진짜 잘생겼네.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내일은 오후 출근이라 그나마 다행이네." 누군가를 돌보는 게 오랜만이라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위험해 보이는 남자라도 잠자는 모습만은 순해 보인다고 생각하며 하나마키도 잠들었다. 오랜만에 푹 잔 것 같은 개운한 기분에 눈을 뜬 하나마키는 시야를 가로막은 검은색에 깜짝 놀랐다. 대체 뭐지? 이 시커먼 거 뭐야! 뒤척이는 것을 느꼈는지 누군가 말을 건다. "아, 깼어?" 그제야 자신이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헉! 화들짝 놀라 품에서 벗어나자 남자가 피식 웃는다. "나만 혼자 침대에서 자는 게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날 끌고 올라간 거냐고! 황당했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삼겼다. "아....가, 감사합니다."

후다닥 멀어지자 남자가 픽 웃더니 따라 일어난다. 이름이 뭐야? 묻는 말에 보통은 말해주지 않아야 하는데 남자가 야쿠자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머뭇머뭇 대답한다. "하, 하나마키 타카히로입니다." "예쁜 이름이네. 히로." 엑? 첫대면에 벌써 이름으로?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난 마츠카와. 마츠카와 잇세이. 남자의 이름을 듣자마자 하나마키는 자기 자신을 탓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의 이름이 얼굴에 맞게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해 줘서 고마워. 네 덕에 살았어."

아니..딱히 내가 구하지 않아도 살았을 것 같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치는 하나마키를 보며 남자, 아니 마츠카와가 소리 없이 따라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있고 싶지만 그랬다간 우리 애들이 날 찾으러 여기로 들이닥칠 테니까."

아쉽지만 이만 갈게. 마츠카와가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는데 일어나려는 그를 보고 하나마키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잡았다. "아, 아직 상처가....그...아플 텐데..." "걱정해 주는 거야?"

"아뇨, 그게 아니라....." "걱정이 아닌 건가?" 은근히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통에 하나마키는 괜히 붙잡았다고 후회했다. 그리고 그런 하나마키의 얼굴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마츠카와였다. 정말이지 자리 잡고 앉아 구경하고 싶었지만 더 지체하면 정말로 부하들이 찾아올 것이였기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고마웠어." 짧은 인사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마츠카와. 그리고 덩그러니 남은 하나마키는 새벽에 있었던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낯선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한 듯 마츠카와가 사라진 자신의 침대에 몸을 누였다. 아아, 피곤하다. 조금만 눈 붙였다 일어나야지. 핸드폰 알람을 맞춘 뒤 천천히 눈을 감는다. 한편, 조직으로 돌아간 마츠카와는 피에 젖은 제 옷을 보고 흠칫 놀라 호들갑을 떠는 부하들을 잠재웠다. "입 다물어. 별거 아니니까." "하지만 보스! 그건 아무리 봐도 칼에 찔린 상처가 아닙니까! 밤새 괜찮으셨던 겁니까?" 부하의 물음에 문제의 '밤새'가 새삼 떠올랐다. 아, 물론 괜찮았지.

모습을 보곤 얼른 일어나 그의 어깨 위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편한 자세로 자는 것이 마음에 걸려 결국 그를 안아다 옆에 누였다. 이렇게 안아서 옮기도록 깨지 않는 무방비함이 괜히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그나저나 되게 예쁘네."

곤히 자는 하나마키를 보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목소리를 내어 말하고 싶을 만큼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정황상 자신을 살려 준 은인 같은데,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걸로 종종 만날 기회를 만들 수 있겠어. 안 그래?" 혼잣말을 하는 마츠카와의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다시 현재. 부하들은 뜬금없이 혼자 웃는 보스를 보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대체 왜 저러시는 거지?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 아니면 박살 낼 조직이라도 생각나셨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지만 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 중 어느 하나도 마츠카와의 즐거움의 이유를 맞힌 것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금 당장 아키라 불러." "알겠습니다." 마츠카와 조직의 주치의인 아키라는 연락을 받자마자 마츠카와가 머무는 대 저택에 도착했고 그의 상처를 보곤 쯧, 하고 혀를 찼다.
"너 정도 되는 인간이 이런 칼빵이나 만들고 다니다니, 한심하다." 자비 없는 팩트 공격에 마츠카와의 미간이 좁아졌다. "나라고 좋아서 맞았겠냐. 배신에 기습에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살아있는 게 용하네."
"그러니까. 잘 살아 있다고 칭찬이나 해 줘라." "칭찬을 하더라도 너 말고, 이거 치료한 사람을 칭찬해야지. 서툰데도 지혈 잘했네." 아키라의 말에 마츠카와는 또다시 분홍빛 머리카락을 떠올렸다. 그러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바로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아키라는 못 볼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흠칫 몸을 떨었다.
"아 뭔데! 뭔데 그렇게 미친놈처럼 헤벌죽 하냐? 소름 돋게." "나 치료해준 사람 생각했다." "어지간히도 맘에 들었나 보다? 네가 그런 멍청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음, 상당히 괜찮았어. 벚꽃색 머리에 하얀 얼굴이라 되게 눈에 들어왔거든." "와- 어떤 여잔지 불쌍하다. 네 눈에 든 순간 인생 참 피곤해지는 건데." 쯧쯧, 혀를 차며 붕대를 감던 아키라는 별거 아니라는 듯 툭 답하는 마츠카와의 목소리에 동작을 멈췄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재차 묻는 말에도 태연하게 대답한다.

"여자 아니라 남자라고. 이름이 뭐라더라? 하나....하나마키? 이름에도 꽃이 들어가." 이름을 들은 아키라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야, 잠깐만! 하나마키? 벚꽃색이면 분홍?"

"어. 분홍. 되게 예쁜 분홍색." 미친놈아, 되게 예쁘고 안 예쁜 게 중요하냐? 아키라는 감던 붕대를 꽉 묶고는 마츠카와의 등을 짝 후려쳤다. "아프잖아. 왜 때려?" "너 혹시 하나마키 타카히로가 누군지 몰라?" "타카히로인 건 어떻게 알아?"

하아, 이거 진짜 모르나 보네. 아키라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마키 타카히로. 27세. MHS 방송국 아나운서잖아. 요새 한창 뜨고 있다고. 방송 여러 개 하는데 그중에서 밤 10시부터 진행하는 '당신과 만나는 밤'이란 프로가 제일 인기 있어. 남녀 가릴 거 없이 많이 듣는다더라. 나도 야간에 근무할 때 종종 듣는데 진행도 매끄럽고 목소리도 좋아서 듣기 좋아."

아키라의 열띤 설명을 듣고 있자니 마츠카와는 괜스레 울컥했다. 분명 실제로 만난 건 자신인데 저보다 친구가 그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게 못마땅했던 것이다.

"넌 뭘 그렇게 잘 아냐?" "모르는 네가 이상한 거니까 쓸데없는 데 질투하지 마라. 아무튼 그 사람 잘나가는 아나운서니까 괜히 건드리지 말고 그냥 둬." "내가 뭘." 목소리가 금세 뚱해진다.


"목숨 구해줬다고 보답한다는 핑계로 불러내거나 찾아가지 말라고. 너랑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잖아." "알았으니 잔소리 그만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츠카와의 마음속엔 온통 하나마키뿐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마츠카와는 생전 처음으로 라디오 청취를 시작했다. 아무리 바빠도 밤 10시만 되면 핸드폰이든 차량 라디오든 이용해 하나마키의 방송을 들었다. 거의 대부분이 생방송 진행이어서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네, 오늘의 마지막 사연입니다. 닉네임 '까꿍'님께서 보내 주셨네요. 얼마 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등학교 동창이 사실은 옛날부터 짝사랑해 온 상대입니다. 어색하지 않게 자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라는 내용인데요, 그러고 보니 저도 며칠 전 길에서 만난 사람이 있는데요. 동창은 아니지만 잘 지내고 있는지 소식이 궁금하네요. 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두 분은 친구시니까 같이 밥이라도 먹는 식으로 연락하시는 거예요. 만나서 얘기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분명 더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생길 거예요. 까꿍님,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랄게요!

하나마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츠카와는 그가 말하는 '길에서 만난 사람'이 저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잘 지내고 있어. 네가 집에 들여서 치료해 준 덕분에 아주 멀쩡해. 너도 잘 지내는 모양이네. 직접 전할 수 없는 말을 마음으로 건네 보았다.
한편, 라디오를 마친 하나마키는 언제나처럼 1시가 되어서야 골목길을 지났다. 그러다 여러 가로등 중 유난히 희미하게 빛을 내는 가로등 앞에서 멈춰 섰다. 살아....있겠지? 상처가 깊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나 찾아? 진짜로 내 생각하고 있었던 거라면 감동 받을 거 같은데." 휙-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마츠카와가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안 그래도 궁금했던 차에 그가 알아서 나타나자 하나마키는 저도 모르게 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뭐가?" "다친 거요. 그 칼에 찔린..." "아 그거. 괜찮아. 아주 멀쩡해." 씩 웃는 모습에 하나마키는 괜히 얼굴을 붉혔다. 아 뭐야, 왜 저렇게 잘생긴 건데. 슬쩍 시선을 돌리며 눈을 피한다. "라디오 잘 듣고 있어. 재밌더라."

"에? 제 라디오 아세요?" "알지. 당신과 만나는 밤이라는 프로 하잖아. 매일 밤 10시에 하는 거." 사실은 아키라의 말을 듣고 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지만 하나마키 앞에서는 마치 처음부터 알았던 것처럼 말한다. 아마 아키라가 들었으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하나마키는 자신이 하는 프로를 알고 있는데다 듣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기뻤다. 문제는 상대방이 야쿠자일지도 몰라 두려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 대화를 하면서도 내내 마츠카와의 눈치를 살핀다.


"내일 시간 어때?" "무슨....시간이요?" "밥 먹을 시간. 있나?" 거절했다가 무슨 보복이라도 당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을 한가득 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긍정의 답이 돌아오자 마츠카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몇 걸음 다가가 하나마키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었다. 아아, 역시 촉감이 좋네. 라고 생각하면서. 반면 하나마키는 그가 손을 뻗어오자 움찔하며 눈을 꼭 감았다. 때, 때리는 건가? 맞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마츠카와 시선에서는 그것이 귀여워 손을 들어 입을 가린 채 풋 웃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하는 모든 행동이 전부 귀여웠다. "늦었다. 빨리 집에 가." "네." "근데 맨날 이렇게 늦은 시간에 다니나? 아, 라디오가 12시에 끝나니 그럴 수밖에 없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하나마키를 지나 마츠카와가 앞장을 섰다. "가자. 데려다 줄게." "아, 아뇨. 괜찮습니다." "가. 너 들어가는 거 보고 갈 테니까." 괜찮은데...하며 말끝을 흐려도 마츠카와는 이미 저만큼 앞서간다. 하나마키는 어쩔 수 없이 마츠카와의 뒤를 따른다. 가로등은 있지만 희미해서 골목이 환하지 않아 늘 신경 쓰이긴 했는데, 마츠카와가 알아서 같이 가주니 든든한 게 사실이다. 넓고 듬직한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웃음이 난다. 늘 걷던 길인데 오늘따라 새롭게 느껴졌다.

집 앞에 도착하자 마츠카와는 문 앞에 서서 들어가라며 손짓했다. 매너 좋은 그의 배려에 절로 고마움이 느껴졌다. "들어가." "가시는 거 보고요." "먼저 들어가. 너 들어가는 거 봐야 안심이 돼." "그럼...들어가겠습니다."

결국 하나마키가 먼저 돌아섰다. 집으로 들어가 창을 내다보니 마츠카와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다. 옷을 갈아입고 씻은 후 침대에 앉아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그가 자신에게 잘해 주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야 다친 곳을 치료해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친분도 없는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잘해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네. 뭐 하는 사람이지?" 일단 잠정적으로는 야쿠자라 믿고 있지만 아닐 수도 있기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 본다. 그렇게 하나마키의 하루가 저문다.

그날부터 하나마키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는 마츠카와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라디오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면 언제나 그곳에 그가 있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왜 잘해 주는 것인지 아무 것도 모르지만 이젠 그가 보이지 않을까 염려가 될 만큼 당연하게 되어 버렸다. 어떤 때는 밥을 같이 먹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별다른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소소한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게 익숙해졌다. 그러다 문득 하나마키는 이것이 꼭 연인의 데이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미쳤다. 내가 그 사람이 왜....호의를 호감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게다가 나도 그 사람도 남자잖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타카히로!" 스스로를 꾸짖으며 애써 감정을 무시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골목 어귀에 서 있는 마츠카와를 보고 저도 모르게 웃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마츠카와 씨." "어서 와. 이제 끝났어?" "네." "가자." 처음엔 분명 마츠카와가 앞서 걸었었는데 어느새 둘은 나란히 걷고 있다.
"오늘 사연도 재미있는 거 많더라." "그렇죠? 학생들도 많이 보내지만 대부분은 직장인들이라 사회 생활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요. 저도 공감가는 내용도 있고요." 그러면서 슬쩍 마츠카와를 바라본다.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 것이다. "할 말 있어?"
시선을 느낀 마츠카와가 지그시 눈을 내리며 자상하게 웃는다. 그의 부하들이라면 생각도 못할 선한 미소였다. "아, 그게....저기, 마츠카와 씨는 무슨 일 하세요?" 드디어 물었다. 용기 내어 물어보곤 입술을 오물거리며 대답을 기다린다.
"그게 궁금했어?" 그러면서도 쉽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 뭐 하는 사람 같아? 맞춰 봐. 하며 난감한 질문을 던진다. 모르니까 물어본 거잖아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꾸욱 누르곤 침착하게 대답했다. "체육...선생님이려나?"

머리와 입이 따로 놀고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그냥 선생님, 이라고 하려다 다부진 몸을 보곤 얼른 앞에다 '체육'을 붙였다. 그러나 본인이 말해 놓고도 민망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와, 씨! 솔직히 저 사람 어딜 봐서 선생님이란 말이 나오냐?


나 드디어 미친 건가? 하나마키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좀 더 다른 말은 없었냐고! 아 그치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할 줄 누가 알았나? 당연히 대답해 줄 줄 알았단 말이다! 속으로 자문자답하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 히 웃는다. 마츠카와는 끝내 확실한 대답을 해 주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며칠 뒤 하나마키는 제 집 앞에서 쓰러져 있는 마츠카와를 발견했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모습이다.

"마, 마츠카와 씨?" 달려가 흔들어 보아도 꿈쩍하지 않는다. 순간 얼굴에 핏기가 가신 하나마키가 다급하게 그를 부축해 집으로 들어갔다. 재킷을 열자 옆구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저번보다 더 심한 상처에 동공이 흔들린다. 지혈을 위해 깨끗한 수건으로 상처 부위를 누르자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마츠카와 입에서 윽, 하는 신음 소리가 난다. 겨우 막고 있긴 하지만 꿰매지 않는 한 완전한 지혈은 어려울 듯 싶었다. 그런데 그 때 마츠카와의 핸드폰이 울렸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내자 '타카노 아키라'라는 이름이 보였다. 누군지는 몰라도 마츠카와를 아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며 통화를 터치했는데 여보세요,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상대방이 버럭 화를 낸다. -야, 너 또 어디서 뭘 하는 거야? 지금 어디냐고!

"아, 저어..." -어디냐니까! 빨리 말해! 무작정 화를 내는 상대로 인해 하나마키는 주저하며 입술만 벙긋거렸다. 그러다 상대방도 이 상황이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목소리가 다시금 누그러졌다. -누구....당신 누구야? 마츠카와 잇세이 폰 아닌가?

"아, 음...저는 하나마키 타카히로라고 합니다. 마츠ㅋ...." -하나마키? 아나운서 하나마키 타카히로? 놀란 아키라가 하나마키의 말을 끊었다. "네. 저기 근데..." -근데 당신이 어떻게 마츠카와 폰을 받는 거지?

그제야 본론으로 돌아온 하나마키가 다급하게 말했다. "마츠카와 씨가 많이 다치셨어요. 칼에 찔리신 건지 뭔지 피가 많이 나고...그리고 또 어...정신을 잃은 상태입니다." -뭐라고? 거기 지금 어딥니까? 위치를 들은 아키라는 급히 물건을 챙겨 하나마키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린 채 정신을 잃은 마츠카와와 그의 곁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하나마키를 발견하곤 이마를 찌푸렸다.

"도대체가 이 자식은 또 왜 옆구리에 바람 구멍을 낸 건지."

투덜거리면서도 가방을 쫙 열더니 주사기를 꺼내 마취부터 한다. 가방 안에는 각종 의료 기구가 즐비했다. 마취가 되자 곧바로 봉합에 들어갔고, 꽤 많이 꿰맸다. 반창고까지 붙인 후에야 마스크를 벗고 라택스 장갑을 벗는다.

"후우, 진짜 가지가지 한다."

천천히 호흡이 고르게 변하는 마츠카와를 확인하자 한시름 놓는다. 그러다 넋 놓고 앉아 있는 하나마키를 발견하곤 신기하다는 듯 바라본다.

"진짜 하나마키 타카히로네. 티브이로만 보다 실제로 보니 신기하군. 마츠카와 녀석이 얘기할 때만 해도 긴가민가 했는데."

"하, 하하하.."

하나마키는 어색한 웃음으로 답했고, 흥미가 생긴 아키라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질문공세를 펼쳤다.

"난 타카노 아키라. 마츠카와 주치의고 보다시피 이런 뒤치다꺼리하느라 바쁘지." 시종일관 반말이었지만 이미 마츠카와의 말투에 익숙해져 있어 하나마키는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라면 마츠카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츠카와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 오늘은 또 어쩌다 같이 있는 걸까나?"
만나게 된 과정을 대강 설명하더니 하나마키도 제가 궁금한 것을 묻는다. 저기...근데 마츠카와 씨는 무슨 일을 하시나요?
"그걸 아직도 몰라?" 어이가 없다는 듯 묻더니 픽 웃으며 잠든 마츠카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딱 봐도 야쿠자 같이 생기지 않았나? 인상 험악한 게 완전 야쿠자잖아."
에엑? 진짜였어?
"야쿠, 야쿠자라고요? 진짭니까?"

"이런 거 가지고 거짓말해서 뭐 하게." 담담한 아키라의 말투에 하나마키는 넋을 놓았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로 야쿠자였을 줄이야. 맙소사. 하얗게 질린 하나마키의 얼굴을 보고 아카리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왜 그렇게 놀라? 정말 몰랐어?" "네." "하! 은근히 순진하네." 그러면서 잠든 마츠카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결정해, 아나운서 씨." "뭘..말입니까?" "뭐긴 뭐야. 이 녀석과의 관계지."

"관계라니, 저는 그냥..." "아, 그쪽은 그럴지 몰라도 쟨 아니거든. 아니운서 씨가 꽤나 마음에 들었나 봐." 재미있다는 듯 웃는 아키라를 보며 하나마키는 대체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한 마디 더 덧붙인다.

"모르겠어? 이 자식이 그쪽 좋아한다고." 에?? 두 눈이 동그래진 하나마키는 어버버한 얼굴로 아키라를 응시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아키라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으윽. 네가 뭔데 남의 고백을 대신하냐? 으, 더럽게 아프네." 마츠카와였다.

그는 아키라가 꿰맨 부분을 손으로 감싸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많이 아픈지 영 일어나지 못했다. "네가 무슨 로봇이라도 되는 줄 아냐? 방금 꿰맸는데 움직이면 어떡해. 터지면 다시는 안 해 줄 테니까." "알았으니까 잔소리 그만하고 일으켜."

겨우 일어난 마츠카와는 애써 웃어 보이며 하나마키를 바라보았다. 많이 놀랐지? 미안해. 하며 겸연쩍어 한다. "다쳤으면 나한테 와야지 왜 여기 와서 드러눕냐. 괜한 사람 놀래키지 말고앞으론 나한테 와." 아키라가 못마땅한 듯 또 잔소리를 한다.

"너 말고 히로가 보고 싶은 걸 어쩌라고." "와, 친구고 뭐고 없다 이거지? 앞으로 칼 맞고 총 맞아도 나 찾지 마라." 심통이 난 아키라의 태도에도 아랑곳 없이 마츠카와는 하나마키만 바라보았다. "또 놀라게 했네. 미안." 겸연쩍은 얼굴이다.

"아뇨,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신을 잃은 그를 보고 이대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뭔지 모를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을 보고 아키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진짜! 그래, 간다, 가."

의료기구가 담긴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자 그제야 마츠카와가 그의 팔을 잡는다. "가긴 어딜 가. 나 치료해야지." "살려 놨으니 나머진 네가 알아서 해." "아직 반만 살았어. 제대로 살려 놔." "하! 완전 무대뽀네." 티격태격했지만 둘 사이가 무척 가까워보여 하나마키는 슬쩍 웃었다. 결국 오늘 밤은 아키라까지 하나마키 집에 머물기로 했다. 이 좁은 집에 셋이나 자는 건 처음인지라 잠자리를 마련하는 하나마키의 손길이 분주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불이 모자랐다.

"이불이 두 채뿐이라...."

어쩔 줄 몰라하는 하나마키를 보며 눈치 빠른 아키라는 얼른 이불 하나를 차지하며 말했다.

"난 딴 사람이랑 이불 같이 못 덮어. 나머지 하나는 알아서들 합의 봐." 그러더니 한쪽에 자리를 펴곤 홀랑 눕는다. 멀뚱히 남은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하나 남은 이불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이거 덮으세요. 환자니까 따, 따뜻하게 하고 주무셔야죠." 허둥지둥하며 마츠카와 쪽으로 이불을 넘긴다. 얼떨결에 받긴 했지만 그러면 맨바닥에서 그냥 자야 하는 하나마키 때문에 영 마음이 불편했다.
"네가 주인인데 그냥 자면 어떡해. 난 괜찮으니...." "안 돼요. 환자잖아요." 아픈 사람을 그냥 재울 수 없어 하나마키는 억지로 그를 눕혔다. 유일한 침대까지 내어주고 자긴 바닥에 누으려는 걸 보니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베개만 가지고 누으려는 하나마키를 지켜보다 벌떡 일어나 두 팔을 아래로 넣어 번쩍 안아 들었다.
"으앗!"
갑자기 공중으로 들리자 깜짝 놀란 하나마키가 버둥거렸고 그 여파로 마츠카와는 상처가 욱씬거려 얼굴을 찌푸렸다. 윽, 짧은 신음을 듣고 하나마키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아, 아프세요? 죄송합니다!" "괜찮아. 잠깐만 가만히 있어." 아픔을 참고 드디어 하나마키를 침대에 눕히고는 꼼꼼하게 이불을 덮어 준다. 제가 여기서 자면 마츠카와 씨는요? 환자잖아요. 걱정스럽게 묻는 말에 마츠카와가 묘한 미소를 짓는다.
"내가 걱정돼?" "당연하죠." "그럼..같이 자면 되지." 하고는 냉큼 하나마키 옆에 눕는다. 기겁한 하나마키가 '이거 싱글이라 남자 둘이서 자기엔 좁아요.' 하며 일어나려 했지만 마츠카와의 단단한 팔이 그를 붙잡았다. "환자니까 따뜻해야 한다며."
"그러니까 이불 덮고 혼자..." "아니. 네가 같이 있어야 따뜻할 것 같아. 누워." 사람의 체온이 필요하다는 듯 말하면서도 억센 힘으로 놓아주질 않으니 별 수 없이 나란히 누워야 했다. 비좁은 침대에 딱 붙어 있으려니 마음이 심란했지만 그로 인해 마츠카와가 따뜻하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잘자." 다정한 목소리에 스르르 눈을 감긴했지만 하나마키는 터질 것 같은 심장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찌나 세차게 뛰는지 이대로 가다간 멈추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아 미치겠네.

하나마키가 눈을 꼭 감고 탄식처럼 설렘을 쏟아 낼 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츠카와의 입술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딱 봐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티가 나는데도 애써 태연한 척 하려는 게 귀여웠다. 진짜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하나마키에게 빠져드는 자신이 보였다. 아키라가 저보다 먼저 대뜸 대신 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태도를 확실히 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말대로 자신이 야쿠자이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삶을 사는 그를 이 위험으로 초대하기 싫었다. 그런데도 자석처럼 끌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큰 부상을 입은 채 또 다시 하나마키를 찾기에 이르렀다. 아키라의 말대로 의사인 그를 찾았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상황에도 아키라가 아니라 하나마키를 찾은 스스로의 행동에 그도 놀랐다.
"내가 진짜 널 많이 좋아하긴 하나 보다. 어떡하냐."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은 그도 다시금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돌아가던 하나마키는 음습한 골목길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보곤 반갑게 달려갔다. 마츠카와 씨구나!

새벽의 골목인데도 상대가 마츠카와라고 생각하면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희미한 가로등으로 다가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아니야, 저 사람 마츠카와 씨가 아니야. 분위기가 달라! 담배를 문 채 어둠 속에 반쯤 몸을 걸친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그가 아니다! 이마에 흉측한 칼자국이 있는 남자였다. 그는 하나마키를 보곤 물고 있던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두려움이 뒷걸음질치며 그냥 지나가려던 하나마키는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거는 남자 때문에 걸음을 멈춰야 했다. "어이, 거기 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자신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하나마키의 어깨를 잡아 돌리더니 이렇게 물었다. "나 보고 반갑게 뛰어온 거 아니야? 왜 도망가." "사, 사, 사람을 잘못 봤습니다."

"그래? 누굴 기다렸는데?" 대답하지 않고 그냥 서 있자 남자가 얼른 한마디 덧붙인다. "마츠카와 잇세이. 그 자식 기다렸지?" 흠칫, 하는 하나마키를 보고 남자가 끌끌거리며 거친 목소리로 웃었다. "네가 마츠카와 놈의 이거냐?"

남자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하나마키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부정하는 말에도 남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거짓말 마. 그 자식이 널 보러 자주 이곳에 온다는 거 알고 있어. 고상하신 아나운서 씨."

"오해를 하신 모양인데, 저는 그저 몇 번 마츠카와 씨를 도왔을 뿐입니다. 그 외에 다른 관계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만...." "그건 내가 판단해. 내가 봤을 땐 둘이서 분명 뭔가 있단 말이지. 단순히 도왔단 이유만으로 이렇게 찾아올 리가 없어."

그게 궁금하면 마츠카와 씨께 직접 물으시죠. 하나마키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섰다. 그러나 남자는 작정을 한 듯 다시 그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판단한다고 했지." 묵직해진 목소리가 위협적이다. 당장이라도 두려움에 살려달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극한 공포 때문이리라.

"무슨 사이인지 아닌지 지금부터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지." 그러고는 하나마키의 팔을 잡아 억지로 끌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입 닫아. 날려 버리기 전에."
거짓말이 아니다. 남자는 정말로 때릴 기세다. 공부만 하며 싸움이라곤 해본 적 없는 하나마키는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게다가 마츠카와에게 적대적인 것으로 봐서 그도 야쿠자인 게 틀림없다. 어설프게 굴었다간 뼈도 못 추릴 것이다.

결국 저항을 포기한 하나마키는 강제로 남자의 차에 올라 탔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한밤 중에 납치를 당했다. 마침 그날부터 일주일간 휴가를 받은 덕에 당분간 방송에는 영향이 없겠지만 일주일을 넘기게 되면 위험했다. 무엇보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가 가장 의문이었다. 과연 이들이 자신을 그냥 보내 줄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하나마키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의외로 담담하게 굴었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 마츠카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딘지 모를 장소로 끌려와 캄캄한 창고 같은 곳에 묶여 있었지만 죽을 것 같은 떨림은 고요해졌다. 하나마키를 데려온 남자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비릿하게 웃었다. "어이, 아나운서 양반. 널 데리고 있으면 마츠카와 잇세이가 새파래진 얼굴로 날 찾아오겠지? 그 꼴이 볼 만하겠군."

"그 사람이 저를 왜 찾으러 오죠? 오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마츠카와 씨와 특별한 관계가 아닙니다. 몇 번 도움을 드렸고 그에 대한 보답도 받았습니다. 그러니 더는 올 필요가 없죠." 하나마키는 최대한 침착하게 굴었다. 그러나 남자는 믿지 않는 눈치다. 도리어 아주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이봐, 뭘 모르는 모양인데. 마츠카와 잇세이가 누굴 그렇게 돕는 사람이 아니야. 몇 번 도와줬고 보답을 받아? 웃기는군." "하지만...." "잘 들어. 그놈은 반드시 온다."
확신에 넘치는 남자의 말에 하나마키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로 오면 어쩌지?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또 다치기라도 하면? 자신보다 그를 더 걱정하는 게 이상했지만 마음이 그랬다. "그놈이 오면 보는 앞에서 널 범해주지."

"...!" 남자의 눈빛이 너무도 섬뜩해 소름이 끼쳤다. 얼마나 입술을 꽉 깨물었는지 피가 날 지경이었지만 하나마키는 깨닫지 못했다. "난 이치카와 켄토다. 앞으로 자주 듣게 될 거야." 비릿한 웃음과 껄끄러운 목소리. 하나마키는 좌절했다. 마츠카와가 오든 그렇지 않든 무사히 가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했었는데 범하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크게 동요했다. 남자의 눈빛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떡하지? 이대로 끝인가!
두려움에 떠는데 이치카와가 한마디 덧붙인다. "지금쯤이면 그놈도 알 거다. 네가 없어졌다는 걸.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겠지. 넌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마츠카와 잇세이는 네놈을 찍었다. 그건 분명해. 그러니 반드시 구하러 올 거다. 크흐흐흐."

이치카와의 말대로 마츠카와 조직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갑자기 사라진 하나마키. 어떠한 연락도 닿지 않아 초조해 죽을 지경이다. 마츠카와의 신경이 매우 날카로운 상태라 부하들은 감히 함부로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오 직 아키라만이 곁을 지켰다.

"화난 건 알겠는데 그렇게 사람 대여섯 죽인 것같은 얼굴은 하지 마라. 애들이 겁먹잖아. 네 부하들 깡 하나는 센 애들인데 네가 그러니 벌벌 긴다." "알 바 아니야. 히로를 못 찾으면 누구든 죽일 거다." "아 좀! 찾으면 되잖아, 찾으면."

하나마키가 납치된 날, 불과 몇 분 차이로 납치 상황을 목격하지 못한 마츠카와는 불이 꺼진 집 앞에서 몇 시간이나 그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급기야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퇴근 여부를 알아봤더니 이미 한참 전에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모범생 같은 하나마키는 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가는 타입이라 다른 곳으로 샐 일이 없었다. 그런 그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전화와 메시지에도 응답이 없다. 미칠 것 같은 불안함에 부하들을 풀어 찾기 시작했다. 금방 찾을 것 같았는데 납치된 골목에 CCTV가 없어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하루가 지나서야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최측근인 칸다가 부하들의 보고를 받고 즉시 마츠카와를 찾았다.

"보스, 이치카와회 짓인 것 같습니다. 차량 넘버 확인 됐습니다."
마츠카와의 눈에 광기가 어렸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당장 이치카와 켄토가 있는 곳으로 간다. 준비해." "예, 보스." 사라지는 칸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키라가 휘-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여전히 유능해."
이미 사라졌음에도 칸다가 간 곳을 응시하는 아키라를 보며 마츠카와가 미간을 찌푸렸다. "일 끝나면 놀아. 지금은 칸다 못 보낸다." "알아. 근데 일 끝나도 칸다가 나랑 안 놀아 준다. 되게 비싼 놈이야."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비정한 말투에 아키라가 반듯한 이마를 찌푸렸다. 매정한 놈! 이라고 핀잔을 주면서. "칸다는 저렇게 보여도 물러 터진 놈이야. 그러니 정말 칸다가 좋다면 진심으로 잘 대해." "어련하실까. 시어머니가 따로 없네." 부하를 끔찍이 아끼는 마츠카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투덜거리면서도 아키라는 픽 웃었다. 어쨌든 지금은 하나마키를 찾는 게 우선인지라 칸다 일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아나운서 선생 잘 데리고 와라. 보니까 그쪽도 너한테 관심 없는 건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건 신경 꺼."

권총을 꺼내 장전 상태를 확인한 마츠카와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건 그에게 의식 같은 일이었다. 큰 일을 앞뒀을 때 또는 냉정을 되찾아야 할 때마다 한 번씩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누구보다 차분한 얼굴을 하지만 그 속은 무서울 정도로 용암이 타오르고 있다. 다만 분노로 용솟음치는 마음을 절제할 뿐이다. 다시금 평정심을 되찾은 마츠카와가 소수의 부하들을 이끌고 이치카와회가 소유한 창고로 향했다. 하나마키가 사라진 날부터 핸드폰 추적을 시작했지만 내내 꺼져 있어 추적이 불가능했었는데 납치한 범인을 찾은지 얼마 되지 않아 핸드폰이 켜졌고 곧바로 추적에 들어갔다. 그 결과 이치카와회 소유의 한 창고가 장소로 지목되었다. 빠르게 도착한 뒤 손짓으로 작전 지시를 마친 마츠카와는 거침없이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다렸다는 듯 공격을 퍼붓는 이치카와회의 조직원들을 가뿐히 제압하며 하나씩 계단을 오르는 마츠카와. 그는 지금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 그리고 그 때, 하나마키는 이치카와 켄토와 마주하고 있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마키를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나운서라 그런지 꽤 봐줄 만하네? 마츠카와랑 자 봤어? 뭐 당연히 잤겠지. 그놈 밑에서 앙앙거리며 울었나?" 거침없는 성희롱 발언에 하나마키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에 화가 난 이치카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나마키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뭐, 말을 안 하겠다면 내가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벗겨 보면 알겠지. 잤나 안 잤나." 그러면서 하나마키가 입고 있는 재킷을 벗겼다.

"뭐 하는 겁니까?!" "가만히 있어. 까불면 그 곱상한 얼굴을 확 날려 줄 테니까." 손발이 묶여 저항할 수 없기에 재킷부터 셔츠까지 스르륵 풀리도록 가만히 구경만 해야 했다. 물론 하지 말라는, 비명과도 같은 저항은 했지만 소용이 없다.

"헤에. 역시 하얗네. 마츠카와가 좋아하게 생겼어. 근데 왜 자국이 하나도 없어? 그 자식이라면 제 것이라는 표시를 남겼을 텐데." 훤히 드러난 하나마키의 상체를 요리조리 살폈지만 키스 마크는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손을 대 만지기까지 하자 하나마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손 치우세요! 불쾌감을 드러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설마 마츠카와랑 안 잤나? 호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널 가지면 널 안은 첫 번째 사람은 내가 되는 건가?" "하지 말란 말입니다! 저리 치워요!"

가슴에 닿는 손길에 소름이 돋았다. 하나마키는 절망과 좌절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아, 정말 죽고 싶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런데 그 때, 가까운 곳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때마침 이치카와가 하나마키의 가슴에 막 입술을 데려던 때였다. 총소리에 이치카와는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돌아보려던 순간, "거기까지." 저승사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섬뜩한 목소리에 이치카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 누구....!" 슬쩍 곁눈질을 한 이치카와는 살기를 내뿜는 마츠카와의 눈과 마주쳤다. 온몸에 소름을 돋았다. "날 초대해 놓고 누구냐고 묻는 거냐?" "마, 마츠카와 잇세이!" 겨우 이름이 나왔다. 마츠카와라는 소리에 하나마키의 눈이 번쩍 떠졌다. 꿈이라도 꾸는 양 몽롱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나마키를 따뜻하게 응시하며 말한다. 미안.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는 총기의 손잡으로 이치카와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충격으로 주저앉은 그가 으윽, 하며 신음을 내뱉는 사이 마츠카와의 부하들이 몰려들어왔다. 소수로 왔지만 최정예 멤버였기에 이치카와회의 잔당들을 말끔히 해치운 뒤 마츠카와를 따라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이치카와를 포박한 뒤 하나마키를 구속하고 있는 로프를 풀었다. 하나마키는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나지 못했다.

마츠카와는 칸다에게 이치카와를 데리고 오라는 사인을 준 뒤 하나마키를 번쩍 안고 밖으로 나갔다. 마츠카와의 품에 안긴 후에야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었는지 번뜩 정신이 들었다. "내, 내려 주세...." "그냥 있어. 부탁이야." 명령이 아닌 부탁이다. 무뚝뚝한 얼굴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 걱정이 잔뜩 묻어났기에 하나마키는 더 말하지 않고 얌전히 안겨 있었다. 창고 앞에 주차되어 있던 제 차의 뒷좌석에 하나마키를 앉힌 뒤 직접 운전할 생각인지 운전석에 앉는다. 그때까지도 묵묵부답이던 마츠카와가 시동을 걸고 출발한 뒤 5분 정도 흐른 뒤에야 겨우 입술을 뗐다.

"미안하다." 꺼낸 첫마디는 사과였다. 벌어진 셔츠의 단추를 열심히 채우던 하나마키는 뜬금없는 사과에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거울에 미친 마츠카와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뭐가...요?" "오늘 일 말이야." "그러니까 왜 마츠카와 씨가 사과를 하시는 건데요." "나 때문이니까. 이치카와는 날 노리고 널 납치한 거야." 목소리에 죄책감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러나 하나마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마츠카와 씨가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절 납치한 아까 그 남자의 잘못인데 왜 마츠카와 씨가 죄인인 것처럼 그러시는 건데요." "말했잖아. 날 노린 거라고. 넌 그냥 휘말린 것뿐이야." "그러니까 저도 말씀드리고 있잖아요." 하나마키가 강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

"마츠카와 씨 잘못이 아니라니까요. 이건 무조건 이치카와 켄토인가 하는 그 사람이 잘못한 겁니다. 마츠카와 씨를 불러낼 수 있다면 누구라도 납치했을 사람이니까요. 휘말렸든 뭐든 그 남자 잘못이니 마츠카와 씨가 사과하지 마세요."

여린 줄만 알았던 하나마키가 누구보다 단호하게 말하자 마츠카와는 의외라는 듯 백미러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하나마키의 눈빛은 누구보다 견고하고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히로..." "저 괜찮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러나 단추를 잠그는 손은 몇 번이고 미끄러졌고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때문에 핸들을 잡고 있는 마츠카와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이치카와를 죽이고 싶었지만 하나마키에게 그런 것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하나마키의 집으로 갈까 하다가 적어도 오늘 만큼은 제 집에서 재우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고 생각해 무작정 자신으로 집으로 간 마츠카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걷는 하나마키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딱 봐도 으리으리한 집이다.

제 침대에 앉히고는 드레스룸으로 가서 적당한 옷을 골라 내밀었다. 그리고는 서랍을 뒤적이더니 뜯지 않은 새 속옷도 주었다. "당장 급한대로 써. 샤워실은 이쪽이야." 식은땀을 흘리는 하나마키를 샤워실에 데려다 주었지만 떨림이 멈추지 않는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괜찮겠어?"

걱정스레 묻는 말에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츠카와가 준 옷가지를 들고 샤워실에 들어간 하나마키는 낯선 구조와 집안을 신기해할 새도 없이 씻기 바빴다. 그러는 사이 마츠카와는 칸다에게 연락해 두고 온 이치카와에 대해 물었다.

"어쩌고 있나." -창고에 가뒀습니다. 어쩔까요. "그냥 둬. 내가 가서 해결할 때까지 물 한 모금도 주지 마." -알겠습니다. 칸다와 간략히 통화한 후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나온 것인지 하나마키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채 서 있었다. 그를 보자 마츠카와의 얼굴이 금새 풀어진다.

"다 씻었어?" 다정하게 물으며 뻗는 손길에 하나마키가 화들짝 놀라 움찔 떨었다. "....죽일 건가요?"

묻는 목소리에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마츠카와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아, 너와 나는 사는 세계가 달랐지. 내가 잠시 잊고 있었어. 머쓱한 얼굴로 뻗었던 손을 거두더니 허탈하게 웃는다. 야쿠자로 살면서 필요하다면 사람을 죽이기기도 했다.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하나마키는 다르다. 지극한 평범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아마...그럴 것 같아." 마츠카와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제와 아니라 한들 믿을 것 같지도 않고 이런 식으로 하나마키를 속이며 자신을 감추고 싶지도 않았다. 야쿠자인 것을 들킨 이상 차라리 솔직해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하나마키에게서 멀어지기로 했다. 자신이 붙어 있으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고 그 때마다 상처 받는 하나마키를 보고 싶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호사스럽고 사치스러운 사랑을 했다고 스스로 믿기로 했다. 잠깐이지만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도 사랑이란 것을 했다, 라고.

"저기, 히로...." "잠시만요.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벌벌 떨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단호한 목소리다.

"그래 그럼. 먼저 말해."

어차피 무슨 말을 하든 답은 정해져 있었기에 마츠카와는 편안한 마음으로 하나마키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이렇게라도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저는..."
겨우 첫마디를 뗀 하나마키가 조금 망설이다 두 눈을 꼭 감고 소리치듯 말했다. "저는 마츠카와 씨가 무서워요. 하는 일도 무섭고요. 하지만...그것 이상으로 당신을 좋아합니다!" 두려움을 뛰어넘는 사랑을 터놓고 고백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마츠카와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지금 들은 말이 제대로 들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멍하니 앉아만 있자 하나마키가 답답한 듯 다시 말을 잇는다. "그, 그러니까...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니...으아앗!"
꿈이 아님을 깨달은 그는 벌떡 일어나 그대로 하나마키를 안았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가슴에 꼭 안고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정말이지 이런 현실이라면 어떤 시궁창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히로. 히로...타카히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름을 부르며 제 곁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너는 역시 멋진 남자야. 또 다시 내가 반하게 만들다니. 하나마키의 동그란 머리를 부드럽게 쓸며 귓가에 속삭인다.

"사랑해. 정말로 많이 사랑하고 있어. 히로." 중저음의 목소리에 달콤함이 더해지자 머릿속이 초콜릿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키스에 거부감은 생기지 않았다. 조심스레 다가오는 마츠카와의 입술에 하나마키는 기꺼이 입을 벌렸다. 엉키는 혀가 기다렸다는 듯 서로를 탐했다. 호흡을 가다듬는 숨결이 자극적이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떨어진 서로의 입술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금세 민망해진 하나마키는 새빨개진 얼굴로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기 바빴고 그런 하나마키를 보는 것이 재미있어 마츠카와는 일부러 한 번씩 볼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그러면서 정말로 하나마키를 욕심 내도 되는 것인지 믿기지 않아 맑은 눈동자를 응시하고 또 응시했다. 거짓이 없는 깨끗한 눈은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고 있어 마츠카와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신이 있다면 감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정말로 괜찮겠어? 나 같은 놈이 네 옆에 있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놈'이라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제 목을 꽉 끌어안는 손길에 괜히 눈물이 핑 돈다. 진짜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하나마키는 자신의 애인이 야쿠자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것과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했다. 외면하고 싶어도 그 사실이 너무도 명확해 돌아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납치사건 이후 그가 걱정돼 매일 밤 골목 입구에서 하나마키를 기다렸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 미처 가지 못할 때는 최측근인 칸다를 보냈다. 하나마키는 그것이 못내 미안했다. 칸다가 오는 날이면 괜히 눈치를 보게 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칸다 본인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칸다 씨, 이렇게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마츠카와 씨께 말할게요." 어느 날은 도저히 못 참겠어서 말했더니 칸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저는 보스의 명령을 따를 뿐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매우 신경이 쓰입니다만. 진땀이 다 납니다.

그런 하나마키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칸다는 서너 걸음 앞서 걸으며 이어서 말했다. "하나마키 씨 부탁이라면 보스께선 뭐든 다 들어주시겠지만 그 부탁은 안 될 겁니다. 이치카와회 일로 화가 많이 나셨으니까요. 제가 있는 게 많이 불편하십니까?"

"아, 아뇨. 아닙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부정했지만 칸다는 아마 알 것이다. 하나마키가 저를 불편해한다는 것을. 하나마키는 분위기를 바꾸려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타카노 선생님은 잘 계시죠? 마츠카와 씨 주치의시라던데."

타카노 아키라. 그 이름이 언급되자 칸다는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저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칸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다행히 하나마키보다 앞에 있어 들키지는 않았다. "그 인ㄱ...아니, 타카노 씨는 잘 있습니다. 여전히 입만 살았지만요."

유달리 아키라에게만 날을 세우는 칸다가 이상해 하나마키는 사심 없이 질문을 던졌다. "칸타 씨는 타카노 선생님이랑 사이가 안 좋으신가요?" 선생은 무슨! 칸다는 하마터면 울컥 짜증을 낼 뻔했다. 그러나 침착하게 말을 잇는다.

"아닙니다. 애초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인간이니 엮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핫, 죄송합니다! 뭔지는 몰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아 하나마키는 재빨리 사과했다. 하지만 그 순간 고개를 들며 새빨개진 칸다의 귀를 보고 말았다. 어라? 뭐지?

사이가 굉장히 나쁜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집 앞에 도착했고 칸다는 하나마키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돌아섰다. 몇 걸음 걷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보스인가?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서 꺼내자 '타카노 아키라'라는 이름이 떴다. 험악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주머니에 넣었지만 마치 알고 그러는 듯 벨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참다못한 칸다는 다시 핸드폰을 꺼냈고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뭡니까?"

-에, 무슨 전화를 그렇게 받아.

"당신 전화는 그래도 됩니다." -와, 냉정해라. 지금까지 하나마키랑 있었어? "그런 건 보스에게나 보고하는 겁니다." -거참 빡빡하네. "하실 말씀 없으시면...." -있어. 있으니까 끊지 마. 드물게 아키라가 명령조로 말했다.

그냥 확 끊을까, 하던 칸다는 한 번만 참기로 했다. "할 말이 뭡니까?" -왜 그렇게 사무적으로 말해? 지금 업무 보는 거 아니잖아. "타카노 씨." -아키라. "....." -전처럼 아키라라고 이름으로 불러 줘. 전에 없이 달콤한 말을 던진다. 잠시 흔들렸던 칸다는 다시금 마음을 잡고 차갑게 대답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죠! 날 버린 당신에게 '전처럼'의 기회를 줄 것 같아?" 그 말을 끊으로 칸다는 전화를 끊었다.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넣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불안한 마음으로 돌아서자 예상대로 하나마키가 뻘쭘한 얼굴로 서 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듯 어정쩡한 자세로 칸다를 보며 웃는다. "아, 아직 계신 줄 몰랐네요. 하하하." "....." "내, 내일이 타는 쓰레기 버리는 날이라 미리 내놓는다고.."

하필이면 쓰레기를 내놓으러 나왔을 때 듣지 말아야 할 내용을 들은 것 같아 하나마키는 민망했다. 아, 젠장. 못 들은 척 들어가려 했지만 또 타이밍 좋게 그 때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바람에 그러지도 못했다. 칸다는 가만히 하나마키를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집에 술 좀 있습니까?" "네? 아, 네네." "그럼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손님맞이를 하게 된 하나마키는 얼떨결에 칸다를 집에 들였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칸다의 술 상대를 하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마츠카와는 초조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집에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하나마키에게선 전화도 메시지도 없다. 칸다를 붙여놨으니 별일이야 있겠냐만은, 일전에 그런 일도 있었고 하니 괜히 걱정이 되었다. "도대체 집에 도착은 한 건가."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는 그때, 아키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방 문을 열었다. "야, 칸다 퇴근 좀 시켜라." "벌써 했을 거다." "근데 얘 계속 전화 안 받아." "네 전화라 그렇겠지." 정곡을 찌르는 말에 아키라는 목까지 차오르는 욕을 꾹 참았다. "아 몰라. 좀 아까 통화하다 끊겼는데 그때 이후로 전화를 안 받아. 하나마키는 연락 되냐?"

"얘도 안 받아." "아 둘 다 뭐야. 잠적하기로 작정했나?" 슬슬 신경이 쓰여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칸다가 대단해도 만약 기습을 당하거나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인다면 그도 속수무책이 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츠카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차 키를 들고 일어났다.

"나 하나마키 집에 간다." "나도 가! 아직 칸다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키라까지 따라나서 두 사람은 함께 하나마키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마츠카와는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키라는 뭔가 못마땅한 듯 뚱한 표정이다.

"너 열쇠까지 가지고 있었냐?" "당연하지. 히로는 날 믿으니까."

하! 잘났다! 아키라의 얼굴이 짜증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문을 열자 보이는 풍경에 마츠카와와 아키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캔맥주와 안주가 둘이서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집에 있는 술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 와중에 편의점에 가서 새로 사온 흔적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캔맥주가 잔뜩 들어 있는 편의점 봉지가 두 개나 있었기 때문이다.

"얘네 지금 뭐 하냐..."

아키라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미 잔뜩 취해 엎드려 있는 칸다와 헤롱거리며 반쯤 정신을 놓은 하나마키.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으아, 마쯔까아 씨드앗! 헤헤헤." 잔뜩 꼬이는 발음으로 마츠카와를 향해 헤실헤실 웃는 하나마키를 보며 마츠카와는 이마를 짚었다. 쟨 또 뭘 저렇게 귀여운 짓을 하는 거야. 어디 가서 술 먹고 맨날 저러는 건 아니겠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저럴까 그게 더 걱정이었다. 한편 아키라는 엎드린 채 곤히 잠든 칸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화를 끊기 전 격노한 그가 남긴 말이 가슴에 걸렸다.

'날 버린 당신에게 '전처럼'의 기회를 줄 것 같아?' 버린 거 아닌데.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칸다, 일어나. 집에 가야지." 칸다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어깨를 살살 흔들었지만 꿈쩍도 않는다. "완전히 간 것 같은데. 그냥 둬." 만류하는 마츠카와의 말에도 아키라는 칸다를 깨운다. "칸다. 칸다..렌..일어나." 부르는 목소리가 쓸쓸하다.


그런데 그 때, 퍽- 하며 누군가 아키라의 뒤통수를 때렸다. 마츠카와였다. "칸다가 죽었냐? 뭘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 그냥 두라니까." "아오 씨....마츠카와 너 이 자식!" "자게 둬." 그리고는 하나마키를 챙긴다. "히로, 그만 마셔."

마츠카와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 하나마키는 금방 캔 하나를 열어 벌컥벌컥 마셨다. 마츠카와는 억지로 맥주를 빼앗았고, 그게 못마땅해 입술을 비죽이는 하나마키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화내도 안 돼. 너무 많이 마셨어." 살살 달래며 캔을 정리한다. 결국 좁은 하나마키의 집에 건장한 남자 넷이서 함께 자게 되었다. 불편한 자세로 잠든 칸다는 아키라가, 더 마시겠다며 버둥거리는 하나마키는 마츠카와가 전담했다. 손님용 이불을 바닥에 깐 아키라는 칸다 먼저 눕히고 그의 옆에 바싹 붙어 누웠다.

다른 사람과 이불을 같이 덮지 못한다던 그에게 유일한 예외는 칸다였다. 잠든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참으로 오랜만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싸울 땐 냉정한 얼굴로 총을 쏴대면서도 잘 땐 천사가 따로 없다. 칸다가 술에 취한 틈을 타 꼭 안아본다.

그리고 마츠카와는 맥주 캔을 빼앗으려는 하나마키와 씨름하며 억지로 그를 침대에 눕혔다. "자, 그만 자야지. 술은 내일 더 마시자." "으읏, 시러여. 지금 더 주세요오오오!" 평소 바른 생활의 표본이었던 하나마키의 술주정이 이렇게 귀여운 애교인 줄 알았더라면 진작 좀 마시게 할 걸 그랬다는 생각과 자신이 없는 곳에서 이렇게 마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교차해 마츠카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히로, 안 마시고 참으며 히로가 해달라는 거 다 해 줄게." "진짜여? 해주꺼에요?" "응." 아 미치겠다. 동공이 풀린 눈으로 실실 웃으며 혀 짧은 소리를 하는 하나마키는 그냥 덮쳐 달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마츠카와의 입장에서다.
"으음, 그르면 뽀뽀 해주세여! 뽀오뽀오오오!" 손가락으로 마츠카와의 입술을 톡톡 건드리며 뽀뽀를 해달란다. 마츠카와는 피가 거꾸로 솟는 흥분을 꽉 내리 눌렀다. 얘가 아주 날 잡았군.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나 시험하는 건가?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하나마키는 해맑게 웃는 얼굴로 어서 해 달라며 이번에는 제 입술을 톡톡 두드린다. 빨리요오옷!

조르는 목소리도 아주 수준급이다. 마츠카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나마키의 입술로 달려 들었다. 분명 뽀뽀를 해달라고 했지만 그것만 할 자신이 없었다. 해서 아예 진한 키스를 선사한다. 호흡이 곤란한 하나마키가 다급히 그의 어깨를 밀어낼 때쯤에야 겨우 떨어졌다. 후우, 하아, 하아. 참았던 숨을 몰아쉬더니 샐쭉한 눈으로 마츠카와의 어깨를 탁탁 때린다.

"뽀뽀 하라고 했자나요. 왜 이러케 오래 하고 그래요오!" "미안. 귀여워서 그랬어."

천연덕스러운 말에 누워 있던 아키라가 벌떡 일어났다. "아 이것들아! 좀 적당히 해라! 잠이나 자라고!"

버럭 화를 내더니 다시 자리에 눕는다. 어쨌거나 좀 전의 키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하나마키는 더 이상 술을 달라 떼쓰지 않았다. "그만 자자 히로. 이리 와." 마츠카와의 부름에 그의 품에 쏙 안긴다. 이른 아침. 어쩐지 평소보다 잠이 일찍 깬 하나마키는 여느 때와 다르게 번쩍 눈을 떴다. 흐린 시야 사이로 보이는 타인의 목덜미에 흠칫 놀란다. 그러나 곧 그 사람이 마츠카와임을 깨달았다. 아이씨...나 어제 무슨 짓을 한 거야! 놀랍게도 하나마키는 어젯밤 자신이 했던 행동을 모두 기억했다. 아니 왜 이런 걸 일일이 다 기억하는 건데! 그 정도로 술을 마셨으면 잊을 만도 하잖아! 그러나 하나마키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마츠카와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까지도. 그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려 보았지만 어찌나 꽉 껴안고 있는지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조금 더 힘을 줘 벗어나려 하자 마츠카와의 긴 속눈썹이 꿈틀대더니 눈꺼풀이 고요히 올라간다.

"히로...깼어?" "아, 네." 그제야 마츠카와의 팔에서 힘이 빠진다.


"좋은 아침." 지금 막 잠에서 깼는데도 마츠카와의 모습에서는 흐트러짐이 없다. 하나마키는 그것에 새삼 반했다. "좋은 아ㅊ...." "좋은 아침 같은 소리 하네. 어제 둘이 아주 물고 빨고 가관이더만." 부스스 일어난 아키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에 하나마키의 얼굴은 빨갛게 변했고 마츠카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답했다. 그 정도는 아니지. 키스만 살짝 했잖아. "살짝? 혀까지 넣고 ㅃ...." "으아아아악! 시, 식사 하셔야죠! 네? 아침 안 드세요?" 당황한 하나마키가 말을 끊었다. 괜히 분주하게 움직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모습에 마츠카와는 큭큭 웃었고 아키라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칸다는 깨어나지 않았다. 이때다 싶어 칸다의 머리카락을 쓸며 아키라가 중얼거렸다.

"별일이네. 피곤했나?"
하지만 머리카락을 쓸던 손은 곧 이마를 짚었고, 깜짝 놀라 미간을 찌푸린다. "얘 열 나잖아! 피곤한 게 아니라 아픈 거였어." 당황한 아키라가 허둥지둥하는 사이 마츠카와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네가 의사면서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
아, 그랬지!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가 열을 재곤 젖은 수건을 달라며 하나마키를 재촉했다. 토스트를 만들던 하나마키는 급히 차가운 수건을 준비했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칸다를 바라보았다. "많이 안 좋으신가요?" "아니. 그냥 몸살 같아."
별거 아닌 듯 말했지만 아키라의 얼굴은 세상 누구보다 진지했다.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허리를 감싸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냥 내버려 둬. 아키라가 알아서 할 거야. 곁에 있어 봤자 더 할 것도 없었기에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말에 따라 식사를 준비했다. 간단한 토스트와 샐러드를 준비하는 동안 아키라는 칸다 옆에 딱 붙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식은땀을 닦아 준다.
"죽을 병 걸린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하고 와서 빵이나 먹어." 무심한 마츠카와의 말투에 아키라의 얼굴이 확 일그러진다. 너는 꼭 말을 해도!
그러나 결국 일어나 식탁에 앉는다. 불퉁한 얼굴로 우걱우걱 빵을 씹는 모습이 가관이라 마츠카와는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하여간 웃기는 놈. 혼잣말을 하는 마츠카와 앞에 하나마키가 주스를 내밀었다. 이어서 아키라 앞에도 내미는데 으음, 하며 칸다가 뒤척였다. 마침 목이 막혀 주스를 마시려던 아키라는 칸다의 소리에 주스도 포기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후다닥 그의 곁으로 다가가 이마부터 짚었다. 아직은 열이 높았다. "아무래도 집에 가서 약을 가지고 와야겠어." "네 밥부터 먹고 해."
그래도 친구를 챙기고 싶은 건지 마츠카와는 아키라의 식사를 재촉했다. 허겁지겁 빵을 삼킨 아키라는 의료 가방을 가지고 오겠다며 급히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츠카와가 쯧, 하고 혀를 찬다. "히로, 나 주스 좀 더 줘." "네. 여기요."
컵에 따라주며 칸다가 잠든 것을 확인하곤 목소리를 낮춰 묻는다. "근데 칸다 씨랑 아키라 씨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추가로 한 모금 더 주스를 마신 마츠카와도 누워 있는 칸다를 힐끔 보곤 대답한다. "뭐...일단 무슨 사이이긴 했지."
말하기 불편한지 마츠카와는 더 이상 이야기를 잇지 않았다. 괜히 껄끄러운 분위기를 만든 것 같아 하나마키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 사이 칸다는 잠이 깬 상태였고, 둘의 대화를 들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 후 아키라의 진료를 받았지만 받는 내내 경직된 표정을 하고 있어 괜히 하나마키가 더 긴장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별다른 문제 없이 진료를 마쳤다. 아직 열이 내리지 않았지만 칸다는 제 휴대폰을 꺼내 부하들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보스 우리 회 소유의 클럽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식사를 마친 마츠카와는 슈트 재킷을 입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넌 오늘 쉬어." "아닙ㄴ...." "쉬어. 그게 오늘 네가 할 일이다." 단호한 마츠카와의 말에 칸다는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받아들여야 했다.


오늘 비번인 하나마키는 마츠카와를 배웅하며 현관까지 따라갔다. 마츠카와는 하나마키 너머로 아키라와 칸다가 시선을 돌린 사이 하나마키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하나마키는 아직 손님이 있어 부끄러워했지만 마츠카와는 개의치 않는다. "다녀올게."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집을 나선다. 마츠카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던 하나마키가 돌아서자 아키라의 띠거운 시선이 꽂힌다. "아침부터 뜨겁네." 못 본 줄 알았는데 그 와중에 또 봤는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칸다가 한마디 하자 찍소리도 못한다.

"남이사 뭘 하든 왜 타카노 씨가 뭐라고 합니까? 하나마키 씨 집에 신세 지고 있는 주제에." 그 일격에 당해 아키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면서 작게 중얼거린다. 또 타카노 씨라고 하네. 아키라라니까.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는 게 내내 불만인 모양이다. 하나마키는 둘 사이에 끼어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 모처럼의 휴일이라 마음껏 쉴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숙취에 시달리며 손님을 대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몸이 안 좋은 칸다를 나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아, 어쩔 수 없나.

"칸다 씨도 뭐 좀 드셔야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뇨, 괜찮...." "환자잖아요. 뭘 먹어야 약도 먹죠." 만류하는 칸다의 말에도 하나마키는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열이 어느 정도 내릴 때까지 하나마키 집에 있던 칸다는 그날 저녁 제 집으로 돌아갔다. 칸다를 따라나선 아키라가 나을 때까지 돌봐 주겠다고 했으나 단호히 거절한다.

"됐습니다. 약 먹었으니 잠만 푹 자면 됩니다." 매정하게 돌아섰지만 휘청이는 걸음은 어쩔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아키라가 다가가 칸다의 어깨를 안았다.
흠칫 떨며 노려보는 칸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말한다. "불편해도 참아. 집까지만 데려다 줄 테니까. 불안해서 그냥 못 가겠다." 뿌리치려 했지만 꽉 붙잡고 있는 힘을 못 이기는 척 천천히 걷는 칸다. 대체 두 사람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문제가 생겼다는 클럽에 온 마츠카와. 그가 등장하자 영업 준비로 분주하던 클럽 안이 싸하게 변했다. 클럽 오너로 세워 놓은 부하가 급히 달려나와 그의 앞에 허리를 숙였다.
"보, 보스 오셨습니까!" "문제가 있다고 하던데." 마츠카와가 소파에 앉았다. 앉자마자 테이블 위에 그가 즐겨 마시는 술이 대령되었고 모두 긴장한 채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오너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게...이곳이 우리 회 소속인 줄 모르고 어제 칸자키회 녀석들이 와서 행패를 좀 부렸습ㄴ...으아아악!"
오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츠카와는 들고 있던 술잔을 던졌고, 와장창-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났다. 오너는 꿀꺽, 침을 삼키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마츠카와의 목소리에 짙은 노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름도 없는 놈들이 그러게 뒀다?"
칸자키회는 이제 막 생긴 신생회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 바닥에서 마츠카와 잇세이의 이름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그의 휘하에 있는 클럽에서 행패를 부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내 클럽이 언제부터 버러지들이 드나드는 곳이 됐지?"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 "자리를 비워? 내가 너에게 맡긴 역할이 뭐지?" 섬뜩한 눈빛에 오너는 부하들이 있는 것도 잊고 달달 떨었다. "클럽에서 보스의 지시대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 마츠카와 앞에 새 술잔이 놓였다. "결론은 네가 자리를 비운 탓에 그런 애송이들이 와서 휘젓고 다니게 뒀다는 거지." "죄송합니다!" 오너는 허리가 90도로 꺾일 정도로 깊이 숙였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는 마츠카와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에게 임무를 주지."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너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든 시켜만 주시면 해내겠습니다! 각오가 담긴 대답을 한다. 마츠카와가 삐딱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가서 칸자키 그 애송이를 내 앞으로 끌고 와. 이 세계의 룰을 가르쳐야겠다."
"예, 보스!" 오너는 제 밑에 있는 부하들을 데리고 다급히 클럽을 빠져나갔다. 칸다 다음으로 마츠카와에게 가까운 부하가 그의 곁에 다가갔다. "칸다 씨는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하루 쉬고 내일은 나올 거다." "예."

마츠카와가 쓴 술을 들이켰다. 그러곤 영업 준비하라며 부하들을 재촉했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재킷 안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했다. 칸다인가 싶어 꺼내니 의외의 인물이다. [일 끝나면 저희 집으로 와 주세요.] 하나마키였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갔을 텐데, 굳이 문자까지 보낸 것이 귀여워 슬며시 웃음이 났다. 꼭 가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고개를 들자 부하들이 넋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보스가 웃으신 건가? 우, 웃었다고? 보스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부하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표정관리를 했지만 이미 모두에게 보인 뒤였다. 대체 누구에게서 온 메시지였기에 저렇게 부드럽게 웃으셨을까, 하는 것이 부하들의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을 마친 마츠카와는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미 밤 12시가 넘어 다음 날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일이 많아 늦게 끝나고 만 것이다. 물론 하나마키는 그저 일이 끝나면 와 달라고 했고, 지금 그 요구에 딱히 벗어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함께 저녁을 먹고 싶었던 마츠카와로서는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서둘러 하나마키의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놀래켜 주고 싶은 마음에 미리 받은 비상키로 열고 들어가 나 왔어, 하고 인사하는 순간.

식탁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하나마키를 발견했다. 당연히 벨을 누를 것으로 생각했던 하나마키는 갑자기 들이닥친 마츠카와로 인해 흠칫 놀라 슥슥 눈물을 닦았다. "오, 오셨어요?" 억지로 웃는 모습이 역력하다. 마츠카와는 굳은 얼굴로 다가가 하나마키의 얼굴을 잡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왜 울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하나마키는 그저 웃을 뿐이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러나 그런 것에 속을 마츠카와가 아니다.

"아니긴 뭐가. 나한테 말 못할 일인가?"

"아뇨."

"그럼 뭔데. 누가 널 울린 거야?"

단단히 화가 난 마츠카와는 반드시 이유를 듣고야 말겠다는 듯 단호했다. 잠시 망설이던 하나마키가 쭈뼛거리며 마츠카와를 향해 손가락을 든다.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무슨 뜻인지 몰라 마츠카와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나?"

끄덕끄덕. 영문을 모르겠어서 어리둥절한 그 때, 마츠카와의 시선이 식탁으로 향했다. 예쁜 장식이 돼 있는 작은 생크림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마키의 나이에 맞게 꽂혀 있는 초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미 지나간 어제가 그의 생일이었다는 것을. 혹여 폐를 끼칠까 싶어 점점 가는 시간을 보면서도, 초조해서 죽겠으면서도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만 할 뿐 끝내 빨리 오라는 연락을 하지 못한 하나마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차라리 어리광을 부리고 욕심을 내면 좋으련만.

"미안해, 히로. 내가 미처 생각을...."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일찍 오시면 같이 먹을까 했던 것뿐이에요." 서운하면서도 또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한다. 마츠카와는 함께하는 첫 생일을 챙겨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일단 앉자."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꽂혀만 있는 초를 보곤 마츠카와가 그 앞에 하나마키를 앉혔다. 그리고는 재킷 주머니에서 지포라이터를 꺼내 일일이 불을 붙인다. 이미 지나버린 생일이지만 늦게나마 축하해 주고 싶었다.

"늦어서 미안해."

그 말에 괜히 울컥한 하나마키의 눈에 또 눈물이 고였다. "울지 마."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슥 눈물을 닦아 주곤 어설프지만 조용히 노래를 불러 준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히로의 생일 축하합니다. 그중에서도 '사랑하는'을 특별히 강조한다.

선물이고 뭐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왔기에 손이 민망했지만 그의 노래가 좋은 선물이 됐는지 하나마키의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번진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마츠카와의 가슴에 얹혀 있던 무거운 무언가가 살짝 내려갔다.

"저 괜찮아요."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도 축하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네요. 하며 곱게 눈을 휜다. 둘이서 케이크를 나눠 먹고 늦은 잠자리에 든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마츠카와는 내색하지 않고 케이크 한 조각을 모두 먹었다. 씻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하나마키의 생일을 이렇게 지나치는 것이 계속 신경 쓰였다. 이미 잠든 하나마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춘 뒤 품에 꼭 안았다. 미안해. 생일 날 너를 외롭게 만들어서 미안해. 곤히 자는 하나마키와는 달리 마츠카와는 잠들지 못한다.





** 어정쩡하게 끝나서 짜증나시죠....?(눈치눈치) 회지로 낼 작품이라 여기서 완결지을 순 없고, 또 완결을 짓는다 해도 모든 내용을 다 담을 수가 없어 애매하지만 이쯤에서 끊기로 했습니다. 회지로 나올 땐 궁금해하시는 사항을 다 담을 예정입니다.



1. 아키라와 칸다의 관계(+과거의 무슨 일이 있었는지)

2. 하나마키의 생일 다음 날, 마츠카와의 서프라이즈 이벤트 3. 앞으로 이어질 마츠하나의 러브 코미디(?)와 약간의 시리어스한 내용 4. 행복한 결말로 향하는 스토리 까지 모두 담겠습니다.


여기에 적지 않았지만 원고를 하며 더 넣어야 할 내용들도 추가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애매하게 끝나는 썰도 없겠죠...? 네, 죄송합니다ㅜㅜ 하지만 회지로 완성해서 나올 땐 완결까지 제대로 정리해서 돌아올게요!!! 읽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