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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남자 신부 - 1

[오이이와] 남자 신부 - 1


- 남자도 임신이 가능하며, 남자와 남자의 결혼도 가능하다는 설정





나는 오늘 결혼한다. 신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이상한 결혼을 해야만 한다.



오이카와는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으로 잠시 해외에 나갔다 오랜만엔 들어온 그는, 도쿄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병원인 아오바죠사이 종합병원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그가 입국하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모든 병원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의사회 활동을 접고 국내 병원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지 불과 반나절 만의 일이었다.


그만큼 대단한 외과의인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러나 한 가지 굴레에서만큼은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바로 아버지의 사업이었다.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세이죠 그룹의 총수인 그의 아버지는, 건설업이라는 한 분야만을 꾸준히 파온 장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 경기가 좋지 않아 건설업도 타격을 입었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세이죠 그룹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결혼이었다. 오이카와의 아버지가 정한 사돈 상대는 금융업의 대부인 이와이즈미 집안이었다. 자금 운용이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적의 상대인 셈이다. 더구나 아버지들끼리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으니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상대였던 것이다.


“토오루, 표정이 그게 뭐니? 얼굴 좀 펴라.”


어머니의 질책에도 오이카와는 정색한 채 말했다.


“어머니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저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결혼을 정하시다니요.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버지가 정한 사람과 결혼을 하라는 겁니까?”

“그렇게 화만 낼 일이 아니야. 너도 하지메 군은 잘 알잖니.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잖아.”


하지메? 순간 오이카와는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와이즈미 집안이 상대라는 건 알았지만,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 이와이즈미 하지메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저랑 결혼할 사람이 하지메라고요?”

“그래. 이와이즈미 집안에서는 하지메 군 말고는 다 결혼했단다.”


맙소사. 오이카와는 해외에 오래 체류해 있었던 만큼 이곳의 상황을 잘 몰랐었다. 결혼할 상대가 죽마고우라니.


“하지메는 동의한 겁니까?”

“그럼, 동의했지.”

“저한테도 좀 물어보고 하시지, 왜 이렇게 밀어붙이시는 건데요.”

“아버지 때문이라는 거 알잖니. 그리고 상대가 하지메 군이라서 다행이지 않니? 아예 모르는 사람보단 낫잖아.”


어머니의 말을 들어도 오이카와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단 상대가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건 불행 중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와이즈미에게 받은 상처를 아직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 결혼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지메랑 결혼을 하라니, 미치겠군.


말하자면, 집안 간의 정략적인 결혼이었기에 조촐하게 가족들만 모여서 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그에 따라 오이카와는 아버지가 자주 찾는 별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창가에 바싹 붙어 내내 불퉁한 표정만 짓고 있던 오이카와가 일순간 눈썹을 꿈틀거리며 괴고 있던 턱에서 손을 뗐다.


“하지메.”


창밖으로, 지금 막 도착한 이와이즈미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블랙 턱시도를 입은 오이카와와는 반대로 순백색의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그 새하얀 턱시도에 걸맞게 같은 색의 베일을 쓰고 있어 신부의 느낌이 물씬 났다. 게다가 손에는 부케까지.


오이카와는 불쑥 화가 치밀었다. 대체 왜 나랑 결혼하겠다고 하는 거야, 하지메. 그때는 그렇게 밀어냈으면서.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오이카와는 국경없는 의사회에 가입한 뒤 곧바로 해외에 나가 봉사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가기 전, 오래 전부터 짝사랑 해왔던 이와이즈미에게 용기를 내 고백을 했었다. 결과는 보란 듯이 차였지만.


귀국할 때까지 생각했다가 마음을 말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건만, 애석하게도 이와이즈미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그 이후로 오이카와는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지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았고, 이번 귀국도 사실 아버지의 호출이 아니었으면 들어올 생각도 없었던 그였다. 다짜고짜 결혼을 하라는 말에 너무 기가 막혀 귀국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이 반가워, 처음 먹었던 마음을 바꾸고 국내에 남기로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결혼이라니. 게다가 한 번 차였던 상대와 하라니. 그것도 단칼에 차였는데.


이와이즈미가 들어오자 오이카와의 어머니는 잠시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라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와이즈미를 보고 달려들었을 오이카와지만, 그는 시선 조차 주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어머니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참으로 반가운 얼굴이건만, 둘 다 말이 없었다. 게다가 잠시 후면 결혼할 사이였다. 이렇게 불편한 상태에서 결혼하라니. 결국 참지 못하고 오이카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이야, 너.”

“뭐가.”

“왜 나랑 결혼한다고 한 건데? 상대가 나라는 거, 너는 알고 동의한 거라며.”

“……그래.”


긍정하는 말에 한 번 더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 그렇다고? 알면서도 나랑 결혼을 하겠다고, 지금?”


오이카와는 어느새 이와이즈미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던 상대. 하지만 지금은 원망도 분노도 아닌, 그저 서운함만 가득한 존재.


“토오루, 나는…….”

“그래, 하자. 어차피 정략결혼인데 상대가 누구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


이와이즈미는 가슴이 후벼 파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토록 다정하고 자상했던 오이카와를, 자신이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듯 했지만 이와이즈미는 끝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촐하고도 조용한 두 사람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서로 반지를 나누어 끼고, 사랑의 서약까지 했건만 진실된 사랑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이카와의 얼굴은 내내 굳어 있었고, 이와이즈미는 침울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을 했고, 부부라는 이름 아래에 있게 되었다.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오른 비행기 안.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리는 오이카와와 그런 오이카와 옆에서 비스듬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와이즈미. 누가 봐도 방금 결혼한 신혼부부로는 생각되지 않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도 두 사람은 마치 낯선 사람들처럼 거의 각자 행동했다. 오이카와는 매일 밤 잔뜩 술에 취한 채 늦게 들어왔고, 이와이즈미는 그런 그를 재운 뒤 밤새 울기를 반복했다.


미안해. 미안해, 토오루. 내가 용기가 없어서 그랬어.


말해도 듣지 못할 오이카와 앞에서 이와이즈미는 계속해서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




오이카와가 나타나자 마치 홍해의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모든 의료진이 반으로 쫙- 갈라졌다. 그가 출근한 첫날부터 아오바죠사이 병원은 잔뜩 들떠 있었다. 천재 외과 의사 오이카와 토오루가 근무하는 병원이라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은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간호사들은 저마다 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그가 지나갈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쑥 내밀기 일쑤였다.


“어쩜, 너무 잘생겼어.”

“장난 아니지? 죽도록 고생했어도 이 병원 들어오길 잘했어.”

“그러게 말이야. 근데 얼마 전에 결혼하셨다지? 아, 정말 아깝다.”

“어머, 얘는. 결혼 안 하셨으면 뭐 우리한테 눈길이라도 주실까 봐? 멋진 여자들이 줄을 섰을 걸?”

“하긴. 집안 빵빵하지, 본인 스펙 죽이지, 얼굴 잘생겼지.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어.”


간호사와 여의사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오이카와 이야기가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 또한 섬세하고 정교한 기술로, 어려운 수술도 거뜬히 해내는 덕분에 수술 성공률이 매우 높아졌다.


한편, 고등학교 교사인 이와이즈미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느껴지는 싸늘한 공기에, 오늘도 오이카와가 집에 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병원에 출근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대형 사고가 나는 바람에 가장 가까운 병원이었던 아오바죠사이 병원으로 수많은 환자가 이송되었다. 그 덕에 오이카와는 수술과 진료 때문에 병원에서 지냈다.


“갈아입을 옷이 필요할 텐데.”


잠깐 고민했으나, 이와이즈미는 서랍에서 오이카와의 속옷과 갈아입을 옷 몇 가지를 챙겼다. 아무리 소원한 사이라 해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


병원에 도착한 이와이즈미는 곧장 오이카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이미 박사 학위를 받은 그였고, 국내로 들어오자마자 도쿄내 최고의 의대에서 그를 교수로 채용했다. 때문에, 의사로서는 조금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개인 사무실을 받을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고 가고 싶은 마음에, 오이카와가 있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자리는 비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준비해 온 옷가지가 담긴 종이가방을 오이카와의 책상 위에 놓고 돌아섰다. 전화라도 해볼까, 했던 마음을 참고 이와이즈미는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갔다. 괜히 전화했다가 바쁜 그를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7년 전의 일을 사과하고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시간이 맞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 계단을 내려가던 그의 귀에 다급한 목소리가 꽂혔다.


“어어, 조심하세요!”


그의 뒤에서 커다란 서류함을 들고 내려오던 남자 간호사가 발이 살짝 미끄러져 앞에 있던 이와이즈미를 툭- 치고 말았다. 오이카와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던 이와이즈미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자칫 잘못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 이와이즈미를 향해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겨우 큰 부상은 면할 수 있었지만 발목을 접질리고 말았다.  


“괜찮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와이즈미를 친 간호사가 머리를 숙이며 거듭 사과했고, 이와이즈미는 괜찮다는 말로 그를 보냈다. 그리고 자신을 붙잡아 준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백의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병원 의사로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이와이즈미는 왼쪽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더는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일어나려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발목을 삔 것 같은데요. 뭐, 마침 병원이니 진료 보고 가시죠.”

“괜찮…….”

“의사의 눈으로 봤을 때 절대로 안 괜찮습니다. 자, 저 잡고 일어나세요.”


남자는 친절하게도 이와이즈미를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부축을 하기 위해 바싹 다가가 이와이즈미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막 어깨에 걸치려던 이와이즈미의 팔을 잡는 다른 손길이 없었더라면.


“무슨 일이야, 하지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언제 온 것인지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제 곁으로 당기며 물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안겨 보는 오이카와의 품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이 순간 자신이 다친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다시 한 번 네 품에 안길 수 있어서 다행이야. 오이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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