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ritten by. Sanzo/HQ!! 글연성

[마츠하나] 회사원 (+오이이와) 7화

[마츠하나] 회사원 (+오이이와) 7화

 

 

7. 우리 아이에게 친구가 생겼네?!

 

 

마츠카와와 하나마키가 나란히 출근해 사무실로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동료들이 살짝 놀라는 기색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평소 둘의 관계라고 하면, 눈만 마주쳐도 휙 고개를 돌려버리는 앙숙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마키 쪽에서 더 그랬었다.

 

그랬던 둘이 사이좋게 출근이라니. 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동료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 만났겠거니, 생각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하나마키를 대하는 마츠카와의 태도야 늘 능글맞았지만 그 정도가 오늘따라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부르는 호칭까지 달라져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 일을 하던 중,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서 받을 자료가 생겼다. 원래라면 '하나마키 씨'라고 부르며 자료를 달라고 하거나 아예 사내 메신저를 이용해 말했을 텐데, 너무도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타카히로, 그저께 말했던 카나이시 선생님 원고 좀 보내 줘."

".......!"

 

하나마키의 얼굴이 당혹스럽게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분위기를 모르는 것은 마츠카와뿐이었다.

 

"뭐해? 얼른 줘."

 

하나마키가 잔뜩 얼어 있는 것을 보면서도 마츠카와는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헐.....방금 그거 들었어요? 팀장님이 하나마키 씨 보고 '타카히로'라고 불렀어요."

"그러니까요. 나만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옆자리에 앉은 팀원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하나마키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무리 사귀게 되었어도 그렇지! 여긴 직장이란 말입니다, 망할 놈의 팀장님아!

 

마음의 소리를 꾹꾹 내리누르며 하나마키가 떨떠름한 얼굴로 마츠카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첨부파일에 그가 원하는 원고를 붙인 뒤, 분노의 마음을 담아 내용을 작성해 보냈다.

 

잠시 후, 그것을 확인한 마츠카와가 큭큭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하나마키는 짜증으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좋냐? 너는 웃음이 나오냐고!

 

팀원들의 묘한 시선 때문에 하나마키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지만 애써 모르는 척 일에 집중했다. 그러나 잠시 마츠카와가 자리를 비운 덕분에 짬이 나자 주변에 앉아 있던 팀원들이 순식간에 하나마키에게 몰려들었다.

 

"하, 하, 하나마키 씨! 어떻게 된 거예요? 팀장님이랑 사이 나쁜 거 아니었어요?"

"아, 그게....."

"아까 팀장님이 하나마키 씨를 '타카히로'라고 부른 거 맞죠? 저희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하나마키가 대답할 새도 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마츠카와와 하나마키가 사무실 내에서 가장 연장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친해도 팀원들은 그들을 이름으로 부르지 못했다. 그건 두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것이 오늘 깨진 것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던 끝에 하나마키는 그럴 듯한 변명을 생각해 냈다.

 

"아....뭐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모두들 알다시피 나랑 팀장님이랑 나이가 같으니까, 술 마시면서 얘기하다 그냥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기로 해서 그런 겁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참 좋은 이유라고 생각하며 하나마키는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겨우 가라앉혀 놓은 불에 누군가 장작을 던져 넣었다.

 

"헤에, 그런 이유였어? 우리가 그런 이유로 이름을 부르게 됐구나."

 

움찔-

 

언제 나타난 것인지 마츠카와가 하나마키의 뒤에서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하나마키는 크게 몸을 떨었고, 주변에 몰려 있던 팀원들도 깜짝 놀라 마츠카와를 바라보았다.

 

겨우 이성을 되찾은 하나마키는 최대한 침착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그런 이유였지요. 하지만 팀장님, 여긴 회사니까 반말이나 이름을 부르는 건 그만두세요. 사적인 자리에서만 그러기로 한 거잖습니까?"

 

얼굴에 경련이 일도록 억지로 웃는 하나마키의 모습이 우스운지 마츠카와가 들고 있던 서류로 살짝 얼굴을 가리곤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아, 그랬죠. 하나마키 씨. 내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깜박했네. 우리가 워낙 오랫동안 사이가 안 좋았다가 친해지는 바람에 굉장히 들떴었나 봅니다. 자, 그럼 일들 하죠."

 

다행히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주장에 말을 맞춰 주었다. 일단 그것으로 팀원들의 궁금증은 별거 아닌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얼마 뒤, 진짜가 터질 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읍...오이ㅋ...."

 

쪽. 쪽쪽. 츄웁.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오키아와의 입술이 이와이즈미의 입술을 덮었다. 그리고는 갈증에 시달리다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깊고 농염하게 혀를 얽었다. 한 손으로는 이와이즈미의 머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를 감싸 안아 자신에게 바싹 붙인 오이카와는 숨 샐 틈 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이와이즈미가 임신한 뒤, 잠자리를 최소화한 덕분에 오이카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물론 임신을 했다고 해서 아예 관계를 끊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와이즈미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피하고 있었고, 오이카와도 그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최대한 배려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애가 타는 건 오이카와쪽이었다. 때문에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틈만 나면 이렇게 달려들어 진한 키스를 하게 되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지 네 달쯤 지나니 다행히도 입덧은 잦아들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사다 주는 음식을 곧잘 먹었다.

 

"...후아....."

 

입술이 떨어지자 이와이즈미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야....나 임산부라고. 이렇게 숨을 못 쉬게 하면 어떡하냐."

 

벌게진 얼굴로 헉, 헉, 몰아쉬는 모습은 괜히 오이카와의 이성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이와이즈미가 대답 없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손으로 건드렸다.

 

"오이카와?"

"하...."

 

대답 대신 싶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이카와는 초인적인 이성으로 본능을 억누르고 이와이즈미를 품에 안았다.

 

"이와쨩, 나 미칠 것 같아. 이와쨩도 아가쨩도 다 소중하지만 오이카와 씨 요즘 너무 외롭다고."

 

밤마다 상대는커녕 등을 돌리고 눕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는 혼자서 쓰린 속을 달래야 했다. 실은 이와이즈미도 다 알고 있었지만, 아이를 가진 후 시간이 지날 수록 몸이 뻐근해지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져 오이카와를 방치하다시피 두게 되었다.

 

그래도 더는 외롭게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이즈미가 옅게 웃으며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오이카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알았어. 오늘은 하자."

"진짜?"

 

금세 환해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오이카와가 또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그치만 이와쨩 힘들면 안 되잖아. 요즘 잠도 많아지고 해서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어 하고, 회사 와서도 자주 졸잖아."

 

임신하면 잠이 많아지는 현상 때문에 이와이즈미의 컨디션이 어떤지 잘 알고 있는 오이카와는 무작정 떼를 쓸 수만은 없었다.

 

"괜찮아. 잠이 잠아진 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건 다 좋으니까."

 

이와이즈미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오이카와도 더는 빼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이와이즈미를 더욱 세게 안았다.

 

"사랑해, 이와쨩."

 

두 사람이 사랑을 속삭이며 밤에 있을 오붓한 시간까지 약속한 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이, 어이. 회사 비품실을 밀회 장소로 쓰지 말라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하는 이는 마츠카와였다. 언제처럼 영업부 사무실이 있는 3층 비품실에서 몰래 만남을 가졌던 두 사람은, 설마 마츠카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 어떻게 마츠카와 팀장이 여기에 있어요?"

 

오이카와가 당황한 얼굴로 묻는 사이, 이와이즈미는 그 틈을 타 사무실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이와이즈미를 마츠카와가 붙잡았다.

 

"잠깐만, 이와이즈미 씨. 난 오이카와 팀장이 아니라 이와이즈미 씨한테 볼일이 있어서 기다린 겁니다."

"네?"

"사무실에 갔더니 둘 다 나갔다 그래서, 혹시나 또 여기가 아닐까 해서 왔더니 혹시나가 역시나더군요."

 

화르륵-

 

안 그래도 빨간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그런 이와이즈미의 앞을 오이카와가 막아섰다.

 

"이와쨩한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지금 이와쨩은......"

 

마츠카와가 살짝 고개를 숙여 오이카와에게 귓속말을 하듯 말했다.

 

"임신 중이라서 힘들다는 건 알지만, 아주 잠깐이면 되니까 이와이즈미 씨 좀 빌립시다."

"뭐, 뭐.....어,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한 번도 이와이즈미의 임신 사실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는 것일까? 오이카와가 당황한 얼굴로 되묻자 대답은 이와이즈미에게서 나왔다.

 

"내가 하나마키한테 말했어. 어차피 하나마키는 대충 알고 있었고. 그리고 하나마키랑 마츠카와 팀장님이랑 사귀는데 모를 리가 있나."

 

이와이즈미의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이카와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마츠카와 팀장이랑 하나마ㅋ....우웁!"

"시끄러우니까 복도에서 이러지 말고 다시 들어갑시다."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입을 턱- 막은 채 비품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어서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내쉬며 들어간 뒤 안에서 문을 잠갔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오이카와는 마츠카와의 손을 쳐냈다.

 

"아 뭐하는 겁니까?"

 

불만스럽게 묻는 목소리에도 마츠카와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야 하나마키와 사귀고 있다는 걸 다 떠벌리고 다니고 싶지만 우리 하나마키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복도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말했다간 큰일납니다."

"하! 어이가 없네. 그래서, 우리 이와쨩한테는 무슨 볼일이 있는데요?"

 

티격태격 다투며 두 사람 모두 이와이즈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왜 마츠카와가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지 못했다.

 

"이와이즈미 씨, 혹시 요새 하나마키가 무슨 얘기 안 했습니까?"

"얘기라니, 어떤......"

"어떤 거든 좋습니다. 일이 힘들다든지, 누구와 사이가 안 좋다든지, 아니면 컨디션이 별로라든지....없습니까?"

"글쎄요. 특별한 건 없는데요."

 

지난 네 달 동안 둘이서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오히려 이와이즈미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요? 흠, 가장 친한 친구가 이와이즈미 씨라 무슨 일이 있어다면 반드시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마키에게 무슨 일 있습니까?"

 

고민하던 마츠카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새 밥 먹는 게 영 시원찮아서요. 신경도 굉장히 예민해져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피곤해 보입니다. 요즘은 야근도 거의 안 하는데 늘 졸고 있거든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리고는 느리게 고개를 돌려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눈이 마주치자 끄덕,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둘의 태도로 보아 뭔가 짐작 가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 마츠카와만 답답해하고 있었다. 얘기만 듣고 어떻게 금세 깨달은 것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은 확실히 아는 듯했다.

 

"뭡니까, 두 사람? 뭔가 아는 것 같은데 공유 좀 합시다."

 

혼자서만 모르는 것이 이렇게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것인 줄 몰랐다. 마츠카와의 재촉에 이와이즈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팀장님, 혹시...."

 

묻기 거북한지 이와이즈미가 뜸을 들이자 지켜보고 있던 오이카와가 대신해 물었다.

 

"이와쨩도 참. 마츠카와 팀장, 하나마키 씨랑 잔 거 맞죠? 사귀니까 당연히 잠자리도 하고 있을 거 아닙니까."

"뭐, 흠. 그렇긴 합니다만.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옵니까?"

 

조금 당황한 마츠카와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하자 그 대답으로 인해 이와이즈미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오늘 조금 일찍 퇴근하셔서 하나마키 데리고 산부인과 가보세요.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으니까요."

"........."

 

마츠카와는 대답 없이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누가 뭐를 해?

 

"자, 잠깐만......이와이즈미 씨 뭐라고 했습니까? 뭐.....이, 임신이요?"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그저 몸이 안 좋은 것이겠거니, 피로가 누적되어 그러는 것이겠거니 했다. 그가 예상하고 있던 대답에 '임신'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와이즈미는 그 임신이 아주 확실한 것처럼 말했다.

 

놀라서 말까지 더듬는 마츠카와를 향해 오이카와가 설명을 덧붙였다.

 

"마츠카와 팀장, 설마 하나마키 씨 안으면서 임신할 거라는 생각 전혀 안 해 본 건 아니겠죠? 때가 맞으면 한 번만 잤어도 임신하게 된다고요. 근데 네 달이 넘도록 조금도 생각을 안 한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하나마키가 전혀 그런 티를 안 내서요. 저라고 왜 생각을 안 했겠습니까? 하지만 당사자가 아무 말이 없으니 몰랐던 거죠."

"아무튼 임신해서 입덧을 하는 것 같으니까 지금보다 훨씬 신경 많이 써 줘야 합니다. 우리 이와쨩도 엄청 고생했다고요."

 

예상도 못한 이야기에 마츠카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입을 딱 벌렸다. 잠시 그렇게 서 있더니 그는 고맙다는 한마디만 남긴 채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4층으로 냅다 뛰었다. 비품실에 남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역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나쁜 소식이 아니라 내심 기뻐했다.

 

"이야, 이거 우리 아이한테 친구가 생겼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리고는 그 자세 그대로 이와이즈미를 올려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이와쨩, 배 많이 나오기 전에 우리 빨리 결혼하자."

"....어?"

"왜 그렇게 놀라? 나랑 결혼 안 하려고 했어?"

"어, 그거야.....해야지."

"멋지게 청혼 못 해서 미안해. 나중에 다시 잘 할게."

 

이와이즈미가 사뭇 미안해하는 오이카와의 얼굴로 손을 뻗어 살짝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됐어. 이걸로 충분하니까. 번거롭게 뭘 또 해?"

"그래도 할 거야. 조금만 기다려, 이와쨩."

"하아....알았다."

 

말린다고 들을 성격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이즈미는 빠르게 포기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 때, 이와이즈미의 왼쪽 약지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

 

 

 

아직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하기 전. 상황은 마츠카와가 오이카와, 이와이즈미와 비품실에서 헤어진 날로 돌아간다.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열심히 사무실로 달려간 마츠카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하나마키를 발견했다.

 

"타카히로.......씨! 잠깐만 나 좀 봅시다."

 

'하나마키 씨'로 불렀어야 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면 이젠 아래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익숙해져 자신도 모르게 '타카히로'라는 이름이 먼저 나왔다. 겨우 끝에 '씨'를 붙여 위기는 모면했지만 하나마키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회사에서는 이름으로 부르지 말랬잖아요!

 

짜증 섞인 시선을 감내하며 마츠카와가 굵은 땀방울을 매단 채 어색하게 웃었다. 휴게실로 이동한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전했다.

 

너,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아.

 

"네? 지금 뭐라고......"

 

하나마키 역시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요즘 네 컨디션이 별로인 것 같아서 이와이즈미 씨한테 상담하러 갔었거든. 근데 네 증상을 하나씩 말할 수록 두 사람 표정이 딱딱하게 굳더라고."

"그, 그래서요? 증상만 듣고 제가 임신했다고 하던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하나마키도 살짝 의심은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쯤 몰래 테스트기를 사용하거나 병원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뭔가 하기도 전에 마츠카와가 먼저 선수를 치니 그도 당황한 것이다.

 

"이와이즈미 씨가 자기가 겪었던 증상이랑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 오늘 당장 너 병원에 데리고 가 보라더라."

 

거기까지 들은 하나마키가 옅게 한숨을 내쉬며 휴게실 벽에 기대었다.

 

"안 그래도 오늘 가볼 생각이었어요."

"......뭐라고?"

"병원에 갈 생각...."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넌 네가 임신한 걸 알고 있었단 말이야?"

"그런 게 아니라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하나마키는 마츠카와를 의자에 앉힌 뒤, 그의 맞은편에 마주 보고 앉았다.

 

"알고 있었다기 보다는......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확실해지면 말하려고 했던 거예요. 괜히 미리 말했다가 아니면 팀장님이 실망하실까 봐."

 

마츠카와가 커다란 손으로 하나마키의 머리를 당겨 안았다.

 

"아니면 아닌 거지, 실망을 왜 해?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 가지면 되잖아. 그런 거 신경 쓰느라 나한테 말 안했던 건가? 하여간 답답하긴."

 

부드럽게 나무라면서도 마츠카와의 손은 하나마키의 등을 따스하게 다독거렸다. 혼자서 끙끙 앓았을 것을 생각하니 못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알았으니 오늘 가서 확실히 하면 그만이다.

 

"오늘 바쁜 일은 거의 다 끝냈으니까 좀 일찍 퇴근하자."

"네."

"임신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실망하지 않으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 알았지?"

 

마츠카와의 위로에 하나마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강 업무를 마친 늦은 오후. 마츠카와는 손목시계를 보곤 하나마키를 향해 살짝 눈짓을 했다. 그것을 본 하나마키가 알았다는 뜻으로 피식 웃고는 서둘러 작업하던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쩐 일로 빨리 일을 마감하는 마츠카와를 보고 팀원들이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을 했다.

 

게다가 하나마키까지 컴퓨터를 끈 뒤 책상에 어지럽게 놓여 있던 문서들을 하나둘 치웠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옆자리 동료가 조용히 물었다.

 

"하나마키 씨, 퇴근하시게요?"

"아, 네. 오늘 좀 급한 일이 있어서 일찍 나가려고요. 팀장님께 허락 받았습니다."

 

먼저 가는 것이 미안한지 하나마키가 멋쩍은 얼굴을 하자 동료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시면 얼른 가야죠.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수고해요."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간 하나마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몇 분 뒤, 마츠카와도 오늘은 일찍 가겠다며 유유히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남은 동료들은 마츠카와가 나가자마자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 뭐야? 두 분이서 데이트라도 하시려나?"

"그러게요. 약속하고 나가는 거 완전 티 나는데 모르시나 봐요."

"시간 두고 나가는 거 되게 고전적인 거 아닌가요? 하하하하. 진짜, 두 분 너무 순진하신 것 같아요."

"내 말이요. 처음엔 우리 모두 속았지만 지난 네 달 동안의 패턴을 보면 둘이서 사귀고 있다는 거 금방 알겠던데. 두 분만 모르나 봐요. 우리가 알고 있다는 거."

"뭐, 같은 직장에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니 쉬쉬할 수밖에 없는 건 이해하지만. 팀장님이 너무 티가 나잖아요. 맨날 '타카히로'라고 부르고. 그러면 하나마키 씨는 새빨개지셔서 막 화내고.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니까요."

 

설마 동료들이 모두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손을 꼭 잡은 채 산부인과로 향하고 있었다.

 

 

 

-

 

 

 

집으로 돌아온 하나마키는 병원에서 받은 초음파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작은 게 지금 내 뱃속에 있다는 거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의사의 입을 통해 '임신'이라는 확답을 듣자 머리가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싫어서가 아니라 뭔가 믿기지 않아서였다. 마츠카와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무척 좋아했고, 그걸 보니 하나마키 역시 웃음이 났다.

 

그리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차 안에서 그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도, 아름다운 꽃다발도, 반짝이는 반지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만큼 감정이 벅차올라 결국 펑펑 울고 말았다. 달리던 차를 길가에 세운 마츠카와가 온화하게 웃으며 우는 하나마키를 안은 채 토닥이며 달래었다.

 

아무것도 없이 프러포즈 해서 미안해. 그래도 받아 줬으면 좋겠다.

 

담담하게 말하는 듯했지만 어쩐지 평소답지 않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여서 하나마키는 그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언제나 당당하게 구는 마츠카와지만, 자신에 한해서는 늘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이런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울면서도 하나마키는 행여 대답하지 않은 것을 오해할까 싶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의 표현을 했다. 눈물의 프러포즈 이후 마츠카와는 더욱 살뜰히 하나마키를 챙겼고, 그러는 중에 결국 팀원들이 먼저 두 사람 사이를 공개했다.

 

팀장님이랑 하나마키 씨, 두 분 사귀고 있는 거 다 아니까 이제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부러 눈치 보면서 휴게실 가서 데이트 안 하셔도 돼요.

사내 메신저를 사랑의 메신저로 쓰지 마시란 말입니다. 부럽잖아요!

 

관계가 공개되자 마츠카와의 애정공세는 더욱 노골적이게 되었고, 그때마다 팀원들의 공분을 샀다. 그런 마츠카와로 인해 부끄러워하면서도 내심 행복한 하나마키였다. 그리고 그 즈음, 영업팀의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의 청첩장이 회사에 폭탄처럼 날아들었다.

 

두 사람 사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영업팀 팀원들은 놀라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고, 거기에 더불어 이와이즈미의 임신 사실까지 밝혀지자 영업팀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소꿉친구이기 때문에 그저 조금 과하게 친한 친구사이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영업팀 직원들이 놀란 것에는 사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둘의 관계를 모르고 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팀원들 각자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여직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오이카와는, 곧 아이 아빠가 된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그를 좋아하고 따랐던 여직원 전체는 단체로 실연에 빠지고 말았다.  

 

게다가 이상하게 남자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이와이즈미 역시, 오이카와의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뭇 남성들의 가슴에 멈추지 않는 비가 내리게 만들었다.

 

"이야, 이와쨩이 남직원들에게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었는 줄 몰랐네. 하마터면 뺏길 뻔했어. 물론 뺏길 오이카와 씨가 아니지만."

 

한바탕 소동이 일었던 출판사에서 퇴근한 후, 어쩌다 보니 네 사람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함께 사는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둘의 결혼을 축하할겸 가볍게 저녁 식사만 할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맥주를 사서 집까지 와 있었다.

 

약간 취기가 오른 오이카와는, 낮에 청첩장을 돌렸을 때 아련한 시선으로 이와이즈미를 바라보던 남직원들이 떠올랐는지 귀여운 질투를 했다. 그에 이와이즈미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취했으면 잠이나 자."

 

자신의 어깨에 매달려 칭얼거리는 것이 귀찮은지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덩치도 더 크고 힘도 센 그가 쉽게 밀릴 리 없었다.

 

"아잉, 자면 안 되지. 나 오늘 기분 좋아서 이와쨩 안고 싶단 말이야."

 

화르르르륵.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른 이와이즈미가 벌게진 얼굴로 오이카와의 머리를 확 밀었다. 당황하니 없던 힘도 발휘된 것이다.

 

"너 지금....지금, 여기에 누가 있는 줄 알고...하아....."

 

맞은편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마츠카와가 싱글싱글 웃었다.

 

"사이가 좋네요, 이와이즈미 씨."

 

놀리는 듯한 말투에 하나마키가 얼른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모르는 척 하라는 듯이. 그때, 저만치 밀려났던 오이카와가 다시 이와이즈미에게 밀착하며 말했다.

 

"근데 우리 다 동갑 아닌가? 그냥 친구하자. 맨날 누구누구 씨 하는 것도 불편잖아."

"너 진짜 취했냐?"

"아니, 이와쨩. 내 말이 틀려? 다 친구 맞잖아."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합시다."

 

상황을 정리하려던 이와이즈미의 말을 끊으며, 마츠카와가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하나마키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오이카와 팀장 말이 맞아. 우리 다 동갑이니까 이런 사석에선 말 편하게 하자고. 회사에서는 서로의 직함이 있으니 그렇게 불러 주고. 좀 편하게 지내자. 어때?"

 

마츠카와의 물음에 이와이즈미와 하나마키는 대답이 없었지만 오이카와만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오, 좋아! 야, 마츠카와. 나 술 한 잔만 더 줘."

"그래."

 

금세 말을 놓은 두 사람을 보며, 진짜 친구인 하나마키와 이와이즈미는 할 말을 잃었다. 둘의 생각은 같았다.

 

쟤네 언제부터 저렇게 친했어?

 

"이와쨩이랑 하나마키는 술 못 마시지? 여기, 주스 마셔."

 

취기가 오른 와중에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챙겼다. 두 사람 앞에 주스를 내려놓은 그가, 다시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우리 애기랑 마츠카와네 애기 말이야. 태어나면 역시 친구일 것 같은데. 생일은 우리 애가 더 빠르긴 하겠지만 같은 해에 태어나니 친구잖아."

"맞네."

 

마츠카와가 동의하며 캔맥주 하나를 새로 뜯었다. 칙- 소리와 함께 열린 시원한 맥주가 마츠카와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뭔가 되게 기분이 묘하다. 우리도 친구인데 애들까지 친구가 된다니.....막 신기하고 그래."

 

오이카와 역시 새로 연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만 마시라며 말리는 이와이즈미의 잔소리에 결국 그것이 마지막 맥주가 되었지만. 신 나게 즐기던 맥주 파티가 어느덧 끝나고, 돌아가기 위해 일어서는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를 향해 이와이즈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하나마키."

"응?"

"둘은.....언제 결혼해? 하긴 할 거잖아."

 

부르기는 하나마키만 불렀지만 아직 결혼에 대해 말이 없는 두 사람 모두에게 묻는 말이었다. 그러자 마츠카와가 하나마키의 허리를 당겨 안으며 말했다.

 

"조만간 할 거야. 우리 청첩장까지 뿌려지면 아마 또 한 번 출판사 뒤집힐 텐데."

 

재미있다는 듯 웃는 마츠카와를 보며 하나마키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뭐, 너희 결혼식 끝나고 좀 이따가 할 예정이야. 아무튼 빨리 쉬어. 벌써 시간 많이 늦었다."

"그래. 조심해서 가라."

 

하나마키의 설명을 들으며 이와이즈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두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섰다. 이미 침대에 뻗어 있는 오이카와를 보곤 한숨이 절로 났지만 기분이 좋아 저러는 것이겠거니 했다.

 

술상을 치우고 먹은 안주까지 정리하고 나자 새벽 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서둘러 오이카와의 옆에 눕자 진한 술냄새가 풍겨왔다. 윽, 하며 손으로 코를 막았다가 이내 웃으며 막았던 손을 푼 뒤 오이카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 세상 그 어떤 곳보다 네 품이 제일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