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오이카와 생일 축하 글연성

 

 

 

함께한 시간을 되돌아 보면, 딱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지금까지 너와 함께인 것일까?

 

 

 

 

<오이카와 토오루 생일 축하 글연성> - 또 하나의 너와 나

 

 

 

 

"오이카와, 그만 일어나."

"음....조금만 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항상 먼저 일어나는 건 이와이즈미, 늦잠을 자는 건 오이카와였다.

 

"너 어제도 이러다 늦을 뻔 했잖아. 너희 감독님도 참 대단하다. 나 같았으면 벌써 널 잘랐을 텐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와이즈미는 잠투정을 부리는 오이카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하지만 너무 여유롭게 봐줄 수만은 없었다.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정말로 일으켜 세워야 할 것 같았다.

 

"오이카와."

 

결국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등 밑으로 손을 넣어 강제로 기상을 시켰다. 몸은 일어났으나 눈은 떠지지 않는 기묘한 상태였지만, 일단 앉혀 놨으니 조금 있으면 씻으러 갈 것이라 생각했다.

 

"빨리 씻고 와라."

 

오이카와가 씻는 사이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준비할 요량으로 일어나려던 이와이즈미는, 갑자기 허리를 감싸는 감각에 놀라 주춤했다. 하지만 제대로 놀랄 틈도 없이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

 

"야."

"이와쨩, 모닝 키스."

 

눈도 뜨지 못한 채 입술만 쭉 내미는 오이카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반듯한 이마를 찌푸렸다. 이걸 그냥, 확!

 

"이거 안 놔?"

"키스 안 해주면 오이카와 씨 안 일어날 거야."

 

매일 이런 식이다. 오이카와는 아침마다 기상을 빙자한 모닝 키스를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이와이즈미의 싸늘한 대답을 들어야 했지만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뭐라고 하다가도 결국은 입을 맞춰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가 애냐? 어리광 부리지 말고 일어....."

"빨리 해 줘."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오이카와의 입술은 점점 더 다가왔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간 오이카와는 결국 지각할 것이고, 그것 때문에 속이 터지는 건 이와이즈미일 것이 안 봐도 뻔했다. 한숨을 몰아쉬던 이와이즈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쪽, 하고 입술을 부딪쳤다.

 

"이야, 오이카와 씨 눈이 번쩍 떠지네. 나 씻고 나올게."

 

그저 가벼운 입맞춤만 했을 뿐인데도 오이카와는 마치, 왕자의 키스를 받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꼭 안고 있던 허리를 뽀뽀 한 방에 쉽게 풀어 준 상황이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오이카와가 들어간 욕실을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와이즈미는 헛웃음을 지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토스트를 굽고 달걀 프라이를 만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샤워를 마친 오이카와가 커다란 타올을 허리에 감고 나왔다.

 

"옷 좀 입어라."

"뭐 어때. 서로 알 거 다 아는 사이인데."

 

씨익 웃으며 식탁 의자에 앉은 오이카와는 변함없이 깔끔하게 세팅 되어 있는 식기들을 보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와쨩다워.

 

"앉아서 실없이 웃을 시간 있으면 빨리 먹기나 해. 나도 오늘은......"

"일찍 가야 하는 날이지?"

 

방금 갈아서 만든 과일 주스를 내려놓다 이와이즈미가 의외라는 눈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너 알고 있었냐?"

"당연하지. 이와쨩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오늘 중간 점검 하는 날이라 발표해야 한다며."

"....어. 맞아."

 

어젯밤, 흘리듯이 한 얘기를 설마 오이카와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지 이와이즈미는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신경을 써 주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빨리 먹을게. 이와쨩도 얼른 먹어."

"응."

 

맞은편 자리에 앉아 정성껏 만든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려던 이와이즈미는 갑자기 치미는 구역질에 입을 틀어막았다.

 

"웁."

 

잠깐 그런 것이겠거니, 했는데 다시 먹으려는 순간 또 구토를 할 것만 같아 결국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 이와쨩?"

 

놀란 오이카와가 급히 따라갔지만 이와이즈미는 문을 닫아 버렸다.

 

"괜찮으니까 가서 밥 먹어."

"괜찮긴 뭐가! 이와쨩, 빨리 문 열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오이카와로 인해 이와이즈미는 문고리를 돌려 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아니. 아무래도 오늘 발표 때문에 며칠 동안 계속 신경을 썼더니 탈이 난 것 같아."

 

속이 거북해져 배를 살살 문지르며 나오는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촉박해진 시간 때문에 오이카와는 꼭 병원에 가 보라는 말만 남긴 채 먼저 집을 나섰다.

 

홀로 남은 이와이즈미는 한입도 먹지 못한 토스트를 바라보다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속이 너무 거북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요 근래 프로젝트 진행과 더불어 중간 점검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터였다.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점검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고 괜히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

 

"하아.....시작도 하기 전에 상태가 이래서야."

 

출근하자마자 준비한 자료부터 챙기고 간단한 리허설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컨디션 난조가 생기자 더욱 긴장이 되었다. 분명 토스트를 만들 때만 해도 괜찮았었는데, 막상 먹으려고 하니 속에서 받아들이질 않았다.

 

"나도 얼른 가야겠다."

 

시간을 보니 그도 어서 준비를 하고 나가야 할 때였다. 미리 꺼내 놓은 슈트를 입고 어제 늦게까지 읽고 또 읽었던 서류까지 챙겨 이와이즈미도 출근을 서둘렀다. 현역 배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오이카와와 대기업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이와이즈미.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을 다니며 꾸준히 배구를 해왔다.

 

그리고 다시 졸업할 때가 되자 이와이즈미는 평범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기를 원했고, 오이카와는 끝까지 배구를 하길 원했다. 물론 이와이즈미와 함께 콤비 플레이를 유지하고 싶어 했지만 그의 뜻을 존중해 결국 오이카와 혼자서 배구 선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무척 아쉬워했지만 이와이즈미가 슬슬 자리를 잡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자 지금은 오이카와도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지하철에 올라 손목시계를 보니 다행히 시간은 넉넉히 도착할 것 같았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고른 이와이즈미는 이따가 발표해야 할 내용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았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내려야 할 역에 도달해 있었다.

 

정말로 단단히 탈이 난 것인지 뱃속이 영 불편했지만 이와이즈미는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사원증을 단 채 출근 도장을 찍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

 

 

 

말도 안 돼.

 

프로젝트 중간 점검 발표를 무사히 마치기는 했지만 이와이즈미의 컨디션은 계속해서 난조였다. 뭔가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먹으려 해도 냄새가 역하게 느껴져 헛구역질만 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자, 보다 못한 오이카와가 병원에 가라며 그를 재촉했다.

 

괜찮다는 말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오늘, 이와이즈미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 병원으로 향했다. 그저 신경성으로 인한 문제일 거라 여기며 별다른 걱정 없이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간호사의 호명에 진료실로 들어간 이와이즈미는, 그곳에서 예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니까 앞으로는 더 조심하시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세요."

 

뭐라고 하는 의사의 말이 이어졌지만 이와이즈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내가...내가 지금 무슨 상태라고? 하! 기가 막혀.

 

진료실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중에도 이와이즈미는 의사에게서 들은 말을 되새기듯 반복해서 생각했다. 이게 무슨....대체 무슨 일이야?!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다.

 

어쩐지....어쩐지 이상하다 했지.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빈자리에 앉아 그동안의 일을 되짚어 보자 그제야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는 중에 오이카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

[이와쨩!]

 

제대로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말허리를 자르며 오이카와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얘가 또 왜 이러나 싶어 이와이즈미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왜."

[진짜로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지? 아까부터 전화해도 안 받아서 회사로 했더니 오늘 일찍 퇴근했다고 하잖아. 지금 어디야? 응? 어디냐고!]

 

어지간히도 걱정을 했는지 오이카와의 목소리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을 하려다, 문득 핸드폰에 찍힌 날짜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어, 어라? 오늘.....오이카와 생일이잖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한동안 오이카와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더니 생일마저 잊고 말았다. 그런데도 오이카와는 오늘 아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일을 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나 속상함은 내비치지도 않은 채 그저 이와이즈미만 걱정했다.

 

'이와쨩, 오늘은 꼭 병원 가. 알았지?'

'계속 스트레스 받고, 일 때문에 신경 써서 위염이라도 생긴 거 아니야? 나 진짜 걱정돼서 죽겠단 말이야.'

 

오로지 자신만 걱정할 뿐, '생일'이나 '선물'과 같은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늘 가벼운 말투와 자신감 넘치는 행동들로 인해 이와이즈미에게 핀잔만 받는 오이카와지만, 결정적일 때는 언제나 이와이즈미 생각뿐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느껴져 새삼 고마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와쨩? 왜 대답이 없어. 어딘데? 내가 데리러 갈게.]

 

한창 시즌이라 연습과 시합으로 바쁠 텐데도 짬을 내 전화를 하고 상태를 신경 써 주는 오이카와의 배려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꽉 깨물고 애써 눈물을 참았다. 울면 안 돼. 지금 여기 지하철이라고.

 

"나 집에 가는 중이야. 다음 역에서 내릴 거야."

[어, 그래? 나 지금 역 앞인데. 여기서 기다릴게.]

"알았어."

[근데 병원에 가 봤어?]

"만나서 얘기할 테니까 일단 끊어."

[에? 이와쨩, 궁금하니까 먼저 말해....]

"나 내릴 거야. 앞에서 만나."

 

뚝.

 

무심하게 끊긴 했지만 오이카와라면 그가 나쁜 뜻으로 끊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만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 중간 점검 발표를 할 때보다 더 떨렸다.

 

두근두근.

 

심장이 요란하게 요동치는 사이, 어느새 출구를 빠져나와 저 앞에 서 있는 오이카와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 이와이즈미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휴대전화만 바라보던 그가 막 고개를 드는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이와쨩!"

 

소속된 팀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어깨에는 커다란 가방을 맨 채 자신을 향해 붕붕 손을 흔드는 모습이라니. 주변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오이카와다운 인사였다.

 

그런 오이카와의 모습이 싫지 않은지 이와이즈미가 옅은 미소를 띈 채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온 이와이즈미의 상태부터 체크한 오이카와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도 얼굴 안 좋네. 계속 아팠던 거야?"

 

여전히 조금은 창백해 보이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안 아팠어. 집으로 가자. 너한테 할 말 있으니까."

"할 말? 뭔데?"

"집에 가서 할 거야."

"뭔데 그래? 궁금하잖아. 나쁜 얘기는 아니지?"

 

심각한 이야기라도 나올까 싶어 오이카와는 시종일관 무슨 일이냐며 물었지만 꾹 다문 이와이즈미의 입술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열리지 않았다. 현관문이 열리고, 가방을 내려놓은 오이카와가 소파에 앉아 강아지처럼 이와이즈미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집에 왔으니까 빨리 말해 줘, 라는 얼굴로.

 

"우선.....미안하다."

 

진지한 얼굴로 사과하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왜, 왜 그래? 이와쨩.....오늘 병원에 갔었어?"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묻는 걸 보니 우습기도 하고, 또 귀엽기도 했다. 그래서 이와이즈미는 일부러 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 갔다 왔어."

 

쿵.

 

병원에 갔다 온 이와쨩이 무서운 얼굴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대체 뭐지? 무슨 큰 문제라도 있는 건가? 어디가 많이 아픈 거냐고....!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이카와의 오해는 깊어만 갔다.

 

"뭐라는데....의사가 많이 아프다고 했어?"

"음, 아니."

"그럼?"

 

일단 아픈 건 아니구나. 잠시 한시름 놓았지만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너무도 심각해 완전히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오이카와."

"응."

"너 오늘 생일인데, 내가 잊어버려서 미ㅇ......"

"그런 건 됐으니까, 이와쨩 상태가 어떤지나 말해줘. 빨리!"

 

오이카와에게는 이미 생일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당장 이와이즈미의 입에서 '의사가 아무렇지도 않다더라.'라는 말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니, 그래도 생일인데.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는데 어떻게 이번에만......."

"이와쨩, 나 화나려고 그래. 내 생일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말해 달라고."

 

분명 진지하고 축 가라앉은 분위기인데도, 이와이즈미는 어딘지 모르게 편안해 보였다. 마음이 놓여서 그런 것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오이카와의 눈에는 무언가 다 포기한 사람처럼 보여 덜컥 겁이 났다.

 

"의사가 뭐라고 했냐면....."

 

꿀꺽.

 

오이카와는 마른침을 삼키며 이와이즈미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그런데, 귓가에 스치는 이야기는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집에 가서 너한테 선물이나 주라더라."

".........?"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뭐라고 하는 거야?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앉아 있는 오이카와에게 쐐기를 박는 말이 들려왔다. 

 

"생일 축하한다. 그리고 동시에 아빠가 된 것도 축하한다."

"......어? 지금 이게 무슨....."

"알다시피 나 네 생일 까먹어서 선물 따로 준비 못 했어. 그냥 여기 있는 걸로 대신할게."

 

그러면서 이와이즈미는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오이카와의 동공이 점점 확장되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이와이즈미를 품에 안았다.

 

"이와쨩....이와쨩....이와쨩...."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이름만 반복해서 부르는 오이카와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몸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나타내는 증거였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더욱 세게 안으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이와쨩. 지금껏 받은 선물 중에 최고로 좋은 선물이야. 사랑해."

 

 

 

-

 

 

 

5년 후.

 

"엄마! 아빠가 나왔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이카와를 쏙 빼닮은 남자아이가 티브이 앞에서 방방 뛰며 연신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부름에 주방에서 나온 이와이즈미는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짓다 이내 조금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시, 티브이에 너무 바싹 다가가서 보면 안 된다고 했지."

"응. 알았어."

 

재빨리 떨어져 소파에 앉은 아이는 브라운관 속에서 맹활약하는 오이카와를 보며 펄쩍펄쩍 뛰었다.

 

"아빠! 아빠 잘한다!"

 

프로 선수로만 지내던 오이카와는 3년 전부터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활동 영역을 더 넓혔고, 경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소화하여 엄청난 팬을 확보하는 등 그야말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 그가, 5살짜리 아들이 있는 아빠라는 사실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지자 전국이 들썩이는 해프닝도 일어났었다. 그는 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굉장히 일찍 만났거든요. 놓치기 싫어서 얼른 제 사람으로 만들었죠(웃음). 가족이 생긴 덕분에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수로 생활하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을 주는 사람들이 바로 제 가족입니다.'

 

처음에는, 그가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닌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많은 팬들이 동요하며 놀랐지만 이 인터뷰 내용의 전문(全文)이 공개되면서 완전히 입장이 바뀌었다. 비록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자기 가정에 충실하고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그의 모습이 훈훈한 감동을 주어 전국민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더불어 젊은 아빠인 그를 응원하는 팬들까지 늘어났다.

 

"레이시, 또 앞으로 갔네. 얼른 뒤로 와."

 

소파에서 보던 아이는 어느새 티브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 있었고, 때마침 설거지를 마치고 나온 이와이즈미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제 아빠가 나오는 경기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생방송이 아닌데도 보고 또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도 나중에 아빠처럼 될 거야."

 

입이 트여 말을 잘하게 되면서부터는 늘 저 말뿐이었다.

 

"그래. 그러려면 열심히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해야 돼."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는 느긋하게 오이카와의 경기를 감상했다. 지금 경기는 생방송이었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토스를 올리는 그의 모습이 새삼 멋있게 보였다.

 

토오루, 알고 있어? 이 아이는 또 하나의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해. 그런 아이가 너를 동경하며 너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어. 기쁘지 않아?

 

브라운관 너머에 있는 오이카와를 향해 이와이즈미가 고요히 마음을 전했다. 화면에서는 오이카와의 기습적인 투어택으로 득점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오랜만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마치 두 사람이 가장 열정적으로 배구를 했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오이카와의 득점으로 흥분한 레이시가 '아빠 최고!'라며 이와이즈미의 무릎에서 탈출을 하려다 이내 멈칫하더니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어쩐 일로 이렇게 말을 잘 듣나 싶어, 이와이즈미가 슬쩍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레이시?"

 

그러자 레이시가 조금 수줍은 듯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아빠가 엄마 말 잘 들어야 한다고 그랬어."

 

고작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어른스럽게,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게 작은 어깨를 펴며 말하자 이와이즈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절로 행복하게 만드는 아이였다.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구나. 우리 레이시가 말을 잘 들어 줘서 고맙네."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방실방실 웃는다.

 

"응! 이제 레이시는 형아니까. 엄마랑 아빠 말 잘 들을 거야."

 

그 말에 이와이즈미는 불쑥 나온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둘째를 가져 힘들어하는 자신을 위해 큰아이를 붙잡고 다정하게 훈계했을 그를 생각하니 참 고마웠다.

 

다시 티브이로 시선을 돌렸을 때, 오이카와의 토스를 받아 강하게 스파이크를 한 레프트 덕분에 그의 팀이 승리를 거두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기뻐하며 박수를 치는 레이시를 내려놓자 곧장 티브이로 달려가 화면에 잡힌 오이카와에게 뽀뽀 서비스를 날린다.

 

이와이즈미는 아이를 말리지 않았다. 지금 순간 만큼은 마음껏 기뻐하게 두고 싶었다.

 

토오루, 생각해 보면 말이야.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잖아. 그런데도 나는 지금도 네 곁에 있어. 널 닮은 아이도 함께야. 왜 일 거라고 생각해? 역시, '사랑하니까.'라는 말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겠지?

 

경기를 마친 오이카와는 가벼운 마음으로 귀가했다.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연 회식 자리에서도 간신히 자리만 지키다 슬쩍 빠져나왔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이와이즈미와 레이시를 품에 안고 싶었다.

 

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레이시가 달려 나와 그에게 안겨 들었다. 아빠, 오늘도 멋졌어. 아빠가 제일 대단했어, 라는 폭풍 칭찬과 함께. 오이카와의 입술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와이즈미가 부엌에서 나오자 남은 한 팔로 그를 꼭 안았다. 두 사람을 품에 안자 비로소 만족감이 들었다. 

 

"수고했어."

 

짧은 한마디였지만 세상 그 누구의 말보다 더욱 오이카와에게 힘을 실어 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덧붙여진 또 한마디.

 

"생일 축하해, 토오루."

 

오늘은 오이카와 토오루의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