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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기다림

- 마츠카와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조각글 형식

- 의불 연성으로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음에 주의;;





매일 밤 10시. 정각을 알리는 시계의 분침에 맞춰 바(bar)의 문이 열린다. 언제나 같은 표정으로 같은 인사를 하는 이와이즈미는, 오늘도 같은 위스키를 주문한다. 그리고 자정이 되면 일어나 돌아선다.


- 그럼 내일 또.


그의 말대로 우리는 내일, 또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만날 것이다.



오이카와 토오루 x 이와이즈미 하지메


기다림


 Written by. Sanzo





1. 그러니까 오늘은 오지 말라니까. 오이카와가 자신을 챙기지 않는 나를 나무라기에 결국 나도 한마디 했다. 그러자 또 입술을 내밀며 투덜거린다. 그러게 누가 오랬냐? 일하는 바에 놀러 온다기에 손님이 많으니 다음에 오라고 했는데도 기어코 온 것도 자기면서, 괜히 내 원망을 한다.


- 손님 많아서 정신없다고 했잖아.

- 그래도 그렇지! 오이카와 씨 벌써 한참 전에 술 다 떨어졌다고. 맛층은 다른 사람 잔만 잘 채우지?


애처럼 굴기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지만 나는 오이카와의 잔을 가득 채워 주었다.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는다. 오이카와 토오루. 대학에서 만난 녀석인데, 설마 서른이 가까워지도록 연락하며 지내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진짜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꽤 괜찮은 녀석이더라. 그리고 아주 기묘하기도 하지.


매일은 아니지만, 때때로 내가 일하는 바에 와서 혼자 술을 마시곤 한다. 여기서 누굴 만나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 때 누군가 바에 들어왔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다. 시계는 정확히 밤 10시 정각이었고, 이 시간에 오는 손님은 늘 이와이즈미 하나뿐이니까.


- 늘 마시던 걸로.


피곤에 절은 얼굴로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다 주문한 술을 내어 주니 기계적으로 손을 뻗는다.


- 오늘도냐?

- 응.

- 그 여자 믿지 말라고 내가 말했잖아.

- 그랬지.


아무리 다그치고 화를 내도 이와이즈미는 처연하게 웃을 뿐이다. 어디서 꽃뱀 같은 여자를 만나 실컷 돈을 뜯긴데다 그걸로도 모자라 이젠 병원비까지 대주고 있다. 자길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쩐지 매몰차게 버리지 못하겠다고 하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오늘도 또 돈을 뜯겼겠지. 아프다고 병원에 입원한 주제에 무슨 돈을 달라는 건지!


- 누구야? 맛층 친구?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오이카와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묻는다. 그래, 고등학교 동창. 대답해 주니 흐응, 하는 콧소리를 내며 흥미로워한다. 그게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의 첫 만남이다.





2. 매일 밤 10시. 그 시간이 되면 이와이즈미가 온다는 것을 알고, 오이카와는 어느새 그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 친구 있어, 재수 없는 꽃뱀이지만. 기껏 말해 줬지만 알아, 괜찮아. 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래서는 말려도 소용이 없겠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어?


오이카와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았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놀라운 일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놀라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 이상으로 놀랄 일이 아니면 별로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잠시 후, 문이 열리자 오이카와의 표정이 확 바뀐다.


- 이와쨩!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호칭이 바뀌었다. 뭐, 오이카와는 워낙 친화력이 좋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 나를 딱 두 번째 봤을 때 ‘맛층’이라고 불렀으니까.


- 마시던 걸로 줘.


이와이즈미의 표정이 이전보다 밝아졌다. 이 녀석 역시 오이카와와의 만남을 기다렸던 거다. 둘이 만나면 거의 오이카와 혼자 떠들지만 이와이즈미가 그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 테니까. 오이카와가 시답잖은 우스갯소리를 하면 이와이즈미는 이따금씩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항상 우울한 얼굴이었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수개월이 지났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와이즈미를 기다렸고 나 역시 어느샌가 둘의 만남을 주도하고 있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이 만남을, 계속 지켜봐 왔다. 그리고 10시가 되자 이와이즈미가 나타났다. 이젠 이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장면이다.


- 이와쨩.


활짝 웃는 오이카와와는 달리, 이와이즈미는 빨갛게 충혈된 눈과 퉁퉁 부은 얼굴로 들어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나와 오이카와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아아, 오늘이구나. 곧 그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늘이었어.


- 이와쨩.

- 오이카와…….


말을 하려던 이와이즈미가 왈칵 눈물을 쏟아 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부드럽고 다정한 손길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분명 웃고는 있었지만 너무도 가슴이 무너질 것 같은 얼굴이다. 나는 결국 눈을 감았다.





3. 이와이즈미가 눈물을 그치자 오이카와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이렇게 물어볼 테지. 이와쨩, 무슨 일 있었어?


- 이와쨩, 무슨 일 있었어?


그녀가 죽었어. 대답을 들은 오이카와는 한층 부드럽게 이와이즈미의 등을 다독인다.


- 나를 힘들게 한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사랑했는데……. 오늘, 죽었어.


근데, 그거 알아? 이와이즈미? 오이카와도 너를 사랑해. 한 번도 너에게서 마음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도 항상 자기 마음은 너에게 주고 있다고. 응? 모르지?


- 그래, 많이 힘들겠다.


오이카와의 위로에 이와이즈미가 가늘게 흐느꼈다. 아니, 내가 울고 싶다. 답답한 너희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마음과는 관계없이 오이카와는 다시 물을 것이다.


- 이와쨩은, 여자 친구가 살아났으면 좋겠어? 살아나면, 또 이와쨩을 힘들게 할 텐데.

- 그래도……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어.


이번만은, 이번만은 다른 대답이 나오길 바랐는데. 너무 큰 기대였던 걸까?


- 알았어.


오이카와가 테이블 위에 손을 얹었다. 그게 무슨 일을 예고하는 것인지 알았기에 그러지 말라고, 이젠 그만하라고 눈으로 말렸다. 들을 리 없겠지만. 괜찮아, 맛층. 녀석이 해사하게 웃으며 두 번째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탁탁- 두드렸다.


- 이와쨩이 행복했던 순간으로 보내 줄게.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땐…… 나를 사랑해줘.


이와이즈미의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보낼 때마다 하는 말이다. 그리고 매번 만날 때마다 실망하지.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아니라 그 꽃뱀을 좋아하니까.





4. 보는 내가 다 죽을 것 같이 아프다.


- 이제 그만해. 이만하면 충분하잖아.


이와이즈미가 없는 바 안에는 나와 오이카와 둘만이 앉아 있다. 이걸로 대체 몇 번째인지.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만나 함께 보내는 시간은 고작해야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무르고, 다시 몇 달을 기다려야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만날 수 있다. 그 여자가 병들어야 하니까. 병들어 병원 침대에 누워 마지막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이 되어야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이 지긋지긋한 일을 벌써 열 번째 하고 있다.


- 아무리 반복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열 번이나 했으면 그만 포기해.

- 응. 포기는 안 할 건데, 이제 더는…… 못할지도 몰라.


여느 때의 오이카와와 다르다. 이와이즈미를 과거로 보내고 나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미소를 지으며 ‘꼭 다시 만날 거야.’라고 멍청한 소리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다르다.


- 맛층, 이와쨩이 오면 평소처럼 잘 대해줘. 힘들게 하는 여자 친구 얘기도 들어주고, 좋아하는 위스키도 여러 잔 주고. 아, 너무 많이는 주지 마.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웃고는 있는데, 대체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 너…… 꼭 다시는 못 만날 것처럼 말하네.


반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헛웃음이 났다. 설마, 진짜로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아니지? 그렇게 웃지만 말고 대답을 해! 아니라고 하란 말이다, 이 멍청한 자식아!


- 화내지 마, 맛층. 그냥…… 힘이 좀 빠진 것뿐이야. 무리를 하긴 했었나 봐.


그게 한심한 낯짝으로 헤실헤실 웃으면서 할 말이냐? 정말 어이가 없다. 언젠가는, 혹시라도 이런 날이 올까 싶어 몇 번이고 말렸었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특별한 능력. 오이카와에게만 부여된 신기한 능력이지만 나는 그것이 무적이라고 믿지 않았다. 어떤 일에든 대가는 따르는 법이니까.


- 그래서 진작에 그만두라고 했었잖아!


울컥 화가 치민다. 한껏 인상을 쓴 나와는 달리 오이카와는 내내 웃는 얼굴이다. 그게 어딘지 모르게 허탈해 보이기도 했다.


- 이와쨩이 오더라도 내 얘기는 하지 마. 어차피 기억도 못하겠지만, 괜히 혼란만 줄 뿐이니까. 모르는 게 나아. 부탁할게.


오이카와는 더 이상 이와이즈미를 기다리지 못한다. 그 기다림의 의지를 내게 주고 가버렸다.


- 고마워. 정말 고마웠어.

- 답지 않은 소리 하지 마.

- 큭큭. 맛층, 잘 있어.


그게, 내가 오이카와와 함께 한 마지막 날이었다.





5. 미안하다, 오이카와. 나는 너와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어. 네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다. 이대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사는 건 이와이즈미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

 

- 그게…… 무슨 말이야?

- 오이카와. 오이카와 토오루. 기억 안 나지? 그래도 들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반드시 그 녀석에 대해서 알아야 해.

 

잔인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너를 위해서 오이카와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시간을 돌려주었다고. 횟수를 거듭할수록 본인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커졌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 네가 오늘 이 시간에, 여기에 와서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은 그 여자가 죽었다는 거겠지. 꽃뱀 말이야.

 

이와이즈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열 번이나 반복하다 보면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된다. 내게 하려는 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다는 것도.

 

- 근데 유감이다. 나는 네 여자 친구가 죽은 게 슬프지 않아. 너에게 늘 고통만 주었으니까. 그리고 그 여자 때문에 오이카와가 시간을 돌려야 했으니까.

 

근본적으로 보자면 시간은, 이와이즈미를 위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 여자를 탓하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속에서 불이 날 것 같단 말이다.

 

- 그리고 더는, 과거로 돌아가 그녀를 만날 수 없겠지. 다시 만난다 해도 똑같이 너에게서 돈을 뜯어내고, 다른 남자와 놀아나고, 그러다 병들어 아플 때 찾아와 도와 달라고 애걸할 테니까. 너는, 그 여자를 끝까지 버리지 못할 거다. 그래서 남겨지는 건 언제나 오이카와였다고.

 

말해도 모르겠지. 오이카와 누군지 기억에 없을 테니까. 내가 아무리 화를 내며 열변을 토한다 한들 이와이즈미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날 미친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다행일까? 그래도 말이다, 꼭 말해야겠다. 오이카와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제와 알게 된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나는 그저 오이카와의 마음만이라도 전해 주고 싶었다.

 

-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땐…….

- ……!

 

어라, 그 얘긴 해준 적 없는데. 과거로 보낼 때마다 오이카와가 했던 말.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 그 땐, 날 사랑해줘. 그렇게 말했었지. 오이카와가.

- 너……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말도 안 돼. 이와이즈미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오이카와를 기억한 적이 없었다. 항상 처음 만난 사람으로 대했었는데, 어째서 이번에는 기억하는 거지?

 

- 나도 몰라. 그냥 갑자기 떠올랐어.

 

이와이즈미의 기억이 돌아온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오이카와가 완전히 사라져 그가 제어하고 있던 시간의 흐름이 풀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이와이즈미의 눈에서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연히 쳐다보고만 있자, 천천히 입을 열어 움직인다.

 

- 대체…… 대체 나는 무슨 짓을……. 바로 곁에서 그렇게나 표현해 줬는데, 끝내 알아채지 못한 상태로 보냈어. 그게, 그게 너무 가슴이 아파.

 

나도 그래. 어쩌면 좀 더 빨리 무언가 할 수 있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오이카와의 뜻을 존중한다는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 어쩌면 그게 문제였는지도 몰라.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그래서 이런 사태를 초래했는지도. 그래도 이 말은 꼭 전해야겠어.

 

- ‘꼭 다시 돌아올게.’ 이게 오이카와의 마지막 말이었어.

- ……그래.

-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어. 바로 다음 날 나타날지, 1년 후가 될지. 아니면 10년이 지나서일지도.

 

그래도 아마, 우리는 기다릴 것이다. 그가 다시 나타나 우리 앞에서 활짝 웃는 그 날까지.

 

오늘도 이와이즈미는 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늘 앉던 자리에 앉는다. 오이카와의 자리는 언제나 비워 둔 채다. 그리고 같은 표정으로 같은 인사를 건네고는 같은 위스키를 마신다. 오이카와가 언제 다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만약 오늘도 오지 않는다면…….

 

자정이 되자 의자를 밀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와이즈미가 또 같은 인사를 한다.

 

- 그럼 내일 또.

 

그래. 오늘도 오지 않는다면, 내일 또 기다리면 그만이다. 그가 올 때까지.

 

 

 

 

 

* 오늘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갑자기 필이 확 꽂혀서 가지고 다니는 다이어리 노트 부분에 미친듯이 적었던 내용입니다.

물론 더 다듬긴 했지만요^^;;;; 다이어리에 썼을 때 미처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퇴근해서, 썼던 부분까지는 배껴 쓰고 뒷부분 마무리는 나중에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무려 여섯 쪽이나 썼네요...(미친; 근무 안하고 소설만 써댔나;;;;)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