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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짝사랑 - 이와이즈미 하지메의 경우

나에게는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말을 꺼내 본 적은 없다.

어차피 이루질 수 없는 사랑이니까.

 

 

 

 

흔히들 운명의 상대의 이름이 몸에 나타나면 그것으로 자신의 짝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줄곧 기다렸다. 내 운명의 상대의 이름이 몸에 나타나기를. 반드시 그의 이름이 나타나기를. 그리고 나의 바람대로, 그의 이름이 나타났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얄궂은 운명인 것인지, 나의 상대에게는 내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 어째서지? 운명의 상대인 게 아닌가? 이럴 리가 없는데. 그에게도 반드시 내 이름이 나타나야 하는데. 왜 그에게는 내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이와이즈미?"

"어, 어?"

"뭐 하고 있어? 부활동 하러 안 가?"

"어, 가야지."

 

어느새 수업이 끝났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부활동을 해야 할 시간이다. 평소 같았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 갔을 텐데. 이제는 체육관에 가는 것이 꺼려진다. 내 운명의 상대가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기뻐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에게는 내 이름이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경기복 소매를 어깨 위로 걷은 적이 없다. 정확히는, 그의 이름이 내 몸에 나타난 이후로 그렇다. 아무리 더워도 소매를 걷어 어깨를 훤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이와쨩, 뭐해?"

 

그가 왔다. 내 운명이 상대.

 

"어디 아파?"

"아니."

"근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스파이크에 힘이 없어? 이와쨩답지 않네."

 

나다운 게 뭔데? 대체 네가 생각하는 나는........누구인 거야?

 

"날이 더워서 그런다. 잠깐만 쉬었다 할게."

 

아직 몇 개 치지도 않았는데 나는 연습에서 빠졌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가 내 곁을 맴돌 때마다 심장이 부서질 듯 아프다. 차라리 안 보고 살 수 있는 거라면 좋겠는데. 운명의 상대에게 외면 당하는 것은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야, 오이카와. 너 아직도 이름 안 나타났냐?"

 

마츠카와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뻔할 테지.

 

"응. 난 아무 것도 없어."

"이상하네. 보통은 성인이 되기 전에 다 나타난다던데. 넌 왜 고3인데도 없는 거야?"

"글쎄. 모르겠네."

"큭큭. 오이카와 완전 돌연변이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맛층!"

 

그래. 너에게는 왜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거야? 날 사랑하지 않아서?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서 그런 걸까? 하지만 내게는 너의 이름이 나타났다. 오이카와 토오루. 정확하게 내 몸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왜 너는...........

 

"이와이즈미, 너는 어때?"

 

마츠카와의 질문이 내게 날아왔다. 뭐라고 할까 잠시 망설이다 거짓말을 했다.

 

"나도 아직인데."

"에, 진짜? 너희들은 왜 이렇게 늦어? 난 진작에 하나마키 이름이 나타났는데."

 

그러면서 마츠카와가 하나마키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알고 있다. 마츠카와에게는 하나마키가, 그리고 하나마키에게는 마츠카와의 이름이 나타났다는 것을. 미쳐 버릴 듯......부럽다.

 

"이와쨩, 다 쉬었으면 빨리 합류해. 아니면 오늘은 아예 쉴래? 컨디션 안 좋아 보이는데."

 

녀석이 다가와 내 상태를 살핀다. 그냥 괜찮다고 하면 될 것을, 감정이 상한 나는 그만 녀석의 손을 쳐내고 말았다.

 

"만지지 마."

"어?"

 

당황한 것인지 오이카와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아, 아니....더워서."

 

대충 얼버무렸지만, 아마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오이카와는 그저 날 일으켜 세우기 위해 손을 뻗었을 뿐인데. 하필이면 그 손이 오른쪽 어깨를 향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예민하게 굴고 말았다.

 

잘 지켜야 한다. 내 몸에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된다. 이대로 밝혀지면 너무 초라하잖아? 혼자만의 짝사랑이라는 게 드러나는 거니까. 정작 오이카와의 몸에는 내 이름 따위 있지도 않은데.

 

가끔은 드물게, 운명의 상대라 여긴 이의 몸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타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이카와의 몸에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거잖아. 거의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라지만, 그렇지만.........완벽하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다. 만약 내 이름이 아니라 정말로 다른 사람 이름이 나타나면 어쩌지? 그리고 그의 몸에도 오이카와의 이름이 나타난다면? 그럴 수도 있는 걸까? 말도 안 돼. 그럼 나는.....?

 

초조함이 극에 달한 어느 날. 인터하이 예선전 연습이 한창인 체육관에서 나는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여름이 절정에 다다를 때라 그런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웠다. 그래서 잠시 방심했던 것 같다. 열심히 잘 지키고 조심했었는데. 단 한 순간에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부활동이 끝난 늦은 저녁.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해 남아서 좀 더 연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녁이 되었음에도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 더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경기복 소매를 걷어 어깨가 드러나도록 올렸다. 어차피 아무도 없고 나 혼자니까. 절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와쨩...."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오이카와가 체육관 문 옆에 서 있었다. 무엇에 그리도 놀란 것인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무섭도록 한 곳만 응시하더니 이내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야? 왜 이래?"

 

가까이 다가왔을 때야 비로소 알았다. 오이카와의 시선이 내 어깨에 향해 있음을. 좀 더 정확히는 오른쪽 어깨에. 이런 젠장! 급하게 소매를 내렸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이와쨩, 이름 나타난 거야? 그래?"

 

다행인지 불행인지, 녀석은 이름까지는 정확하게 보지 못한 것 같다. 그저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진 것만 아는 듯하다.

 

"이거 놔. 더우니까 달라 붙지 말고."

 

아무리 놓으라고 해도 오이카와는 붙잡은 내 팔을 놓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놓으라고 할수록 더욱 세게 잡는 걸 보면.

 

"야! 아프니까 놓으라고!"

"이와쨩, 누구 이름이야? 누구 이름이 나타난 거냐고. 어?"

 

오이카와는 무섭도록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대체 왜? 내게 누구 이름이 나타났든 너하고는 상관없잖아.

 

"아무 이름도 아니야. 그냥......."

"거짓말하지 마. 분명히 봤어. 이와쨩 오른쪽 어깨에 누군가의 이름이 있었다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 녀석이 손에 주었던 힘을 살짝 풀었다. 덕분에 나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양팔을 꽉 잡았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와쨩....."

"너 대체 왜 이래? 나한테 누구 이름이 나타났든 상관없잖아? 어차피 너는 아무 이름도 없다면서."

 

그게......짜증이 치밀 정도로 화가 난다. 어째서 너에게는 내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건데. 왜 너는.....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이와쨩, 시간 줄게. 누구 이름인지 당장 말해. 아니면 힘으로 확인할 거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왜......어, 야! 뭐하는 거야? 저리 가! 이거 놓으라고!"

 

말을 하지 않자 오이카와는 정말로 힘으로 확인하려는 듯 억지로 경기복 상의를 벗기려 했다. 어떻게든 버티려 했지만 흥분한데다 무슨 이유인지 화가 잔뜩 난 녀석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최대한 버티려 엉겨 붙어 있던 나는, 밀어붙이는 힘에 못 이겨 그만 뒤로 넘어졌다.

 

내 위로 올라탄 오이카와 녀석은 보기 좋게 경기복 상의를 벗겼다. 아, 이제 다 끝났다. 끝내 오이카와에게 들키는구나. 내 이름조차 나타나지 않은 이 남자에게 나는........내 모든 것을 들키고 말았다.

 

체념한 마음으로 가만히 있는데, 오이카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내 어깨만 응시했다. 무슨 말이든 할 줄 알았건만, 어째서인지 녀석은 고요하기만 했다. 그러더니 손으로 슥- 자기 이름을 문질렀다.

 

".....이와쨩...내 이름 언제 나타났어?"

 

젠장. 젠장.

 

"세 달 전에."

"근데 왜 말 안 했어. 내 이름이라고 왜......"

 

그걸 몰라서 묻냐?

 

"너한테 내 이름이 없으니까."

"어?"

"너한테는 내 이름이 없잖아. 젠장!"

 

이렇게 꼴사납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는데. 왜....눈물이 나는 거야? 정말 말도 안 되게 억울한 마음이 들어 감정이 복받쳤다. 나는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너는 아니잖아. 나 혼자만의 짝사랑......

 

"나도 있어."

 

잘못....들은 건가?

 

"나도 있어, 이와쨩. 그러니까 울지 마."

 

오이카와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한 말을 생각하느라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너 뭐라고....."

"나도 이와쨩 이름 있다고. 볼래?"

 

그러더니 녀석이 입고 있던 셔츠의 목 부분을 아래로 쭉 당겼다.

 

"............!!"

 

놀랍게도, 오이카와의 쇄골에.....내 이름이....'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너, 너.....너 언제....."

"난 한 달쯤 됐나? 이와쨩보다 늦게 나타났지."

"근데 왜....."

 

왜 말을 안 한 거야?

 

"이와쨩이 거짓말을 하니까."

"뭐?"

 

너무도 황당해 누은 채로 녀석을 올라다보자,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와쨩, 기억 안 나? 지난 번에 카라스노랑 연습 경기 했던 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물었었잖아. 이름 나타났냐고."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근데 그때도 이와쨩, 이름 없다고 했었어. 심지어 며칠 전에도 거짓말했지? 맛층이 물었을 때 없다고 했잖아."

"그건......."

"카라스노랑 경기했을 때면, 적어도 지난 세 달 안의 일이니까 이미 내 이름이 나타났을 때잖아. 안 그래?"

".........."

"이와쨩이 없다고 하니까, 나만 혼자 나타난 줄 알고 겁이 나서 말 못 했어."

 

그게 뭐야. 결국 우리 둘이 똑같았던 거잖아.

 

"역시 이와쨩 짝은 나였구나. 나 말고 다른 사람 이름이 나타난 줄 알고 놀랐어."

"그건 내가 할 소리다. 망할카와."

"에? 설마 나한테 다른 사람 이름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래, 그랬다.

 

"나한테는 네 이름이 있는데, 너는 없다고 하니까. 낮은 확률이지만 혹시나 다른 사람 이름이 나타난 건 아닌가 생각했다고."

"이와쨩 바보구나? 나한테는 이와쨩 말곤 아무도 없어. 이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 이름이 새겨질 수 있겠어?"

 

오이카와가 활짝 웃었다. 아아, 그래. 언제나 봤던 그 웃음이다.

 

이제 온전히 내 것이 된 건가?

 

"이와쨩, 우리 이제 운명의 상대인 거 맞지? 서로 이름이 나타났으니까."

"그래."

 

오이카와가 고개를 숙여 자기 이름이 새겨진 내 어깨에 입을 맞췄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사랑해, 이와쨩."

 

그토록 바라던 말이 잔잔히 흘러 들어온다.

 

"아....나도 그래."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지금 너무 행복한데, 그래서 웃고 있는데....어째서 눈물이 나는 거지? 감정이 벅차올라 주체할 수가 없다.

 

"울지 마, 이와쨩. 울지 마."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연신 내 눈물을 닦으며 울지 말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리고는 가볍게 입을 맞춘다.

 

"사랑해. 예전에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는 더 사랑할게."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함께 입술에 미소가 걸렸다. 행복이라는 게 이런 건가?

 

"나도...나도 사랑해. 오이카와."

 

그토록 듣고 싶었던 고백을 들었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고백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나 역시 앞으로 더 너를 사랑할게. 오이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