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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짝사랑 - 오이카와 토오루의 경우

나에게는 꼭 갖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다.

쉽게, 내 것이 되어 달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에게.....내 이름이 각인되지 않았으니까.

 

 

 

 

요즘들어 이와쨩이 날 피하는 기분이다. 게다가 카라스노와 연습 경기를 하고 돌아온 뒤부터는 좀처럼 접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애가 타고 답답하지만 이와쨩의 경우, 닦달하고 몰아붙일수록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스타일이라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와쨩, 내게서 너무 멀어지지 마. 참지 못하고 억지로 붙잡을지도 모르니까.

 

"야, 오이카와. 너 아직도냐?"

"뭐가?"

"이름 말이야. 너 진짜 이름 안 나타났어?"

 

반 녀석 중 하나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나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어째서 나만 이렇게 늦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애들은 거의 대부분 몸에 운명의 상대의 이름이 각인되었다. 그런데 나는 아주 깨끗했다. 이름은커녕 작은 점조차 없다.

 

"그래, 없어."

"신기하네. 뭐, 좀 늦는 경우겠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금방 관심이 식었다. 나도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저 조금 늦는 것.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이름에 솔직히 초조해서 죽을 지경이다. 저번에 이와쨩에게 물으니 이와쨩도 아직은 나타난 이름이 없다고 했다. 연습 경기 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일부러 물어봤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 겨우 용기를 내어 물은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와쨩 역시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되는 걸까? 그런데 대체 왜 날 피하는 거지? 뭔가....잘못한 게 있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이와쨩을 화나게 할 만한 무언가를 한 기억은 없다. 오히려 묻고 싶다. 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와쨩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내가 자기를 얼마나 세세하게 관찰하고 있는지. 교내에서도, 체육관에서도. 내 시선은 언제나 이와쨩을 향해 있다. 같은 반이 아닌 것이 너무 한스럽다. 쉬는 시간마다 우연을 가장해 지나가면서 복도 유리창을 통해 슬며시 봐야 하니까.

 

"이와이즈미, 너도 이름 안 나타났어?"

"응."
"오이카와도 그렇대. 너희 둘이 소꿉친구라더니 그런 것도 닮아가나 봐."

 

그러면서 여학생이 까르르 웃자 이와쨩은 조금 난처한 듯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기만 한다. 젠장! 왜 이와쨩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거야?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어째서 내 몸에 이와쨩 이름이 각인되지 않는 거냐고.

 

하지만 이와쨩의 이상 행동은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았다.

 

"이와쨩, 뭐해?"

 

사랑하는 이와쨩. 드디어 내게, 너의 이름이 나타났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린 이와이즈미 하지메의 이름이 내 몸에 나타났다고. 알고 있어? 이제 이와쨩 차례야. 그런데 이와쨩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은 거지?

 

"어디 아파?"

"아니."

"근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스파이크에 힘이 없어? 이와쨩답지 않네."

 

그러자 이와쨩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뭔가....말실수를 했나?

 

"날이 더워서 그런다. 잠깐만 쉬었다 할게."

 

그리고는 곧바로 코드에서 나가더니 벽에 기대어 앉았다. 드링크를 마시며 연신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이 못내 신경 쓰였지만 맛층이 말을 거는 바람에 다가갈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야, 오이카와. 너 아직도 이름 안 나타났냐?"

 

뭐라고 해야 하지. 나타났다고 해야 하는데. 이와쨩에게는 아직 내 이름이 없으니 좀 더 비밀로 해도 되겠지?

 

"응. 난 아무 것도 없어."

"이상하네. 보통은 성인이 되기 전에 다 나타난다던데. 넌 왜 고3인데도 없는 거야?"

"글쎄. 모르겠네."

"큭큭. 오이카와 완전 돌연변이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맛층!"

 

이와쨩, 알고 있어? 나한테는 네 이름이 있어. 이와쨩에게만 나타나면 돼. 오이카와 토오루란 이름이.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서로가 운명의 상대야. 절대 다른 사람 이름이 나타날 리 없어.

 

"이와이즈미, 너는 어때?

"나도 아직인데."

 

예상대로 이와쨩은 아직이구나. 하지만 괜찮아. 난 믿어. 반드시 내 이름이 나타날 거라는 걸.

 

하지만.......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해졌다. 이와쨩은 어느 순간부터 아주 작은 접촉조차 꺼려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처음엔 가벼운 스킨십 정도는 괜찮았었는데. 날이 갈수록 자기 몸에 손대는 것을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이건....뭔가 이상해.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이유는 하나인가? 이와쨩의 몸에 이름이 나타난 거야. 아주 희박한 확률이지만, 운명의 상대라 믿은 사람의 몸에 다른 이의 이름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어. 설마....아니지? 이와쨩, 나 말고 다른 놈 이름이 새겨진 거 아니지? 그렇지?

 

말할 수 없는 불쾌감과 지독한 질투에, 결국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그래, 아닐 거야. 이와쨩과 나는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니까.

 

한동안 연습에 집중을 하지 못한 탓인지 이와쨩은 스스로 남아서 연습하겠다고 홀로 체육관에 있었다. 가서 뭐라고 물어야 할까 고민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체육관 앞에 다다랐다. 늦은 저녁, 불이 환하게 켜진 체육관은 항상 드나들던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일단 문을 살짝만 열어 이와쨩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더워도 절대로 소매를 걷는 법이 없었던 이와쨩이 어깨가 훤히 드러나도록 소매를 단단히 걷어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깨에....희미하게 무엇인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거리가 멀어서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누군가의 이름이 확실하다.

 

이와쨩, 나한테 거짓말한 거였어? 이름이 나타났는데 줄곧 말 안 했던 거야? 그야 나도....말 안 했지만, 그건 이와쨩에게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기다린 거였어. 내가 물었었잖아. 이름 나타났냐고. 그런데 이와쨩은 없다고 했었지.

 

내 이름이 나타나지 않은 이와쨩에게 차마, 나만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 이와쨩은 내게 관심이 없는데 나만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서. 내 사랑이 이와쨩을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아서. 혹시나 나타나지 않은 이름 때문에 부담을 갖지는 않을까 너무 초조했어.

 

그런데 뭐야? 이름이 있어? 그것도 어깨에? 그동안 소매를 올리지 않았던 이유가, 그 이름 때문이었어? 들키지 않으려고?!

 

순간 정신이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이와쨩은 아무렇지도 않게 상의를 벗거나 소매를 걷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 여름에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이 더위가 시작된 게 벌써 몇 달 전이니.....그때 이미 나타났다는 거다, 누군가의 이름이.

 

그리고 이와쨩은 날 속였다. 카라스노와의 연습 경기 때에도 분명 그에게는 누군가의 이름이 있었던 거다.

 

말도 안 돼. 확인해야겠어!

 

"이와쨩...."

 

타올로 땀을 닦던 이와쨩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냐는 듯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너무하네, 이와쨩. 날 이렇게 상처 입혀도 되는 거야?

 

"뭐야? 왜 이래?"

"이와쨩, 이름 나타난 거야? 그래?"

 

내가 다가가자 이와쨩은 서둘러 소매를 내렸다. 하지만 늦었어! 난 이미 봤다고!

 

"이거 놔. 더우니까 달라 붙지 말고."

 

말 돌리지 마. 빨리 말해! 그거 누구 이름이야?

 

"야! 아프니까 놓으라고!"

"이와쨩, 누구 이름이야? 누구 이름이 나타난 거냐고. 어?"

 

내 이름이라고 말해. 나라고 말하란 말이야.

 

"아무 이름도 아니야. 그냥......."

"거짓말하지 마. 분명히 봤어. 이와쨩 오른쪽 어깨에 누군가의 이름이 있었다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무슨 상관이냐니....상관이 왜 없어, 이와쨩. 내가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내 눈엔 너밖에 보이질 않는데. 그렇게 아픈 말 하지 마.

 

"이와쨩....."

"너 대체 왜 이래? 나한테 누구 이름이 나타났든 상관없잖아? 어차피 너는 아무 이름도 없다면서."

 

아니야. 나한테 이와쨩이 있어. 그러니 이와쨩에게도 내가 있어야 해. 반드시.

 

"이와쨩, 시간 줄게. 누구 이름인지 당장 말해. 아니면 힘으로 확인할 거야."

 

이렇게 됐으니 무력으로라도 확인해야겠다. 누구의 이름인지. 만약 다른 사람의 이름이면 어쩌지? 제로에 가깝다는 그 거지 같은 확률이 나와 이와쨩 사이에 나타난 거면 어쩌냐고.

 

"내가 왜......어, 야! 뭐하는 거야? 저리 가! 이거 놓으라고!"

 

시간을 주겠다고 했지만, 지금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기에 머리보다 몸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힘으로 그를 눌러 바닥에 눕힌 뒤 억지로 상의를 밀어 올렸다. 그가 거칠게 저항했지만, 흥분과 분노에 휩싸인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힘을 줘 경기복 상의를 벗겨 냈다.

 

그리고......!!!

 

".....이와쨩...내 이름 언제 나타났어?"

 

이와쨩의 오른쪽 어깨에는 너무도 깨끗하고 선명하게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세 달 전에."

 

뭐라고?

 

"근데 왜 말 안 했어. 내 이름이라고 왜......"

 

왜 말을 안 했느냐고. 세 달 전이면 연습 경기를 하기 훨씬 전이잖아. 왜 여태 아무 말 안 했던 거야, 이와쨩.

 

"너한테 내 이름이 없으니까."

"어?"

"너한테는 내 이름이 없잖아. 젠장!"

 

그게 무슨.....이와쨩이야말로 내 이름이 없다고 했잖아. 그래서 나 혼자 짝사랑하는 건 줄 알았는데. 나만 혼자.....그게 아니었던 거야?

 

"나도 있어."

 

내게도 너의 이름이 있다고.

 

"나도 있어, 이와쨩. 그러니까 울지 마."

 

이와쨩이 울면 가슴이 아파. 손을 뻗어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걷어 냈다. 하지만 이와쨩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멍하게 있을 뿐이다.

 

"지금...너 뭐라고....."

"나도 이와쨩 이름 있다고. 볼래?"

 

내게도 한 달쯤 전에 나타난 이와쨩의 이름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본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놀랍게도 나의 쇄골에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이름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꿈인가 싶어 얼마나 여러 번 확인했는지 모른다. 손으로 문지르면 지워질까 싶어 몇 번이나 닦고 또 닦아 보았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의 이름은 완벽하게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았다.

 

셔츠의 목 부분을 내려 쇄골을 보여 주자 비로소 믿는 눈치다.

 

"너, 너.....너 언제....."

"난 한 달쯤 됐나? 이와쨩보다 늦게 나타났지."

"근데 왜....."

 

왜 말을 안 했냐고? 그건 이와쨩이 잘못했기 때문이야.

 

"이와쨩이 거짓말을 하니까."

"뭐?"

"카라스노랑 연습 경기하고 돌아오던 날도, 며칠 전에 맛층이 물었을 때도 거짓말했었지.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세 달 전이면 그땐 이미 나타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아니야?"

"........"

"이와쨩이 없다고 하니까, 나만 혼자 나타난 줄 알고 겁이 나서 말 못 했어."

 

정말 겁이 났다. 나에게만 너의 이름이 나타난 것일까 봐. 하지만 이제 됐어. 역시 우린 운명의 짝이었던 거야. 의심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전혀 없었던 거라고.

 

"나야말로....네가 없다고 해서 말 못 했던 거야."

 

이와쨩도 그랬구나. 나랑 똑같았어. 서로 겁이 나서 말 못했던 것뿐야. 하지만 이제 됐어. 이제는.....온전히 나의 이와쨩이야.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이름이 새겨진 그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 내 입술이 닿자 이와쨩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랑해, 이와쨩."

"아....나도 그래."

 

입술은 웃고 있지만 이와쨩은 눈을 가린 채 하염없이 울었다. 그래, 알아. 초조했지? 많이 무서웠지? 나도 그랬어, 이와쨩. 조금만 더 빨리 용기를 냈더라면 좋았을 텐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아프게 만들어서 미안해. 울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꺼냈다.

 

"사랑해. 예전에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는 더 사랑할게."

 

영원히, 변하지 않을 자신 있어. 이와쨩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나도...나도 사랑해. 오이카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달콤한 고백이 귓가를 간질인다. 응, 이와쨩. 고마워. 정말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