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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그놈과 나 - 中

희미하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너를, 잊어서 미안해.

 

                              - 이와이즈미 하지메

 

 

 

 

눈을 떴을 때, 이와이즈미에게 보이는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마치 정신병원에라도 와 있는 것처럼 단 하나의 얼룩도 없는 깨끗한 순백의 색이다. 이와이즈미는 상황을 판단하려 흐린 시야를 몇 번 감았다 떴다. 겨우 초점이 맞자 서둘러 좌우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 있는 풍경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손은 침대 헤드에 꽁꽁 묶여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윽…….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아직 머리에 남아 있는 약 기운 때문인지 살짝 어지러운 느낌마저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매우 널찍하고 탁 트인 오피스텔이었다. 집 안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집 주인의 성격 또한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혼자인 줄 알았던 공간에 타인의 목소리가 고요히 울려 퍼졌다.

 

“일어났어, 검사님?”

 

휙-

 

이와이즈미의 고개가 빠르게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문 앞에 웬 남자가 서 있었고, 그는 이와이즈미가 아는 얼굴이었다. 예쁘장하다는 말도, 잘생겼다는 말도 모두 다 어울릴 것 같은 남자.

 

“너 이 자식……!”

 

이를 갈며 노려보았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왜 그렇게 화를 내? 내가 검사님한테 뭘 잘못했는데?”

“몰라서 물어? 이 살인자 새끼야!”

 

거칠게 몰아붙이는 말에, 남자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지만 그것은 매우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는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흐응- 입이 거치네. 근데 말이야…….”

 

남자가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이와이즈미는 도망칠 수도 없는 한정된 공간에서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 혹시 맞게 되더라도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생각이었다.

 

“당신, 나에 대해서 알아?”

 

손이라도 한 대 올릴 줄 알았건만, 남자는 폭력은커녕 싱글싱글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침대 옆에 놓인 의자를 거꾸로 놓고 앉아, 의자 등받이에 팔을 올리고 턱까지 괸 채였다.

 

“뭐?”

“검사님은 나에 대해서 뭐 아느냐고. 나보고 살인자라며?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증거가 없잖아? 증인도 없고. 날 어떻게 잡을 건데? 아! 내가 지금 자백한 걸 근거로 할 생각인가?”

“…….”

“근데 이걸 어쩌나? 검사님은 녹음도 녹화도 못하는 처지인데. 그냥 듣기만 한 걸로는 증거 부족으로 풀려날 테고. 와, 방법이 없네? 그치?”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안타깝게도 남자가 하는 말 중에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손목이 아릴 정로도 꽉 조여진 밧줄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 네놈 말이 다 맞아. 어차피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간다 해도 널 잡을 구실은 없겠지. 그러니까 뭐 하나만 물어보자. 대체 왜 죽이는 거냐? 그것도 성범죄자들만 노리는 이유가 뭐야? 수법은 또 왜 그렇게 잔인한 거고.”

 

남자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이와이즈미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하나만 물어본다며. 질문이 세 개나 되네.”

“네가 대답하고 싶은 거 하나만 하면 되잖아.”

“아, 역시. 검사님이라 머리가 좋네? 하하하.”

 

남자의 웃는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다웠다. 그의 겉모습만 보면, 정말이지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범죄자들 중에 이런 얼굴 많잖아. 멀쩡한 놈들도 많고. 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 벌써 한 번 속아놓고 또 이러냐?

 

“하나만 대답해 줄게. 잔인하게 죽이는 이유, 알고 싶어?”

 

끄덕-

 

“죽어 마땅한 놈들인데, 너무 편하게 가게 해주면 안 되잖아. 최대한 고통스럽게, 그놈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사무친 원한을 깨달으라는 의미야.”

“아무리 그래도……. 너 살아 있을 때 손 자르고 그랬더라? 사이코냐?”

“아, 그거?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첫 번째로 죽인 놈이 엄청 저항을 하더라고. 묶어 놨는데도 덤벼들고 그래서 아예 그럴 생각을 못하게 만들려고 시작한 거야. 효과가 아주 좋아서 계속해서 사용하는 중이지.”

 

미친 새끼. 이와이즈미가 작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그의 말을 들은 듯했지만 거기에 대해 따지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웃기만 할 뿐.

 

“있잖아, 검사님. 내 화려한 전적에 대해서는 말 안해도 알 테니까. 그럼 무사히 나갈 수 없다는 것도 알겠네?”

 

움찔-

 

방금 전에는 남자를 향해 욕을 할 정도로 대담했었는데, 그의 눈빛을 보니 이와이즈미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떨었다.

 

“검사님은 범죄자도 아니고, 오히려 나쁜 놈들 잡는 일을 하니까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 내 목표물이 아니었는데. 우리 어제 마주쳤잖아. 알지?”

“…….”

“그냥 갔으면 좋았을 걸. 당신이 내 얼굴을 보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야.”

“뭐?”

“난 어제 그 남자를 죽일 계획이었고, 당신이 끼어들었다고 해서 그 계획을 미룰 생각이 전혀 없었어. 그래서 알다시피 깔끔하게 실행했지. 그런데 검사님이 내 얼굴을 봤으니 어떻게 해. 처리하는 수밖에 없잖아.”

“……!”

 

남자가 몸을 일으켜 침대로 바싹 다가갔다. 이와이즈미는 어떻게 해서든 손을 풀려 애를 썼지만 꽉 묶인 매듭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아, 그런다고 그거 안 풀리니까 애쓰지 마. 손목만 다 쓸릴 거야.”

“닥쳐. 네가 이런다고 다 덮어질 것 같아? 네놈 범죄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어. 설령 내가 죽더라도 내 동료들이 꼭…….”

“알았어, 알았어. 가만히 좀 있어 봐.”

 

이와이즈미가 뭐라고 하건 관심도 없다는 듯 남자는 그의 위에 올라탔다. 자세로 보아 목을 졸라 죽이거나 베개나 쿠션 따위로 눌러 질식사를 시킬 생각인 듯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이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물론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남자는 희대의 사이코패스였고, 자신은 움직임을 봉쇄당한 상태였다.

 

괜한 저항을 하면 산 채로 어디 한 곳이 잘릴 테니, 가만히 있는 게 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죽여라. 그리고 나를 마지막으로 반드시 네놈이 잡히길 바란다! 이와이즈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결국 범인 손에 죽는 건가? 누구 원망도 못하겠군. 내가 방심해서 잡힌 거니. 제기랄! 검사 체면이 말이 아니……!

 

톡- 톡-

 

금방 죽일 줄 알았건만, 귓가를 때리는 소리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슬며시 눈을 뜨자 남자는 이와이즈미의 위에 앉아 느긋하게 셔츠 단추를 풀고 있었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하나씩, 단추가 기능을 잃고 셔츠와 분리되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남자의 얼굴에는 예의 그 웃음 뿐이었다.

 

“검사님이랑 재밌는 거 하려는 건데. 꼭 죽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잖아. 검사님은 죄를 짓지 않았으니까 안 죽일 거야. 대신에 나랑 놀아 줘야 해.”

“웃기지 마. 당장 떨어져!”

 

이와이즈미는 드디어 격한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는 죽음의 공포가 눈을 가렸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단추만 푸르는 것을 보았을 뿐이지만 이와이즈미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싫어.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다는 거 알잖아, 검사님. 그럼 그냥 즐겨.”

“닥쳐, 이 개자식아!” 

 

어떻게든 남자에게 한 방 먹이려고 그나마 자유로운 두 발을 연신 버둥거리며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그런 몸짓조차 남자에게는 그저 유희에 불과할 뿐이었다.

 

“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피부가 좋네. 검사님, 애인 있어?”

“입 다물어라. 너는 내 손이 자유롭게 되면 그 즉시 죽일 거다. 연행이고 뭐고 없어. 그냥 죽일 거니까.”

“휘우- 무서워라.”

 

말과는 다르게 남자는 피식 웃으며 이와이즈미의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드러난 새하얀 몸은 남자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고, 남자는 그 자극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쪽. 쪽.

 

손가락으로는 유두를 만지며 이리저리 굴리면서 입술로는 너른 가슴 곳곳에 키스마크를 만들었다. 치욕적이고 수치스러운 기분에 이와이즈미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금방이라도 차고 넘칠 것 같은 눈물은 그의 눈꺼풀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이 개자식아,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 하지만 마지막엔 반드시 널 죽이고 말 거다.

 

“하지메.”

“……!”

 

남자는 이와이즈미의 목에 얼굴을 묻은 채 애처로운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줄곧 ‘검사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름을 부르다니.

 

“하지메…….”

 

또 다시 들리는 음성. 언젠가 들어본 듯 하면서도 낯선 느낌이었다. 대체 뭐지? 이 자식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할 거면 그냥 막 대하든지. 왜 이렇게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행동하는 거냐고.

 

이와이즈미를 만지는 손길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애틋했다. 마치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듯이.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이러한 느낌이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았다. 기억 저편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기억을 떠올린다 한들 자신이 모르는 남자에게 강간을 당할 위기에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 하지 마…….”

 

남자의 손이 바지 안으로 향하자 이와이즈미는 격렬하게 몸을 비틀었다.

 

“쉬이- 괜찮아.”

 

놀라울 정도로 남자는, 침착하고 또한 진지하게 이와이즈미를 달랬다. 싫다고 울며 몸을 트는 그를 붙잡아 몇 번이고 괜찮다는 말로 다독였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관계를 가졌다. 평범한 보통의 남자라면 관계 전까지의 행위는 할 수 있다지만, 이 남자는 달랐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생전 처음, 남자를 받아들였다. 아무리 뒤를 풀었어도 처음 하는 일에 대한 꺼림칙함과 불편함, 그리고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으윽. 그만…… 제발 그만해.”

 

벌써 몇 번째 하는 것인지 모를 만큼, 이와이즈미와 남자는 여러 번 몸을 섞었다. 처음 할 때만 해도 절망과 좌절, 그리고 뼈아픈 수치심에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던 이와이즈미는, 관계를 거듭할수록 점점 달라지는 기분에 스스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저 아프기만 해야 하는데, 그저 불쾌하기만 해야 하는데. 어째서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인지.

 

“하지메. 하지메……!”

 

남자는 애가 탈 정도로 이와이즈미를 불렀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그가 자신을 부를 때마다 무엇인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지금 당하는 사람은 나인데, 어째서 이 자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

 

드디어 그만둘 셈인지, 남자가 이와이즈미의 몸에서 자신의 것을 뺐다. 이 남자와 이 공간에서 얼마나 같이 있었던 것인지, 대체 몇 번이나 관계를 한 것인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남자는 조용히 샤워실로 들어가더니 이내 따뜻하게 적신 타월을 가지고 와 정성스럽게 이와이즈미의 몸을 닦았다. 깨끗하게 닦은 몸 위로 창을 뚫고 들어온 달빛이 내려앉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자가 새 옷을 입고 침대 옆에 앉아 물끄러미 이와이즈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몰라.”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들려왔다. 단박에 거절당한 말이었지만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밀어 올리며 웃기만 했다. 그러다 다시 물었다.

 

“나는 너를 알아. 이와이즈미 하지메.”

“그렇겠지. 내가 네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니까.”

“아니.”

 

잠시 말을 멈추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새하얀 천장을 응시한 채 이어서 말했다.

 

“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뭐? 무슨 소리야, 그게.”

 

이와이즈미가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어서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당신을 풀어 줄게, 검사님.”

“…….”

“하지만 말했다시피, 여기서 살아 나간다 해도 당신은 날 잡을 구실이 없어. 그러니까 숙제를 하나 내줄게.”

 

드디어, 남자의 시선이 이와이즈미에게로 향했다.

 

“일주일. 딱 일주일의 시간을 줄 거야. 그 안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내야 해. 이름은 물론이고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 와.”

“알아 오면?”

“만약 제대로 알아 온다면, 내가 알아서 당신 손에 잡힐게.”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당신이 나에 대해 조사하는 일주일의 시간 동안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

 

이와이즈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잡혀 온 순간 백퍼센트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령 죽지 않더라도 어디 하나는 잘못된 채로 나가게 될 줄 알았는데. 남자는 순순히 놓아주겠단다. 물론 강간은 했지만.

 

“좋아. 알아내겠어, 반드시.”

 

굳은 결의를 보이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남자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정말로 그를 묶고 있던 끈을 풀어 주었다. 거기에다 그가 입고 갈 새 옷까지 준비해 주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내 은신처는 여기 말고도 아주 많으니까. 만약 이곳으로 검찰들을 데리고 쳐들어온다 해도 날 잡을 수는 없을 거야. 그리고 우리의 약속이 깨지는 순간, 나는 다시 살인을 시작할 거니까.”

“알아. 나도 약속은 지킨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네가 날 살려서 보내주었으니 나도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겠어.”

 

역시, 하지메. 남자는 이와이즈미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이제 그만 가. 당신이 사라져서 검찰청이 난리가 났겠어.”

“그렇겠지.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고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러자 남자가 키득키득 웃었다.

 

“하하하. 검사가 살인자의 편의를 봐주다니. 당신은 정말…….”

 

뒤에 무슨 말을 덧붙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남자의 입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뒷내용이 궁금한 듯 잠시 기다리던 이와이즈미는, 그가 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곤 묻지 않은 채 새 옷을 걸쳤다.

 

“아까도 말했지만, 네놈은 반드시 내가 잡는다. 하지만 약속대로 막무가내 수사는 하지 않겠어. 네가 누구인지 알아내서 꼭 자수하게 만들겠다.”

 

그리고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이와이즈미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하지만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다. 저 살인자 새끼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과거 언젠가는 만났던 적이 있는 놈이라는 거다. 최소한 안면은 있다는 건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상대방은 나를 아는데, 나는 모르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닌 듯 이와이즈미가 거칠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창가에 서서 멀어지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완전히 잊었구나, 나라는 사람을.”

 

씁쓸한 미소가 입술에 걸렸을 때, 다시 한 번 혼잣말을 했다.

 

“나를 기억해 내줘, 하지메.”

 

기억하는 자와 기억하지 못하는 자의 싸움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