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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그놈과 나 - 후일담

이와이즈미는 무시한 표정으로 사건 보고서를 읽어 내렸다. 유혈이 낭자하는 현장 사진과 잔인한 수법이 그대로 그러난 증거품 사진 등 멀쩡한 정신으로 보기 어려운 보고서를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범하게 훑고 있었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후배 검사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와이즈미 선배님 진짜 대단하시다. 역시 베테랑은 달라.”

 

그러자 옆에 있는 다른 후배 검사가 모르는 소리 말라며 나무랐다.

 

“선배님이 괜히 베테랑이 되신 줄 아냐? 3년 전 있었던 그 희대의 사이코패스 사건 알지? 성범죄자만 노린 끔찍한 살인 사건 말이야.”

“알지. 그거 모르는 사람 없을 걸?”

“그 사건 담당자가 선배님이셨어. 그때 볼 거 안 볼 거 다 보신 거지. 그 사이코패스 사건이 훨씬 더 잔인했거든.”

“그랬어? 하긴, 어마어마하긴 했었지.”

“마지막에 그 자식 검거하느라 고생하신 것도 선배님이시잖아. 그런 사건 하나만 맡고 나면 누구라도 베테랑이 될 거다.”

 

어렴풋이 들리는 후배들의 목소리에도 이와이즈미는 아랑곳없이 보고서의 마지막 장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범인의 윤곽은 대충 잡혔지만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실마리가 될 만한 단서도 부족해, 마지막 남은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조금도 조급해하거나 초조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물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때를 노리는 듯했다. 그가 보고서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자, 주변에 있던 후배 검사 둘이 쪼르르 다가왔다. 그들은 아까 하던 수다를 쏙 감춘 채 마른 입술을 축이며 이와이즈미의 말을 기다렸다.

 

“다들 오늘부터 이 범행 현장 근처의 클럽 앞에서 잠복해.”

 

뜬금없는 지시에 후배들이 눈만 굴리자 답답하다는 듯한 이와이즈미의 질책이 이어졌다.

 

“너희가 보고서 작성해 놓고 이렇게 모르고 있으면 어떡하냐? 잘 봐, 가장 마지막 피해자가 아직 살아 있다고. 범행에 실패했으니 반드시 다시 죽이러 올 거야. 이 자식은 아주 집요한 놈이니까.”

 

네. 그, 그건 그렇죠. 후배 하나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러자 이래도 모르겠냐는 듯 설명이 덧붙어졌다.

 

“그럼 이 여자가 목숨 부지하려고 가만히 있을 여자냐? 안타깝게도 그게 아니라는 거지. 몇 번을 주의를 줘도 저 놀고 싶은 대로 다니는 여자라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따라 붙어야 한다고. 그리고 짜증나게도, 이 여자 놀이터가 동네 클럽이고.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어? 그 앞에서 잠복을 해야겠어? 안 해야겠어?”

 

빈틈없는 설명에 두 후배는 동시에 대답했다.

 

“해야 합니다!”

 

명령을 받은 후배들이 사라지자 이와이즈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낡은 쪽지를 꺼냈다. 조심해서 보관한다고 했는데도 3년이나 지나자 종이 끝이 조금씩 해지기 시작했다. 오이카와가 남긴 마지막 말이자 그의 유품이었다. 생각할수록 후회스러운 일이라면, 간직하고 지닐 그의 물건 하나 챙기지 못한 일이다.

 

“뭐라도 좀 챙겼어야 했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하나도 못 건졌다. 이거 말고는.”

 

오이카와의 필체가 담긴 쪽지를 만지작거리며 오늘도 이와이즈미는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는 중이다. 잊고 싶지도, 잊을 수도 없는 사람을 가슴에 품고서.


후배들에게 잠복을 맡긴 것이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이와이즈미가 잠복에 합류했다. 후배들과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차를 세워두고 클럽 입구를 주시했다. 그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원래부터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았기에 무시했지만 두 번, 세 번 걸려 오니 계속 무시할 수만은 없어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맑고 깨끗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와이즈미 검사님 핸드폰 맞나요?

“네, 제가 이와이즈미입니다.”

- 아, 드디어 받으셨네요. 바쁘신 중에 전화 드린 게 아닌지…….

“아, 아닙니다.”


차마, 일부러 받지 않았다는 말은 할 수 없어 대충 둘러댔다.


-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저 오이카와 토오루의 누나예요.

“아, 기억합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3년 전, 오이카와의 누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동생의 사건을 담당했다는 검사를 만나고 싶다며 검찰청을 찾은 적이 있었다. 거기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이와이즈미가 검사인 줄 몰랐던 그녀는 매우 놀랐고, 일부러 오이카와의 묘를 찾아 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 사건 경위와 오이카와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잠깐 언급한 뒤(물론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체포 과정에서 격렬한 저항을 하다 죽은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와이즈미는 그녀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주었다.


자주 올 수 없는 그녀를 대신해 자신이 오이카와의 묘를 살피겠다고 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그는, 친하지는 않았지만 알고보니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라는 말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 때 교환한 연락처로 종종 소식을 주고 받았는데, 지금 걸려온 번호는 이와이즈미가 아는 번호가 아니었다.


“번호를 바꾸셨습니까?”

- 네. 이사를 했거든요. 그래서 바뀐 번호도 알려드려야 할 것 같고, 그리고 뭘 좀 발견해서요.

“발견이라니, 뭐를…….”

- 제가 챙겨온 토오루의 짐 중에 편지랑 선물 상자가 있는데, 아무래도 주인에게 꼭 줘야 할 것 같아요. 이대로 두기엔 너무 아깝고, 이렇게라도 토오루의 마음을 전해 주고 싶은 제 욕심이랄까요?


대체 뭘까. 이와이즈미는 숨죽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 급하게 챙겨서 오느라 일일이 살펴보질 못하는 바람에 얼마 전에 이사하다가 발견했지 뭐예요? 그 짝사랑 하던 아이에게 주려던 것 같은데, 편지랑 선물이 담긴 상자가 있어요.

“……!”

- 이름이 쓰여 있지는 않지만, 분명 그 애에게 주려던 게 맞는 것 같아요. 편지 내용이 그래요.

“그렇, 습니까.”


이와이즈미는 먹먹해지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 바쁘실 텐데 이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검사님께서 그 애 좀 찾아 주셨으면 해요. 다행히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셨다니까 토오루랑 같은 반이었던 애들에게 물어보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제가, 꼭 찾아서 전해 주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다짐하듯 말하는 이와이즈미의 말투에 그녀는 무척 기뻐했다.


- 정말 감사드려요. 잘 포장해서 검사님 앞으로 보내드릴게요. 꼭 좀 부탁드려요.

“네.”


전화를 끊고 난 뒤에도 이와이즈미는 쉽게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애를 써야 했다. 의자 헤드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가린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작은 흐느낌이 차 안을 채웠다. 아마도 오이카와의 누나는, 짐을 챙겨 가긴 했지만 당장에 다 펼쳐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몇 가지만 열어 보고 다시 묻어 두었겠지. 볼수록 오이카와가 생각나고 그리웠을 테니까.


그리고 이사를 하게 되자 그제야 그녀도 하나씩 꺼내 볼 용기가 난 걸지도 모른다. 늦게나마 발견한 편지와 선물을, 동생이 사랑하고 사랑한 상대에게 꼭 전하고 싶었겠지. 그리고 그게 자신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오이카와의 누나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충격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지만, 선물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미국에서 오는 것이라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그녀가 신경을 써서 보낸 덕분인지 물건이 상당히 빨리 도착했다. 퇴근하자마자 택배 상자를 들고 거실에 앉은 이와이즈미는 쉽게 박스 개봉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는 대체 또 무엇을 준비했던 것일까. 나를 얼마나 더 놀라게 만들 작정인지.


조심스럽게 칼로 테이핑이 된 부분을 긋고 날개를 펼치듯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꽤 고급진 보석 케이스와 곱게 접혀 봉투에 담긴 편지가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편지를 먼저 들었다. 이전에 오이카와가 남긴 쪽지를 펼칠 때처럼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편지지를 꺼냈다. 쪽지 이후에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오이카와의 정갈한 글씨체가 눈에 확 들어왔다. 편지의 말머리는 누구에게, 가 아닌 그냥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나는 며칠 뒤에 너를 만나러 갈 생각이야. 그래서 이 선물과 편지를 준비했어.]


누구를 만나러 가려는 것인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결심한 일이야. 그러니 부디 마지막까지 내 얘기를 들어줘. 나는 이미 너에게 두 번이나 차였지만 그래도 너를 향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어. 참고 또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가려고 해.]


여기서 이와이즈미는 확실히 깨달았다. 편지의 주인이 자신임을. 그는 고등학교 때 오이카와를 두 번이나 찬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생일에 다시 한 번 용기를 낼 거야. 우리가 벌써 스물다섯 살이라는 게 좀 불안해. 너에게 다른 연인이 생겼을까 봐 걱정이야. 하지만 이번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갈 생각이니까.]


스물다섯이라. 이와이즈미는 까마득히 먼 옛날, 스물다섯이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특정한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편지에서 조금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분명 마지막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할 것처럼 써놓고는, 갑자기 단락이 바뀌면서 내용도 바뀌었다.


[미안해. 나는 하마터면 네 행복을 깰 뻔했어. 또 한 번 너를 불편하게 만들 뻔했어. 그러기 전에 깨달아서 정말 다행이야.]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를 말에 이와이즈미는 얼른 다음 문장을 읽었다.


[너는 아주 평범한 사람인데, 그런 너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려 하다니.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미안해. 그런데…… 그래도 많이 사랑해.]


이해하기 힘든 반전에 이와이즈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종이에 얼굴을 파묻을 기세로 바싹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용이 달라지는 부분에서 볼펜 굵기나 글씨체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렇다는 것은, 편지를 쓰다가 중간에 잠시 멈춘 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이어서 썼다는 얘기였다.


분명 시작할 때만 해도 곧 고백할 기세였는데. 게다가 생일 날 고백하겠다며 편지와 선물까지 준비했던 그가, 어째서 달라진 것일까. 그때부터 이와이즈미는 머릿속이 기억력을 총동원해 스물다섯 살 때의 생일 무렵을 떠올려 보았다. 사법고시 준비와 엄청난 양의 공부로 잔뜩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생각났고, 생일이 가까워지자 미리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친구들이 하나둘 있었고, 그 무렵 갓 대학에 입학한 사촌 여동생이 사정 상 잠시 그의 집에 머물며 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사귀거나 했던 게 없었는데……. 점점 이마가 구겨지는 그 때, 번뜩 떠오른 한 가지. 사촌 여동생이 집에 머물렀던 것이었다. 막 새내기가 된 동생은 한창 자신을 꾸미는 것에 빠져 있었고, 하필이면 이와이즈미가 졸업한 대학에 입학한 탓에 가끔 그녀와 캠퍼스에서 마주쳤었다. 당시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그에게 밥을 사달라, 어디를 같이 가달라 여러 가지 요구를 하는 동생을 챙기느라 꽤 정신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의 생일이 되기 이틀 전, 어디서 마신 건지 잔뜩 술에 취한 사촌 동생을 엎고 집으로 향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친구 전화를 받고, 하던 공부를 잠시 접은 채 학교 근처의 술집으로 갔었던 것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오빠아~ 진짜 나 데리러 왔네에? 으응?’

‘좀 조용히 해라. 동네 창피해서 죽겠으니까.’

‘아이, 오빠도 차암. 술 마시면 취할 수도 있지 뭐어~ 안 그래?’

‘시끄러워. 너 한 번만 더 이렇게 술 마시면 다시는 안 데리러 간다.’


대략 이런 대화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이카와가 이 장면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은 오해로 인해 고백하기를 접고 완전히 돌아서서 각자의 삶을 산 것일지도.


[실은 말이야, 나 이 선물하면서 꼭 사귀자고 말하고 싶었어. 하지만 네가 그대로도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어.]


이런 바보 멍청이 같은 놈. 말이라도 좀 하지!


[직접 전하지는 못해도, 여기에다가라도 내 마음 좀 적을게. 그래도 되지?]


직접 말하라고…….


[사랑해. 사랑해.]


제발, 네 목소리로 직접 말해줘.


편지는 거기서 끝이었다. 이와이즈미는 편지를 내려놓고 작은 보석 상자를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망할, 오이카와.”


크기는 작지만, 반짝이는 보석은 분명 다이아몬드였다. 누군가의 손길을 탄 적이 없는 듯 여전히 눈부신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 반지가 이와이즈미와 만났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빼 자신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넣어 보았다. 놀랍게도 사이즈는 딱 맞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이와이즈미는 반지를 낀 손을 꽉 쥔 채 소리 없이 흐느꼈다. 가슴으로 삼키는 비명과도 같은 오열과 비처럼 흐르는 눈물이 그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만약, 우리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더라면…… 오해도 없고, 외면도 없었더라면 지금쯤 네 손가락에도 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을까? 같은 모양의 반지를 보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을까?


나는 너를 너무 일찍 보냈나 보다. 그것도 아주 멀리. 하지만 이건 내가 달게 받아야 할 벌이겠지. 너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죄, 너를 잃은 뒤에야 내 마음을 제대로 깨달은 죄. 오이카와, 보고 있어? 이 반지 내 손에 들어왔어. 네가 직접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 손에 있어. 내 손가락에서 예쁘게 반짝이고 있다.




-




수사하고 있던 사건의 용의자를 발견했다. 오늘에야말로 반드시 체포하겠다는 마음으로 이와이즈미는 직접 현장에 잠입했다. 유력한 용의자가 숨어 있다는 건물로 들어간 그는, 귀에 꽂은 리시버를 통해 동료들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아직까지는 수상한 움직임이 없지만 워낙 날쌘 놈이니 어디로 튈지 몰라. 다들 정신 바싹 차려.”


이와이즈미의 지시에 따라 작전은 원활히 진행되었고, 그는 건물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일반 회사 건물이라 자꾸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게 더 눈에 띄는 상황이다 보니 이와이즈미는 되도록 평범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일반 사람들 속에 숨어 눈속임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있을 만한 곳은 다 가 봤는데, 왜 없는 거야? 설마 벌써 밖으로 나간 건가?


리시버로 밖에 있는 동료들에게 동태를 물어봤지만 수상한 낌새는 없다고 전해 왔다. 그런데 그 때, 리시버를 통해 다른 동료로부터 급한 메시지가 왔다.


- 선배님! 이 자식, 이거 지하 주차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에서 감시를 하던 동료가 도망치듯 나오는 사람을 발견했고, 서둘러 시동을 걸려는 행동이 수상해 현장을 덮치는 중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쪽으로 갈게.”


비상 계단을 통해 가려던 이와이즈미는, 마침 건물 출입구 근처까지 나온 터라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보다 아예 밖으로 나가 주차장 출구에서 기다리는 게 더 빠르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두꺼운 유리로 된 회전문 안으로 막 진입했을 때였다.


‘하지메.’


어디선가 환청처럼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이카와?”


나가려던 이와이즈미가 놀란 얼굴로 로비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끼이이익- 콰광쾅쾅-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도로로 시선을 향하자 그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트럭이 회사 건물 앞을 덮쳤고, 그 여파로 근처에 주차되어 있던 차 다섯 대가 완전히 파손되었다. 다행히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트럭 운전사도 기적적으로 경상만 입은 채 이와이즈미 팀의 검사들 손에 붙잡혔다.


목표로 했던 용의자를 잡았고, 그가 바로 범인인 것까지 밝혀내 사건을 마무리지었지만 이와이즈미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한 사고인 줄 알았던 트럭 운전사의 일이 사실은 계획적인 범죄였다는 것이다. 운전사와 사건의 범인은 한패였고, 집요할 정도로 사건을 파고들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이와이즈미를 없애기 위해 범인이 짠 함정이었다. 


처음부터 지하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범인은, 만약 자신을 찾지 못한다면 이와이즈미가 무조건 밖으로 나갈 것이라 판단했고 그 때를 맞춰 한패인 트럭 기사에게 사고인 척 위장해 이와이즈미를 죽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수사망을 좁혀 오는 이와이즈미와 그의 동료들 때문에 결국 혼자서라도 도망치려 하다 덜미를 잡혔는데, 하필이면 그 때 이와이즈미가 밖으로 나가려 했던 것이었다.


분명, 오이카와의 목소리였어.


'하지메.'


선명하게 들렸던 오이카와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이와이즈미는 지체 없이 건물 밖으로 나갔을 것이고, 트럭에 치여 죽었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와이즈미는 그것이 오이카와의 목소리라고 확신했다.


그는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네가 날 구해 준 거 맞지? 내가 죽을까 봐, 아직은 널 만나러 갈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살려 준 거지?


“오이카와…….”


이와이즈미가 무너지듯 책상에 엎드렸다. 그의 눈에 맑은 이슬이 맺혔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엎드린 이와이즈미를 보며 더러는 사건을 해결한 뒤에 몰려오는 피로 때문이라 말했고, 또 더러는 자칫 잘못했으면 사고를 당할 뻔한 충격 때문에 놀라서 저러는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와이즈미가 엎드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손을 포개어 반지를 낀 손가락을 꼭 감싼 뒤 그 위에 얼굴을 묻은 채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곁에 없는 시간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오이카와의 마음이 느껴져, 이곳이 일하는 직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이카와. 오이카와. 항상 네가 보고 싶지만 오늘따라 더 보고 싶다.


그 뒤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후배들은 언젠가부터 이와이즈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와이즈미 선배님 애인이라도 생기신 걸까? 우리 팀 여자들 많이 울겠네.”

“우리 팀만 울겠냐? 모든 팀이 다 울겠지.”

“근데, 저거 꽤 한참 전부터 끼고 다니시지 않았어? 내가 알기론 몇 달 된 것 같은데.”

“그랬나? 난 최근에 본 것 같아.”

“에이, 아니야. 좀 됐어.”

 

자기들끼리 모여 이와이즈미의 반지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그들 중 하나가 몸을 낮추며 동시에 목소리까지 낮춘 채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들은 얘기로는 애인이 준 게 맞기는 한데, 그 애인이 죽었다더라.”

“엑? 진짜?”

“어. 죽었는데도 못 잊어서 안 빼시는 거래.”

“야, 근데 선배님 반지 끼고 다니신지 그렇게 오래 안 된 것 같은데. 애인이 언제부터 있었대? 그리고 뭐 그렇게 빨리 죽었대?”

“내가 아냐? 나도 들은 얘기라니까.”

“그럼 뭐 확실한 것도 아니네.”


그러면서도 남의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그들은 도대체 반지의 정체가 무엇이며, 누가 준 것인지에 대해 한참을 더 토론했다.


“애인이야 오래 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르지. 반지는 늦게 나눠 가졌을 수도 있고.”

“그것도 일리가 있네.”

“아무튼 네 번째 손가락에 끼신 거 보니까 중요한 반지긴 한가 보다.”

“그런 것 같지?”

“그나저나 그 반지 준 사람이 진짜로 죽었으면 어떡하냐. 선배님 너무 안쓰럽잖아.”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만들 하자.”


결국 한 사람이 나서서 마무리를 지은 뒤에야 이야기는 끝이 났다. 자신에 대해 모두가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와이즈미는 꿋꿋하게 반지를 끼고 다녔다.


오이카와, 이 반지는 네가 날 지켜 주는 부적과도 같아. 그리고 여전히 날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오이카와, 이 반지를 통해 내 온기가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어.


많이, 보고 싶다. 오이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