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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오이이와] 그놈과 나 - 下

이와이즈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사라진 몇 시간 동안 검찰청 동료들로부터 많은 연락이 와 있었고, 그는 일일이 답변하며 아무 일도 없었음을 밝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니 묻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샤워 부스에 들어가 씻기를 장장 30분. 아무리 씻고 또 씻어도 그 남자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와이즈미는 신경질적으로 샤워 타월을 바닥에 던졌다.

 

“제길!”

 

목과 가슴에는 키스 마크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심지어 허벅지 안쪽에까지 있었다.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야 사라지기 때문에 피부가 벗겨져라 문질러 봤자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빠르게 인식했다. 그래,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조금만 지나면 이딴 것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다.

 

애써 마음을 먹고 겨우 샤워를 마쳤다. 커다란 타월을 허리에 걸치고 나온 그는, 수건으로 가볍게 머리를 털며 거울 앞에 섰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키스 마크로 인해 다시 한 번 마음이 술렁였지만 꾹 참아 넘겼다. 눈을 감으면 허리를 치고 올리던 감각과 몸을 가르고 들어오는 낯선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아, 진짜! 미치겠네. 그 새끼는 차라리 때릴 것이지. 뭐 이런 지랄 맞은 짓을 하고 난리야.”

 

강간이라는, 입에 담기도 싫은 일을 당했지만 이와이즈미의 머릿속은 여전히 의문의 남자로 가득했다. 남자는 분명 자신이 누구인지 맞춰 보라는 듯 문제를 냈다. 얼핏 들으면 그냥 수수께끼를 낸 것 같지만 이와이즈미는 알 수 있었다. 남자가 단순히 문제를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와이즈미 본인과 관계되어 있는 일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이해했다.

 

“기억에 없는 얼굴인데. 왜 이렇게 날 아는 것처럼 말했던 거지?”

 

남자는 이상할 정도로 이와이즈미를 익숙한 듯 대했다. 그것이 영 마음에 걸려 거듭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이름은 없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거실 소파로 향한 이와이즈미는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신 뒤 쓰러지듯 소파에 누웠다. 일주일이라는 제한적인 시간 동안 반드시 놈의 이름과 범행 이유를 알아내야 하는데,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벌떡 일어나 무작정 책장을 뒤졌다.

 

법률에 관한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지만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실망의 한숨과 함께 다시 소파에 앉으려던 그의 눈에, 책장 끝에 꽂힌 무언가가 보였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두께도 그리 두껍지 않았고 크기도 좀 큰 것이,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때문에 충동적으로 그 책을 뽑았다. 그리고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아, 뭐야. 고등학교 때 앨범인가? 내가 이걸 왜 여기다 꽂아 놨지?”

 

하지만 황당한 마음도 잠시. 심란한 생각을 가라앉힌다는 핑계로 그는 앨범을 들고 와 소파에 앉았다. 실로 오랜만에 펼쳐보는 앨범이었다. 고등학교 동창들 중 지금껏 연락하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동창회가 있을 땐 종종 얼굴을 비추곤 했었다. 옛 생각을 하며 한 장 한 장 앨범을 넘기던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반을 넘어, 뒷 반 사진까지 훑어보았다.

 

“와, 이 자식. 나한테 시비 엄청 걸었었지.”

 

문득 발견한 학창 시절의 추억에 잠겨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기려던 그 때. 이와이즈미는 경직된 동작으로 다시 앞 장을 펼쳤다. 그리고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을 뚫을 듯이 바라보았다.

 

“이거…… 그 새끼잖아. 하! 이 자식 나랑 같은 학교에 다녔단 말이야?”

 

이와이즈미의 손가락이 머물러 있는 곳에는,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름과 함께 해맑게 웃고 있는 남학생의 사진이 있었다. 설마 이런 데에서 실마리를 찾게 될 줄은 몰랐기에 이와이즈미는 너무 기가 막혀 한참을 사진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눈앞을 스치는 기억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말았다. 벚꽃 잎이 흩날리는 4월의 초봄. 3학년이 되자마자 받은 갑작스러운 고백에 이와이즈미는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백한 상대가 여학생이 아닌 남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와이즈미……. 나, 나랑 사귀자!’

‘뭐?’

‘널 좋아해. 1학년 때부터 좋아했어.’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고, 단 한 번도 남자와 사귄다는 것을 가정해 본 적 없는 그였기에 단칼에 거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안한데, 나는 여자가 좋아서.’

‘……그, 그렇구나. 미안해.’

‘나 먼저 간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매몰차게 돌아섰던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을 잊고 있었던 거지? 게다가 오이카와 이 자식이 나한테 고백한 건 한 번이 아니잖아.”

 

흰 눈이 보슬보슬 쏟아지는 졸업식. 한 번 더 용기를 낸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담담하게 마음을 전했다.

 

‘나한테 관심 없는 거 아는데. 어차피 지금 헤어지면 다시 못 만날 것 같아서. 그냥 말하고 싶었어.’

‘…….’

‘좋아해, 이와이즈미.’

‘…….’

‘……좋아해. 하지메.’

 

오이카와와의 기억은 그것이 끝이었다. 그 해 졸업식이 끝난 뒤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물론 친하지도 않았기에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고. 어린 시절의 잘못된 감정과 한순간의 치기라고 여긴 이와이즈미는 그런 오이카와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의 인생에 있어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다지 기억에 남길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참으로 매정할 정도로 안일하게 여겼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설령 상대가 같은 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마음만은 동일할 텐데. 무시하고 말았다.

 

“오이카와…….”

 

생각해 보면 오이카와는 꽤나 이와이즈미에게 자신을 어필했었다. 비록 3년 내내 반은 달랐지만, 3학년 때 고백한 이후 은근히 뒤에서 챙겨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것을 아는 체 하는 게 오히려 오이카와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아 무시하면 언젠가는 그만두겠지, 하고 외면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철이 없었고, 어린 시절의 감정을 잘못 표현한 것은 오이카와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차라리 선을 그었더라면 그가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말로는 거절해놓고 그 뒤로 애매한 태도를 일관했다.

 

오이카와의 시선과 배려를 당연하다는 듯 누렸으며,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었다. 거기에 더불어 그랬던 그를 완전히 잊기까지 했다. 아니, 그것보다 더 큰 잘못은 오이카와를 향해 흔들렸던 마음을 외면한 것이었다. 그가 싫지 않았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아닌 척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오이카와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준 것일까. 그래도 내가 좋다고, 날 사랑해 준 녀석에게 너무도 무례하게 굴었다.

 

“설마……, 나 때문에 범죄자가 된 건 아니겠지? 학생 때 상처 받고 삐뚤어진 마음을 잘못 표현하게 된 거냐고!”

 

이와이즈미가 주먹을 쥔 채 거칠게 앨범을 내리쳤다. 사진 속 오이카와는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살면서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바로 타인의 마음이었다. 내가 상처 받기 싫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그의 감정을 부인하고 배제해 버렸다.

 

깨닫게 되니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와이즈미는 개의치 않고 옷을 갈아입은 뒤 검찰청 수사팀으로 향했다. 그가 누구인지는 알아냈지만 구체적인 살인 동기는 모호한 상태였다. 정말로 자신에 대한 억하심정으로 이러는 것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뿐. 이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내 친구는 다시 살인을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돼!

 

아무리 세상에서 취급하지 않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은 생명이었기에, 이와이즈미는 눈에 불을 켜고 오이카와의 신상을 털기 시작했다. 이름과 나이, 사는 곳과 학력 정도는 손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가족 관계에 대해서 집중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릴 때 병사(病死)하셨고, 어머니 혼자 누나와 오이카와를 키우셨군. 누나는 결혼한 뒤 현재 미국에서 거주 중이고. 이러니 오이카와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겠군. 그나저나 어머니는…… 어? 이건 뭐지?”

 

오이카와의 어머니에 대해서 보던 중 이와이즈미는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자료에 의하면 어머니 역시 사망한 것으로 나왔는데, 그의 어머니가 사망한 것에 대한 사건 파일이 존재했다. 그렇다는 것은 단순한 사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전의 수사 기록과 보고서, 그때의 관련 신문 기사들을 살펴본 결과 ‘살인 사건’임을 알 수 있었다. 무려 5년 전 일어난 50대 여성 살인 사건. 상세하게 기록된 당시의 사건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늦은 밤 귀가하던 50대 여성의 뒤를 쫓아가 납치하고 강간한 뒤에 목 졸라 살해했다고? 그리고 그게…… 오이카와, 네 어머니였던 거냐?”

 

너무도 놀라운 사실에 이와이즈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황당하고 참담함 심정이었다.

 

“범인에게는 만취 상태였던 점과 심신 쇠약인 점을 고려해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징역 3년 형을……, 무슨 이런 지랄 같은 경우가 있어!”

 

말도 안 되는 법원의 판결에 이와이즈미는 격한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당사자였던 오이카와의 마음은 어땠을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느꼈을 고통과 분노, 그리고 어찌 할 수 없는 무기력까지. 오이카와가 감당해야 했던 감정은 너무도 참담했다.

 

“설마 어머니 사건 때문에 성범죄자를 죽이기 시작한 건가?”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조금 이상했다. 어머니의 일이 계기가 될 수 있다고는 하나, 오이카와가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건 올해의 일이었다. 5년 전의 사건이 원인이라기엔 잠복 기간이 너무 길었다. 그동안 무언가를 준비했다거나 조사했다고 보기에도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대체 정확한 이유가 뭐야?”

 

어머니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까지는 알아냈지만 그 사이의 일을 알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뒤졌으나 건진 내용이 없어 초조해졌다.

 

그렇게 삼 일, 사 일이 지났을 때 이와이즈미의 몰골은 거의 말이 아닐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사건 해결에 매달리다 보니 동료들이 그를 말리는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그리고 오늘로 육일 째. 이와이즈미가 머리를 감싼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다 왔는데, 마지막 매듭이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다시 차근차근 접근하자고 다짐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최초로 살인을 저지른 시점으로 다시 파고 들었다.

 

첫 번째 희생자부터 최근의 희생자에 대한 보고서와 사건 파일을 면밀히 살피던 중 묘하게 반복되는 문구를 발견했다. 조금씩 달리 기재가 되었지만 내용은 같은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피해자는 성범죄 경력이 있는 자로서, 복역을 마치고 나와 생활하던 중에도 여러 차례 여성들을 추행 및 강간 미수를 한 일로 체포된 적이 있음.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없어 집행유예로 풀려남.]

 

이거다! 드디어 얽혀 있던 실마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매의 눈으로 서류를 넘기며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어 내렸다. 그것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성범죄자가 아니라 반복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 이미 한 번 복역한 전과 때문인지 그 수법이 교묘해 이렇다 할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리고 그 처단을 오이카와가 한 것이었다. 거기까지 알아내자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하얗게 물들었다.

 

“오이카와, 우리가 처벌하지 못한 놈들을 네가 처리한 거냐……?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잖아.”

 

경찰 또는 검찰이라는 번지르르한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부분적이었다. 실제로 일어나는 범죄의 반도 처리하지 못했다. 그런 뒤치다꺼리를 한 것이 오이카와였던 것이다.

 

이와이즈미가 드디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거침없이 어딘가를 향해 차를 몰았다. 오이카와의 은신처에 다다랐을 때, 곧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누군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언제가의 일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오이카와였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일주일 중 하루를 남기고 왔음에도 오이카와는 ‘일찍’ 왔다며 웃었다.

 

“아슬아슬하게 온 것 같은데.”

 

이와이즈미가 문을 열며 작게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조용히 은신처 안으로 들어가 작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오이카와는 테이블에 팔을 얹고 턱을 괸 채 이와이즈미를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약속한 대로 이와이즈미가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오이카와가 일으킨 범죄는 한 건도 없었다. 이와이즈미 역시 누구도 동행하지 않은 채 홀로 이곳에 왔다.

 

“여기 왔다는 건 내가 낸 숙제를 풀었다는 건데.”

“그래. 풀었다.”

“호오, 기대된다. 그래서, 가지고 온 답이 뭐야?”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오이카와가 순수한 눈망울로 물었다. 바보, 멍청이 같은 놈. 그렇게 웃는 얼굴로 네 아픔을 감춰 왔던 거냐? 이와이즈미는 속이 아려 신경질이 날 지경이었다.

 

“너희 어머니……. 사건 파일 봤다.”

“…….”

 

오이카와는 말없이 이와이즈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되신 거…… 이제와 말하기 뭐하지만, 정말 유감이다. 그리고……, 범인이 너무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도.”

“응. 정말 유감이지. 설마 10년도 안 살고 나올 줄 몰랐어. 우리나라 법 되게 약하더라?”

 

그러면서 또 피식 웃었다. 이와이즈미는 이제 오이카와의 웃음을 단순한 미소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웃음 속에 감춰진 의미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네가 살인을 시작한 계기가 어머니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무작정 죽인 게 아니라 이미 한 번 처벌을 받은 자들이 재범(再犯)을 저질렀기 때문이지. 그래서 네 스스로 처리하고자 한 거야. 그들이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못하도록. 너희 어머니 같은 희생자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와이즈미의 말이 끝나자 오이카와가 한쪽 입꼬리를 밀어 올리며 대답했다.

 

“맞아. 일단 거기까지는 맞혔어. 근데 내가 누군지는 알아냈…….”

“오이카와. 오이카와 토오루.”

“…….”

 

오이카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와이즈미가 서둘러 대답했다.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지낸 것에 대한 사죄를 하는 것처럼.

 

“미야기현에 있는 아오바죠사이 고등학교에 다녔었지. 우리, 한 번도 같은 반인 적은 없었지만 항상 바로 옆 반이었더라.”

“……그랬지.”

“그리고……. 정말 미안하다. 네 입장에서는 상당히 용기를 내서 한 말이었을 텐데, 나는 완전히…….”

“잊어버렸지.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씁쓸한 미소. 그 미소에 이와이즈미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까지 왜 몰랐을까? 실은 그때 당시,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를 좋아했었다. 3학년 초에 고백 받았을 땐 정말이지 놀라고 당황스러워 냉정하게 돌아섰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할 때마다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졸업식 날 다시 한 번 고백을 받았을 때,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냥 놀란 것뿐이다. 이 자식이 아직도 날 좋아하고 있다는 것에 너무 놀란 거다. 애써 무시하고 억눌렀다.

 

졸업식 이후,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았지만……. 심지어 완전히 잊어버렸지만, 사실은 졸업식 날 받은 고백에 대해 대답하지 않고 그를 보낸 것을 못내 후회했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말하지 않길 잘했다고 정당화 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일부러 그를 잊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그래야 신경 쓰이지 않으니까. 그런 안일하고도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다.

 

“미안하다. 미안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공허한 사과였지만 이와이즈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오이카와는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웃음으로 무마했다. 괜찮아, 라고 말하며.

 

“검사……아니, 하지메. 한 가지만 더 맞혀 봐. 만약 네가 이것까지 맞히면 난 두말 하지 않고 네 손에 잡혀 갈 거야. 지금 이 자리에서.”

 

원래의 약속이라면,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신원과 범행 이유에 대해 말한 것으로 끝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를 잊고 무시한 일이 떠올라 양심에 가책을 느낀 이와이즈미는 흔쾌히 수락했다.

 

“좋아. 뭘 맞히면 되지?”

“내가 왜 널 납치했을까? 왜…… 굳이 널 데려왔을까. 이유를 정확히 말한다면 네 손으로 날 잡아 처넣을 수 있어.”

 

납치한 이유? 글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다 잡은 오이카와를 눈앞에서 놓치게 될 것이다.

 

오이카와의 마음을 떠보는 것 같아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와이즈미는 결심한 듯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아직도…… 나를 좋아해서?”

 

그러자 오이카와가 키득키득 웃었다.

 

“끝이 왜 물음표야? 내가 널 좋아하는 것에 확신이 없어?”

“그야…….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까.”

“흐응, 그렇구나.”

 

확답은 하지 않은 채 오이카와는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답을 맞혔어?”

 

이와이즈미가 진지하게 물었다. 정답인지 아닌지, 솔직히 궁금했다. 그를 체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반은. 하지만 나머지 반은 틀렸어. 널 좋아하는 건 맞아. 근데, 납치한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야.”

 

말을 마친 오이카와의 눈빛이 번뜩였다. 갑자기 돌변한 태도에 이와이즈미는 무척 당황한 듯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오이카와는 테이블 옆에 있는 작은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권총이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실탄이 제대로 장전이 되었다. 그리고 총구가 이와이즈미 자신을 향하게 될 때까지 이와이즈미는 그저 멍하게 앉아 있었다.

 

“하지메, 맞히지 못한 나머지 반이 뭘까? 난 분명히 기회를 줬어. 내 조건을 받아들인 건 너야. 그러니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도록 해.”

 

총구가 정확히 이와이즈미의 가슴으로 향했을 때, 그도 벌떡 일어나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겨누었다.

 

“너…… 결국 이러려고 했었냐? 말로만 잡혀 간다느니 뭐니 하고, 마지막엔 총질이 하고 싶었던 거야?”

“글쎄. 뭘까?”

“웃음이 나오냐?”

“널 보고 있으면 항상 웃음이 나네.”

“하! 미친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와이즈미는 슬며시 권총의 잠금 장치를 풀었다. 여차하면 쏴야 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하지메, 난 셋 세면 쏠 거야.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죽기 싫으면 너도 날 쏴.”

“대체 왜 이래? 네가 저지른 일은 결코 쉽게 용서 받을 수 없겠지만 잘만 하면 어느 정도는 정상 참작이 될 수 있어. 내가 그렇게 해줄게! 그러니까 제발…….”

“하나.”

 

간절한 이와이즈미의 말에도 오이카와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참으로 야속하게도.

 

“오이카와! 이러지 말고 말로 해. 네가 낸 문제도 거의 다 맞혔잖아. 다 맞히고도 반을 모른다고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어떻게 해서든 진정시킨 뒤 조용히 해결하고자 했지만 오이카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리 다 썼어도 마지막 한 문제를 정확히 쓰지 않으면 백 점이 아니야, 하지메. 알잖아.”

“오이카와. 내가 널 잊었다고 이러는 거야? 미안해. 그 점은 내가 정말…….”

“그건 괜찮다고 했잖아. 내가 널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뭐라고?

 

이와이즈미의 눈이 커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대체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 그 시간 동안 너만 혼자 날 기억하고 있었단 말이야?

 

“둘.”

 

멈춰 있던 카운트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 하나만 더 세면 끝이다. 둘 중 하나는 죽을 것이다. 아니면 둘 다 사라지든지.

 

“진정해, 오이카와. 총 내려놓고 말하자. 내가 어떻게 해서든 네 편에 서서…….”

 

그러자 오이카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미 늦었어, 하지메.

 

대체 뭐가 늦었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검사가 범죄자의 편에 서면 안 되지. 내가 죽인 놈들도 전부 쓰레기 범죄자였지만 그런 놈들을 죽인 나는 그보다 더한 쓰레기야.”

“아니야!”

 

강하게 부정하는 목소리에도 카운트는 멈추지 않았다.

 

“셋.”

 

마지막 숫자가 뱉어지는 순간,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이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바닥이 핏빛으로 물들어 갔다.

 

 

 

-

 

 

 

이와이즈미는 멍한 눈으로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깨끗하고 반들반들한 비석이었다. 비석에는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색 양복 차림의 이와이즈미 손에는 그와는 반대되는 새하얀 장미가 들려 있어 무척이나 대조적이었다.

 

“나쁜 자식.”

 

아무리 욕을 한들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마지막 순간, 오이카와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당기는 시늉만 했을 뿐. 그것으로 이와이즈미의 눈을 속였다. 정말로 쏘는 것처럼 꾸며 어쩔 수 없이 이와이즈미가 그를 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었다.

 

“끝까지…… 나쁜 자식.”

 

생각해 보면 그랬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쏠 기회는 굉장히 많았다. 먼저 총을 겨눈 것도 그였고, 정말로 쏠 생각이었다면 겨눈 즉시 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시간을 끌며 이와이즈미가 똑같이 총을 꺼낼 수 있도록 했다.

 

오이카와가 남긴 마지막 말은, ‘고마워.’였다. 대체 무엇이 고맙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황망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고 있던 눈을 뜨자 곱상한 외모의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그가 있는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겠거니, 했는데 놀랍게도 여자는 이와이즈미 옆에 서며 살짝 눈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토오루 친구 분이신가 봐요?”

“……!”

 

이와이즈미의 놀란 얼굴을 봤는지 여자가 살포시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아, 토오루 누나예요. 소식은 며칠 전에 들었는데 갑자기 나오려니 비행기가 없어서……. 오늘에서야 왔어요. 삼 일이나 늦었네요.”

 

오이카와가 죽은 지 벌써 삼 일이 지났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찾았다.

 

“아, 네. 이와이즈미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도 토오루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정말 착한 애였는데. 제가 곁에서 더 돌봐주지 못한 게 미안해요.”

 

여자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이제와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너무 후회가 되네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그녀는, 지나간 기억을 하나씩 꺼내며 말을 이었다.

 

“토오루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적은 몇 번 있었어요. 가끔씩 전화를 할 때면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곤 했거든요.”

 

‘누나, 지금 올 수 없어? 누나가 너무 보고 싶은데.’

‘잠을 못 자겠어. 아, 걱정은 하지 마. 그냥 단순한 불면증이야.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누군가 나를 붙잡아 줬으면 좋겠어.’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토오루는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 자신을 말려 주길 바라면서.”

 

그러다 여자는, 금세 자신에게서 멀어진 어린 아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메!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엄마가 보이는 곳에서 놀아야 해.”

“하, 하지메요?”

 

너무 놀란 이와이즈미가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아, 제 아들 이름이에요. 사실 하지메 이름을 토오루가 지어줬어요. 부모도 아니고 삼촌이 조카 이름을 지어주겠다면서 무조건 하지메라고 지으라지 뭐예요?”

“그, 그랬습니까?”

“네. 일본에서 가장 멋진 이름이라면서요.”

“……!”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이와이즈미는 왈칵 치솟는 눈물을 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입술을 깨물며 집어 삼켰다.

 

“아 참, 그러고 보니 토오루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쭉 좋아한 앤데, 누구냐고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굉장히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잘 되지 않았나 봐요. 그래도 종종 아직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하면서 어찌나 행복해 하던지.”

 

오이카와……!

 

“바보처럼 고백도 못하고 혼자 좋아하기만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고백이라도 하라고 밀어 줄 걸 그랬어요. 전 그냥 토오루가 가끔씩 해주는 그 애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거든요.”

 

고백……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마음을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꽤 오랜 시간 못 만난 걸로 아는데. 그 애 얼굴은 보고 간 건지……. 어휴, 죄송해요.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서.”

 

여자는 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옆에 서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오이카와의 친구라는 말에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을 나누고 싶었는지도.

 

“아닙니다. 가족을 잃으셨는데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이와이즈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다른 상황이었으면 의심을 샀겠지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그녀에게는 이와이즈미 역시 슬픔으로 인해 눈물을 참느라 그러는 것으로 비춰졌다.

 

“토오루가 체포 과정에서 저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고 들었어요. 어쩌면 스스로 멈출 수 없어서 강제로라도 누군가에 의해 살인을 그만두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후우……. 가족이라서 그런지 최대한 이렇게 밖에는 생각을 못하겠네요. 도무지 토오루가 나쁘다고만 말할 수가 없어서…….”

 

이와이즈미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가끔 맞장구를 쳤다. 짧았던 만남을 뒤로 하고 여자와 아이가 돌아가자 그제야 이와이즈미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망할, 오이카와.”

 

이제야 알았다. 네가 냈던 마지막 문제의 정답을. 여전히 날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널 멈춰주길 바랐기 때문에. 그래서 너는 날 납치한 거지.

 

이토록 나를 사랑했는데,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해. 내 편의만 생각해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남긴 마지막 말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말한 ‘고마워.’도 같은 맥락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멈출 수 없음을 자각했지만, 자살할 용기도 없었다.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염없이 울던 이와이즈미는 양복 주머니 안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오이카와가 권총을 꺼낸 서랍장 위에 놓여 있던 것이었다. 숨을 거두기 직전,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서랍장 위의 쪽지를 가리켰다.

 

몇 번이나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펼칠 용기가 나지 않아 지금껏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봐야 할 때인 것 같았다. 쪽지를 펼치자 정갈하고 깔끔한 오이카와의 글씨가 나타났다.

 

[하지메. 네가 이 쪽지를 본다는 건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는 뜻이야.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

 

망할 자식. 뭐가 잘 해결돼?

 

[처음엔 순간의 분노로, 그리고 나중엔 나름의 정의감을 가지고 그랬어. 나라도 나서서 멈추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말이야. 어느 순간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됐어. 내가, 살인을 즐기고 있더라고.]

 

이 부분에서 글씨가 흔들린 것으로 보아 오이카와가 무척이나 동요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두고 싶었어. 하지만 목표물을 보면 어느새 또……. 나 스스로를 점점 제어하기 힘들어졌을 때쯤, 아주 우연히 너를 다시 만났어. 그 골목에서. 기억나지?]

 

그래, 기억난다. 이젠 너와 관련된 것은 작은 것 하나도 잊지 않을 거다.

 

[네가 검사라는 걸 알았을 때, 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넌 모를 거야. 드디어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널 이용했어. 미안해. 만나지 못했을 때도 계속 사랑했지만 얼굴을 보니 더…… 좋아하게 됐거든. 그랬는데도 내 죽음에 너를 이용해서 미안해. 네 손에 죽고 싶었던 내 이기심을 용서해줘.]

 

절절한 오이카와의 심정이 느껴져 이와이즈미는 울컥 올라오는 가슴 속의 뜨거운 기운에 정신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제 된 거야.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되고, 널 좋아하는 마음으로 너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아도 되니까.]

 

아니야. 나도 좋아했어. 아니, 좋아해. 좋아한다고! 더 빨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지메, 네가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부디 내 몫까지 오래오래 살아줘. 고마워.]

 

편지의 마지막은 또 ‘고마워.’였다. 이와이즈미는 편지를 가슴에 안은 채 오열했다. 오이카와의 비석이 눈물로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이카와, 나는…… 너를 하늘로 보낸다. 나보다 조금 빨리 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더 빨리 마음을 인정하지 못한 나를 원망해라. 네가 사라지고 나서야 널 사랑하는 마음을 깨달은 나를 실컷 비웃도록 해.

 

그리고 먼 훗날, 다시 만나자. 네 녀석이라면 그때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겠지.

그리고 나는, 이번에야말로 먼저 너를 알아보겠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