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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마츠하나] 회사원 (+오이이와) 3화

[마츠하나] 회사원 (+오이이와) 3화        Written by. butterfly



3.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늦은 오후. 마츠카와는 모니터를 바라보다 화면 하단에서 깜박이는 아이콘을 발견했다. 사내 메신저였다. 누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뜻으로 아이콘이 깜박이자, 그가 얼른 마우스로 클릭했다.

[지금 많이 바쁩니까?]

오이카와 팀장? 보낸 이의 이름에 '오이카와 토오루'라고 찍혀 있자 마츠카와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곤 답장을 보냈다.

[아뇨. 조금 전에 막 급한 일을 끝내서 괜찮습니다.]
[그럼 잠깐 옥상으로 좀 올라올래요?]

기다렸다는 듯 답장이 와 마츠카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옥상으로 올라오라니, 싸우자는 건 아니겠고. 대체 뭐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무슨 할 말이 있는 거라 생각했다.

[알았습니다. 곧 가죠.]

답장을 보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선 마츠카와가 사무실을 벗어나려 하자 교정 작업을 하고 있던 하나마키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이 바쁜 와중에 저 인간이 또 어딜 가려는 거야?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지라 차마 붙잡지는 못했다. 옥상 문을 열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오이카와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 와요."
"뭐,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마츠카와는 조금 떨떠름하게 물었다.

"할 말 있죠. 마츠카와 팀장, 진짜 바보죠?"
"뭐요?"
"며칠 전에 하나마키 씨한테 했던 짓, 정말로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일에 시달리는 하나마키를 편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마츠카와는 오히려 오이카와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는 깨닫지 못했다.

"여긴 회사라고요. 모두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마키 씨를 배려하겠다고 해야 할 일을 빼앗으면 하나마키 씨 입장이 뭐가 되겠어요? 게다가 힘은 들어도 자기 일에 대한 프라이드도 가지고 있을 텐데."
"아....."
"팀원들 눈치도 엄청 보였을 거고요. 다들 일하는 중에 자기만 혼자 가만히 있으려니 얼마나 민망했겠냐고요. 그런 거 생각 안 해 봤죠?"

하나씩 설명을 들은 후에야 마츠카와는 자신이 한 실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하나마키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하나마키까지도.

"그런 건 배려가 아니라 민폐예요, 민폐."

마츠카와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잘 빠진 턱을 몇 번 문지르더니 이내 물었다.

"그럼.....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마키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글쎄요. 사람마다 전하는 방식이 다르긴 하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다이렉트로 말했어요. 좋아한다고. 쑥스럽긴 해도 효과는 제일 좋아요. 아무래도 마음을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그냥 말하면 되는 겁니까?"
"일단 말이라도 해야 전해질 거 아닙니까. 좋아한다는 말도 없이 계속 그런 행동들만 하면 하나마키 씨는 점점 더 마츠카와 팀장을 피하게 될 거라고요. 자길 싫어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흠, 그건 안 되죠. 알겠습니다. 우선 제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먼저겠군요."
"그런 거죠. 사실, 저랑 마츠카와 팀장은 그다지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마키 씨가 이와쨩의 친한 친구니까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돕는 거예요."
"그거 고맙군요. 어, 잠깐만요. 하나마키랑 이와이즈미 씨가 친구인데, 오이카와 팀장은 이와이즈미 씨랑 소꿉친구라고 했죠?"
"네."

대답을 들은 마츠카와가 피식 웃었다.

"이거, 우리 전부 동갑이었군요."
"에? 마츠카와 팀장도 우리랑 동갑이었어요?"
"네."
"우와.....분명히 연상일 거라 생각했는데."

울컥.

안 그래도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외모 때문에 신경 쓰고 있었던 마츠카와는 가감 없이 말하는 오이카와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여기서 따져 봤자 자신만 손해일 것 같아 조용히 분을 삭였다. 

"뭐, 아무튼 오늘 얘기는 고맙습니다. 하나마키와 잘 되면 술 한 턱 거하게 쏘죠."
"약속한 겁니다?"
"네네."

좋다고 펄쩍 뛰는 오이카와를 뒤로한 채 마츠카와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마음을 전하면 되는 거였어, 마음을. 사무실로 복귀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하나마키에게 쪽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비워 둬.]

교정 작업에 집중하고 있던 하나마키는 모니터 화단에서 깜박이는 메신저를 보고 클릭한 뒤 살짝 이마를 구겼다. 

[시간 없습니다.]

단칼에 거절하는 의사를 보였건만, 마츠카와는 포기하지 않았다.

[별로 시간 많이 안 뺏을 테니까 좀 만들어 봐.]
[왜 그러시는데요?]
[이따가 저녁 때 가르쳐 줄게.]
[딱 1시간만 할애하죠.]
[응. 퇴근하고 밑에서 만나.]
[알겠습니다.]

겨우 얻어낸 약속에 마츠카와의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딱 1시간만 약속 받았지만 어차피 마츠카와는 그 이상을 초과할 생각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하나마키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 마츠카와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파이팅 넘치게 원고를 정리했다. 조금 까다롭게 구는 작가를 상대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더불어 오늘따라 시간이 참 더디게 간다고 생각했다.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 퇴근할 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근 시간이 되었다. 먼저 업무를 끝낸 하나마키가 책상을 정리하며 슬쩍, 마츠카와 쪽을 바라보았다. 슬슬 나갈 때가 되었는데도 마츠카와는 어쩐 일인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진득하게 앉아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고 있는 것이 영 이상했다. 그가 앉아 있자 다른 팀원들도 눈치를 보며 퇴근을 미루고 있었다.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던 그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에 고개를 들었다. 자신 때문에 퇴근하지 못하고 있는 팀원들을 발견하곤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들 미안합니다. 퇴근해도 좋으니 얼른 가세요."
"하, 하지만 팀장님이....."
"저도 곧 갈 겁니다. 자, 금요일 저녁인데 일찍 가서 기분 좀 풀어야지요. 수고들 많았습니다."

망설이는 팀원들을 독촉해 퇴근을 시키긴 했지만, 하나마키만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츠카와가 옅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미안해, 하나마키. 작가 하나가 갑자기 내용을 수정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어. 바로 다음 주에 내야 하는 건데 이제야 연락하면 어쩌자는 건지."
"그럼 제가....."
"아니야."

다시 컴퓨터를 켜려는 하나마키를 제지하며 마츠카와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해도 괜찮아. 원고만 새로 보내오면 금방 할 수 있어. 미안한데, 먼저 가 있을래? 예약한 레스토랑 알려 줄 테니까."
"네."

어쩔 수 없이 하나마키가 먼저 일어났다. 마츠카와는 책상 위에 있는 메모지 하나를 꺼내 레스토랑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 주었다. 

"진짜 미안. 빨리 갈게."
"괜찮습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하나마키는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대체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마츠카와가 적어 준 쪽지를 든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으, 끝났다."

다행히도 작가의 원고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 마츠카와는 하나마키가 나간 뒤 채 10분도 되지 않아 작업을 마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기다리라고 할 걸.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지체하느니 어서 빨리 따라가는 게 낫겠다고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년이나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지만 하나마키와 단둘이 식사를 해본 적은 없었다. 언제부터 그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마츠카와 본인도 정확히 몰랐지만, 아마도 하나마키가 입사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일 거라고 짐작했다. 꽤 유능한 사원이 들어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그 사원을 마음에까지 품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벼운 걸음으로 출판사를 나선 마츠카와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하나마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전화도, 메시지에도 응답이 없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별일은 없을 거라 여기며 목적지 역에서 내렸다. 여유롭게 걸으며 다시 한 번 하나마키에게 전화를 걸려 할 때였다. 그가 지나가고 있는 상점가의 으슥한 골목에서 누군가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벌써 이게 몇 분째야? 이제 좀 적당히 하고 우리랑 가자니까?"
"이거 놓으시죠."
"누구랑 약속이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랑 가는 게 더 재미있을 거야. 그치?"
"당연하지.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는 것도 보고. 응? 그러자."
"이거 놓으라고!"

하나마키? 골목이 어두워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날카롭게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분명 하나마키였다. 그 순간 마츠카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컴컴한 골목으로 끌려갔을 것을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마츠카와는 거침없이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덩치 큰 남자들에게 잡혀 있는 하나마키를 발견했다. 이런 씨발!

"하나마키!"

마츠카와는 생전 처음으로 살의를 느꼈다. 살면서 지금까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 적도 없었고, 그래서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죽이고 싶다.'는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마츠카와의 부름에 하나마키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희망적인 미소를 지었다. 물론 마츠카와의 얼굴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잔뜩 굳어 있었지만.

"넌 뭐야?"

하나마키의 손목을 잡고 있는 남자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자신들보다 나은 것은 큰 키 뿐, 덩치로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마츠카와는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재킷을 벗어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말릴 새도 없이 남자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퍽-

마츠카와의 주먹에 맞은 남자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잡고 있는 하나마키의 손목은 놓지 않았다. 그것을 본 마츠카와의 눈이 분노로 불타올랐고, 곧바로 남자의 팔을 잡아 뒤로 비틀었다.

"으아아아악!!"

갑자기 꺾인 팔 때문에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다. 그것을 본 다른 남자가 재빨리 하나마키를 잡아 인질로 삼으려 했지만 그보다 빨리, 마츠카와의 발이 나갔다. 정확히 복부를 걷어찬 덕분에 남자는 커다란 덩치를 가졌음에도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큰 덩치만 믿고 불량배 짓을 하는 자들이었다.

"너 괜찮아?"

그 와중에도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상태를 체크했고, 그가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잡고 있던 남자의 팔을 놓았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빨리 안 사라지면 다 죽여 버릴 거다."

으름장을 놓는 마츠카와의 목소리에 남자들은 저마다 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들이 가고 난 뒤에도 마츠카와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 자신이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이 골목을 제대로 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더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오한이 들만큼 소름이 끼쳤다. 하나마키를 잃을 수도 있었다, 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티, 팀장님? 마츠카와 팀장님!"

마츠카와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자 하나마키가 그의 어깨를 치며 불렀다. 그러자 그제야 그가 하나마키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내가 물어야 할 말 아닌가."
"전 괜찮습니다. 팀장님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이는데요."
"나도 괜찮아."

하지만 대답과는 달리 마츠카와는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찌나 놀랐는지 입맛도 뚝 떨어졌다.

"미안하다."
"네?"

뜬금없이 사과를 하는 마츠카와를 보며 하나마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너를 혼자 보내는 바람에...."
"아뇨, 팀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아니야. 일이 이렇게 일찍 끝날 줄 알았으면 그냥 기다리라고 했으면 좋았을 걸."
"일찍 끝날 줄 몰랐으니까 먼저 가라고 하신 거잖아요. 팀장님 잘못 없으니까 그만 자책하세요."

놀란 건 하나마키도 마찬가지였지만, 상상 이상으로 화를 내는 마츠카와 때문에 티도 내지 못했다. 물론,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한 것도 그였고 먼저 가라고 한 것도 그였다. 그래서 자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지나치게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한다거나, 상대방을 향해 살의를 비치며 분노하는 모습은 조금 의외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왜 저런 자식들한테 잡혀 있었던 거냐고."
"골목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누가 확 잡아당겨서 그대로 끌려 들어갔어요."
"남자인 줄 알면서도 그랬단 말이야?"
"....네. 그런 것 같...."
"하! 이 새끼들을 그냥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어디라도 하나 부러뜨렸어야 했어."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마츠카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나마키가 풋, 하고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이게 지금 웃을 상황이 아닐 텐데."
"아...하하. 그렇긴 한데요. 팀장님이 너무 화를 내시니까....."

가늘게 떨리던 하나마키의 어깨가 진정이 되었는지 떨림이 멎어 있었다. 그것을 본 마츠카와의 입술에도 겨우 웃음이 걸렸다. 많이 두려웠을 텐데도 빨리 극복하고 미소 짓는 하나마키가 대견했다.

"그나저나 예약 시간 한참 지났는데 괜찮을까요?"
"어, 아마....괜찮을 거야."

마츠카와는 내려놓았던 재킷과 가방을 들었다. 이제 식당으로 가서 즐겁게 식사를 하면 되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하나마키에게 이런 험한 꼴을 당하게 만든 것이 자신인 것만 같아 자꾸만 마음이 옥죄여 왔다. 다시 그의 표정이 굳어지자 하나마키가 후우, 하고 숨을 뱉은 뒤 입을 열었다.

"저기....예약해 놓은 레스토랑은 다음에 가고, 오늘은 다른 데 가서 먹을까요? 어차피 지금 입맛도 떨어졌잖아요."

마치 그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하나마키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마츠카와가 겸연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마키는 자신이 잘 아는 곳이 있다며 그곳으로 안내했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우동 가게였다.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했는지 그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우동 싫어하시는 건 아니죠?"
"어, 좋아해."

주문을 한 뒤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긴 마츠카와는 허탈함에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뒤, 마음먹고 그에게 고백을 하려고 했었다. 설령 고백을 못 했다 하더라도 처음으로 함께 하는 식사인만큼 좋은 것을 사주고 싶었는데, 우동이라니. 많이 아쉬웠지만 하나마키가 좋아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스테이크 대신 우동이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맛있어 마츠카와도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자기가 하겠다며 나서는 하나마키를 말린 뒤 마츠카와가 얼른 계산을 했다. 

"제가 내도 되는데...."
"내가 먹자고 한 거잖아."

조금 망설이던 하나마키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잘 먹었습니다."
"저기서 잠깐만 기다려. 커피 사올게."
"제가...."
"내가 해. 금방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까의 일 때문인지 마츠카와는 자리를 뜨면서도 몇 번이고 하나마키를 돌아보았다. 그때마다 하나마키는 괜찮다며 손을 흔들었다. 늦은 저녁 시간이라 한적하긴 했지만 주변이 꽤 밝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몇 있어 조금 전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이었다. 마츠카와가 그에게 기다리라고 한 장소는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강가였다. 산책하기에 좋은 예쁜 길과 곳곳에 있는 벤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하나마키는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시계를 보았다. 저녁 9시 45분. 

별로 늦은 시간은 아니네. 금요일 저녁이잖아. 다음 날이 주말인 것을 생각하면 좀 더 놀다가 들어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놀랐다. 내가 왜 마츠카와 팀장님이랑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는 거지? 내일은 주말이잖아. 원래대로라면 집에 가서 씻고 새벽까지 밀린 영화를 보다가 토요일에 느지막이 일어나는 게 내 계획이었는데. 근데 어째서 마츠카와 팀장님이랑 더 있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는 사이 마츠카와가 근처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들고 왔다.

"여기."
"감사합니다."

커피를 받아든 하나마키가 조심스레 마시는 모습을 보며 마츠카와도 얼른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새카만 강물이 눈에 들어왔다. 낮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내일이 주말이라 오늘 같은 날은 혼자서 편하게 보내고 싶을 텐데. 내가 너무 오래 잡고 있지?"

어라? 이 사람 오늘따라 왜 이러지? 회사에서 봐 왔던 마츠카와는 능글맞고 놀리기 좋아하는 심술쟁이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는 모든 것을 하나마키 쪽에 맞추려는 듯 조심하는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말투도 꽤나 상냥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번도 나한테 시비를 안 걸었잖아?

"아, 아뇨. 괜찮습니다. 그리고 아까 일, 정말 감사했어요. 경황이 없어서 이제야 말하네요. 진작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아니야.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또 팀장님 잘못이라고 하시려고요? 그거야 말로 아니죠."
"그래, 알았어.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이야."
"팀장님이 싸움 잘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학생 때 꽤 노셨나 봐요?"
"하하하. 무슨 말이 그래? 나 운동부였어. 싸움을 하고 다닌 건 아니었지만 운동 하느라 몸 좀 만들었었지."
"무슨 운동 하셨는데요?"
"배구."
"오오. 그렇게 안 보이는데 배구도 할 줄 아세요?"
 
의외라는 듯 묻는 하나마키를 보며 마츠카와가 기분 좋게 웃었다.
 
"우리 학교 배구부 이름 있는 곳이었거든?"
"네네. 그런 걸로 하죠."

아, 이 귀여운 게 진짜. 절대 믿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다니 그런 걸로 하자는 식의 대답에 마츠카와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 상대가 하나마키다 보니 그저 귀엽기만 했다.

"음, 이제 10시네. 앞으로 딱 30분만 더 같이 있어줘."

알 수 없는 제안에 하나마키의 얼굴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혹시......오늘이 무슨 날인가요?"
"아니, 뭐."

대충 얼버무리려 하는 마츠카와의 태도에서 하나마키는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왜 말을 못 하십니까? 뭔데 그러세요?"
"별거 아니라니까. 그냥 너랑 밥 먹고 싶었어. 그게 다야."
"아닌 것 같은데요."
"맞다니까."
"진짜 얘기 안 하실 겁니까? 딱 봐도 수상한 게 티가 나는데도요?"

흐음. 마츠카와가 난감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들릴 듯 말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 내 생일이야."
"........뭐, 뭐라고요? 생일?"
"어. 근데 그냥......"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데요!"
"어?"

갑자기 버럭 목소리를 높이는 하나마키를 보며 마츠카와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왜 화를 내지?

"그런 거라면 처음부터 얘기하셨어야죠."
"아니.....이 나이에 생일 같은 거 꼬박꼬박 챙일 것도 아니고, 난 그냥 너랑 밥이나 먹으면 그걸로 되니까......"
"생일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 이렇게 대충 보냅니까? 아, 정말!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러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가 버렸다. 벌써 저만큼 멀어진 하나마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마츠카와는 그제야 입술을 움직였다.

"왜....왜 화를 내는 거지? 나 뭔가 실수했나? 아, 진짜! 레스토랑도 못 가고, 고백도 못 하고. 이게 뭐냐."

홀로 남겨진 마츠카와가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하나마키가 곱게 포장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이게 뭔데."
"가만히 있어 보세요."
"알았어."

그냥 그가 하는 대로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마츠카와는 얌점히 지켜만 보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상자를 여니 눈처럼 하얀 케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왔을 때 왜 그렇게 숨을 몰아쉬나 했더니, 이거 사려고 뛰어다녔구나. 마츠카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느끼며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하나마키를 응시했다. 그런 시선을 모른 채 하나마키는 케이크에 열심히 초를 꽂았다.

"내 나이 알아?"

놀랍게도 하나마키는 정확히 큰 초 세 개를 챙겨 왔다. 질문을 하면서도, 설마 정말로 알고서 가지고 온 건가 싶어 마츠카와는 고개를 갸웃했다.

"압니다. 저랑 동갑이신 거."
"어라, 알고 있었어?"
"네. 저 입사한지 며칠 안 됐을 때 팀원들이 하는 얘기 들었습니다. 저랑 팀장님이랑 동갑이라고 하는 거요. 제가 다른 일을 하다가 뒤늦게 입사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반 회사에서 일을 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늦게 출판 쪽으로 진로를 바꾼 하나마키는, 자신이 속한 팀의 팀장과 동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능력 있는 사람이면 빨리 승진할 수도 있지 뭐.

"그랬구나. 그럼 우리도 오이카와 팀장네처럼 서로 말 놓을까?"
"아뇨. 그건 싫습니다."
"왜?"
"습관되면 고치기 어렵잖아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실수할 수도 있고요."
"그런가. 난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습니다. 됐으니까 촛불이나 끄세요. 참고로 노래는 안 할 겁니다."

그 사이 초에 불까지 켠 하나마키가 케이크를 들어 마츠카와 앞에 놓았다. 잠시 초를 보며 소원을 생각한 뒤 후, 불자 세 개의 초가 차례로 꺼졌다.

"고마워, 하나마키."

생각지도 못한 축하에 마츠카와는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그 상대가 하나마키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생일 때문에 같이 밥 먹으려고 했던 거였으면 그냥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지. 그랬으면 선물도 준비했을 거 아닙니까."

조금 불만스럽게 말하는 하나마키를 보며 마츠카와는 피식 웃었다. 아니야, 생일 때문에 밥 먹자고 한 거.

"그것 때문은 아닌데."

생일 같은 건 괜찮아. 

"그럼 뭐 때문에....."
"할 말이 있어서 그랬어."

하지만, 덕분에 네가 내 생일까지 챙겨 주고. 나쁘지 않네.

"할 말이요? 뭔데요?"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있잖아, 하나마키."
"네."
"지금이라도 나한테 선물 줄 수 있는데, 줄래?"
"지금요? 저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줄 수 있어."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던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하나마키는 숨이 닿을 듯한 거리로 다가온 마츠카와로 인해 너무 놀라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어떻게 대응할 틈도 없이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다. 마츠카와는 손을 들어 하나마키의 머리를 슬며시 받치며 자신 쪽으로 살짝 당겼다. 

그때까지도 하나마키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마츠카와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짧은 키스가 끝나고, 다시 벌어진 거리에 마츠카와가 아쉽다는 듯 혀로 입술을 훔치자 그제야 하나마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지,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당황한 듯 이리저리 시선을 굴리는 것이 귀여워 마츠카와가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 

"할 말 있다고 했잖아. 부탁이니까 잘 들어 줘."

뭐하는 거냐는 질문에 할 말이 있다는 동문서답을 던진 마츠카와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으로 하나마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허둥대던 하나마키의 몸짓이 딱 멎었다.

"좋아해."
"........"
"내가 너, 많이 좋아해. 하나마키."

한참을 감추어 두었던 마츠카와의 진심이 날개를 달고 비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