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우리 사이의 거리 - 5
보쿠토 코타로 X 아카아시 케이지
우리 사이의 거리
Written by. Sanzo
나는 유타로를 데리고 문에서 조금 떨어졌다. 유리문이다 보니 안에서도 우리가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저쪽에선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이대로 있다간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유타로는 왜 그러는 것이냐며 자꾸만 안을 들여다보려 했고, 보쿠토 씨는 여전히 여자와 실랑이 중이었다. 내 시선에서만 안의 상황이 보였다. 친엄마를 모르는 유타로에게 두 사람이 다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적당한 이야기로 아이를 달래야 했다.
“우리, 이렇게 숨어 있다가 아빠가 나오면 놀래켜 드리자.”
다행히도 아이는 금세 신이 난 얼굴로 숨을 죽였다. 그리고 잠시 후, 보쿠토 씨가 매우 화가 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제 아빠가 나온 것을 본 아이는 입술을 씰룩이며 웃음을 참다 가까이 다가오자 와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작전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여자를 완전히 뿌리치고 나온 줄 알았건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보쿠토 씨의 바로 뒤에 있었다.
“아, 뭐야. 깜짝 놀랐네.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신경질적인 말투와 매섭게 째려보는 눈매에 유타로는 금방 기가 죽어 울먹이며 내 뒤로 숨었다. 증거는 없지만 저 여자는 분명 유타로의 엄마다. 갓난아기일 때 버리고 나갔기 때문에 다섯 살 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식도 몰라 보고 버럭 소리부터 지르는 태도가 무척이나 거슬렸다.
“보쿠토 씨.”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불렀다. 다른 건 몰라도 유타로를 무시하는 건 정말이지 기분이 나쁘다. 내 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 테지. 보쿠토 씨는 나와 유타로를 향해 등을 보이며 섰다. 여자의 시선에서 우리를 보호하겠다는 듯이.
“아직 얘기 안 끝났으니까 장소 좀 옮기자.”
여자는 뭔가 할 말이 더 남은 듯했다. 하지만 보쿠토 씨는 빠르게 거절했다. 너랑 할 얘기 없어, 라며. 어처구니 없다는 듯 바라보던 여자가, 문득 보쿠토 씨 등 너머에 있는 나와 유타로에게 시선을 옮기더니 이내 입을 가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머나! 너 유타로였니? 유타로 맞지? 정말 많이 컸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아이에게 화를 내던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말투가 달라졌다. 그러나 아무리 여자가 웃으며 알은체를 해도 유타로는 내 뒤에 서서 옷깃을 잡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미소는커녕 겁에 질린 표정만 짓고 있는 유타로가 못마땅한지 곧바로 눈을 부릅뜨더니 칫, 하고 혀를 찼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넌 내 뱃속에서 나온 애야. 알아? 내가 네 엄마라고.”
이런 식으로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친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좋으나 싫으나 넌 내가 낳았으니 나한테 복종하라는 식의 태도라니. 보쿠토 씨가 불같이 화를 내며 뭐라고 따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솔직히 무슨 말인지 들리지도 않는다. 나는 오로지 유타로만 걱정이 될 뿐이었다.
“유타로…….”
조심스럽게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유타로가 이슬 같은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내게 물었다. 우리 엄마는 여기 있어. 저 아줌마가 아니잖아. 내 말이 맞지? 나는 아이를 들어 품에 안았다. 내게 안기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놀랐나 보다.
“왜 이래? 내가 유타로 엄마라는 게 뭐 틀린 말이야? 맞잖아! 내가 낳았다고! 근데 뭐! 왜 말도 못 붙이게 해?”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걸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보쿠토 씨가 걱정된다. 여긴 그가 다니는 회사 앞이니까. 잔뜩 화가 난 보쿠토 씨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자리를 옮기죠. 보는 사람도 많고, 무엇보다 당신 회사 앞이잖아요. 결국 우리는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여전히 기세등등한 여자와 거의 살기를 내뿜다시피 하는 보쿠토 씨 사이에서 나와 유타로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침묵을 깨고 보쿠토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찾아온 이유가 뭐야. 빨리 말하고 가.”
그러자 여자가 매혹적으로 입술 끝을 올리며 웃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라 뭐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외모만큼은 정말 아름다운 여자였다.
“아까도 말했잖아. 나 당신이랑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예전엔 나도 어렸고,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결혼이라 혼란스러웠어.”
“준비? 혼란?”
드물게, 보쿠토 씨의 말투가 사나워졌다. 당장이라도 씹어 먹을 듯한 기세여서 나는 그의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여자에게 달려들지 못하도록.
“너만 그랬던 것처럼 말하지 마.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넌 엄마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지키지 않았어. 그때 넌…….”
뭔가 말하려다 멈칫한 보쿠토 씨가 내게 말했다. 케이지, 유타로 데리고 잠깐 나가 있을래? 아니면 저기 다른 자리에라도……. 말끝을 흐렸지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았다.
“네.”
순순히 일어나 유타로와 함께 그들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로 이동했다. 나도 나지만, 아마도 유타로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듣지 않아도 될 말까지 들을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여자는 걸어가는 내 앞으로 높은 하이힐을 신은 다리를 뻗었다. 길을 막은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 있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그냥 해. 난 내 아들 계속 보면서 얘기하고 싶으니까. 아니면 애 이리 주고 당신만 가든지.”
당당하게 아이를 요구하는 태도에 기가 찼다. 유타로는 울상을 지은 채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싫어, 엄마랑 있을 거야! 내 목을 껴안고 강하게 의지를 내비치는 아이의 말에, 여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엄마? 누가 엄마야? 네 엄마는 나야. 그러니 이리 와!”
강압적이다 못해 이젠 명령까지 한다. 가만히 듣고만 있을 보쿠토 씨가 아니다.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그를 만류하며 드디어 내가 나서서 말했다. 나는 보란듯이 유타로를 꼭 안고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낳은 사람은 당신일지 몰라도 키우고 있는 건 접니다. 그리고 전 법적으로도 보쿠토 씨와 결혼한 사이니 유타로의 엄마가 맞습니다.”
“뭐라고?”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표정 변환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타로를 넘겨 줄 생각은 당연히 없다. 처음엔 그녀가 친엄마라고 해서, 설령 하는 행실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해도 최대한 배려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유타로에게 함부로 대하는 건 참을 수 없다. 그것이 친엄마라 해도.
“못 들으셨습니까? 현재는 제가 유타로의 엄마니 더 이상은 당신의 무례한 행동을 참지 않겠습니다.”
“참지 않으면 어쩔 건데?”
허벅지가 훤히 보이도록 다리를 꼬고 앉아 아니꼽다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이 정도 눈빛은 아무렇지도 않다. 긴장감이 흐르는 배구 코트 위에서 우리 팀을 응시하던 상대 팀 선수들의 눈빛이 훨씬 더 위협적이었으니까.
“그만 가겠습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와는 말을 섞지 않는 편이라서요.”
그리고는 보쿠토 씨에게 일어나라고 눈짓했다. 나는 유타로를 안은 채 먼저 카페 밖으로 나왔고, 뒤이어 보쿠토 씨도 따라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여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향해 뭐라고 말했다. 그 안에는 욕설도 섞인 듯했다. 가늘게 몸을 떠는 유타로를 품에 안고 보쿠토 씨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 즐거운 외식을 하려고 했건만, 그건 이미 물 건너갔다.
택시 안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유타로는 잠이 들었고, 밥도 먹지 못한 아이를 침대에 눕혀야 했다. 나와 보쿠토 씨 역시 저녁 식사를 미루고 거실에 마주 앉았다. 뭔가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아까는 대담한 척 말했지만, 그녀가 보쿠토 씨의 직장을 아는 이상 앞으로도 이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미안해.”
한참만에 떨어진 보쿠토 씨의 입술이 미안하다는 단어를 말했다. 그의 잘못이 아니니 사과할 필요는 없다. 보쿠토 씨도 많이 당황했을 테니 오히려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전 괜찮아요.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유타로의 엄마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정말이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막무가내에 안하무인인 성격 말이야. 조금쯤은 달라졌을 줄 알았는데.”
아까 로비에서 무슨 얘기를 했나요? 묻고 싶다. 하지만 뭔가 캐묻는 것 같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보쿠토 씨는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알아서 이야기해 주었다.
“아까 회사에서 만났을 때 뭐라는 줄 알아? 자기가 유타로를 데려가겠대. 엄마가 키우는 게 더 좋을 거라면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진짜 웃기지도 않아. 그런 여자 밑에서 자라면 유타로만 불행해질 거야. 난 절대로 그렇게 못 해.”
다른 말은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뭐, 유타로를 데려간다고?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유타로는 내게 있어 보쿠토 씨만큼 소중해졌다. 그런 아이를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절대, 절대 안 돼요! 유타로는 못 보내요. 제가 키울 거예요. 보쿠토 씨, 그것만은 막아 주세요. 네?”
다급한 마음에 그의 팔에 매달려 두서없이 말했다. 보쿠토 씨는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부드럽게 다독였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물론 친권은 보쿠토 씨에게 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걱정 안 해도 돼. 예전에 이혼할 때 그 여자 사는 곳이나 일하는 직장의 환경이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돼서 모든 권리가 나한테 주어졌거든. 게다가 엄마로서의 자격이나 태도도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판결 받았어. 그리고 이건 네가 놀랄까 봐 말 안 했는데…….”
그에게 안겨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사실을.
“여기로 이사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유타로의 유치원으로 찾아가서 자기가 엄마니 애를 내놓으라고 소란을 피운 적이 있어. 유타로가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아서 며칠 동안 자는 내내 울더라고. 그리고 한동안 유치원도 못 갔고. 그것 때문에 그 여자, 접근 금지 명령까지 받았어.”
“네? 그럼 오늘은…….”
“응. 당연히 나타나면 안 되는 거지. 법으로 정한 범위 밖에서 보고 간다면 모를까. 법원에 얘기하면 뭔가 조치를 취하겠지만, 솔직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 미안해, 케이지.”
왜 또 사과를 하는 걸까. 보쿠토 씨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니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한때는 같이 살았었고, 아이의 친엄마니까. 차마 완전히 차단하는 일까지는 못 하는 것이겠지.
“무슨 말인지 알아요. 이해하니까 사과하지 마세요. 그래도 유타로는 보낼 수 없어요. 가끔 만나게 해주는 거라면 가능하지만.”
“아니, 그렇게 안 해도 돼. 배려한다고 고마워할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배려를 해 주면 오히려 당당하게 더 요구할 테니까. 지금 유타로의 엄마는 너야. 너는 정식으로 나랑 결혼한 사람이니까 당당해도 돼.”
“네.”
단호하고 확고하게 말해 주는 것이 고맙다. 괜찮아요, 보쿠토 씨. 아니, 이제는 코타로 씨라고 불러도 되겠죠. 옅게 미소를 짓는데, 그가 화제를 돌려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근데 케이지, 네가 살던 방 나갔다는 거 같더라. 아침에 출근하면서 건물 주인을 만났는데 며칠 내로 이사 올 거라고 하던데.”
“그래요? 생각보다 빨리 나갔네요.”
“그러게. 뭐, 이 근처는 교통편이 좋으니까 금방 빠지는 거겠지.”
그의 말대로 나는 이사한지 오래지 않는 방을 뺐다. 그리고 바로 옆집으로 다시 이사했다. 이제는 이 집이 나의 집이다.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 있는데 갑자기 방을 빼게 돼서 주인을 곤란하게 해 버렸지만, 감사하게도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주셨다. 물론 위약금도 냈다. 내가 파기해 버린 거니까. 어쨌든 내가 나가고 생각보다 빨리 다음 사람이 구해져 다행이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이 시간에 뭔가 거하게 먹기엔 좀 그렇고. 간단하게라고 요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빵 드실래요? 갑자기 먹을 걸 물어보는 나를 보며 코타로 씨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딸기 잼도 있어요. 거기까지 말하자 그제야 이해했다.
“응. 먹을래.”
유타로가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잠이 든 게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 깨우는 것도 아닌 것 같아 그냥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좋아하는 것을 잔뜩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나는 또 그 여자와 마주쳤다. 유타로의 친엄마. 자신을 하루사키 리나, 라고 소개했다. 이게 본명인지, 아니면 일하는 곳에서 쓰는 가명인지는 모르겠다. 어제 많이 놀랐을 유타로를 위해 오랜만에 마트에 데리고 간 것이 잘못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유타로는 마트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기분도 풀어 줄 겸 일부러 왔는데, 하필이면 이곳에서 딱 마주칠 게 뭐란 말인가.
아이는 여자를 보자마자 또 벌벌 떨기 시작했고, 나는 침착하게 유타로를 품에 안고 진정시켰다. 괜찮아, 엄마가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어제와는 달리,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어제 같았으면 누가 엄마냐고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드디어 원하는 장소를 찾았다. 마트 매장 밖에 있는 놀이방이었다. 시간 당 얼마 씩 돈을 내면 장을 보는 동안 아이들을 놀 수 있게끔 해주는 곳이다.
“유타로, 저기 가서 놀고 있을래?”
내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린 유타로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놀이방에 보낸 후, 나와 하루사키 씨는 카트를 끌고 바로 근처에 있는 쉼터에 앉았다. 내게 할 말이 있는지 조금 머뭇거리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도, 내게 자격이 없다는 건 알아요.”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차분할 정도로 목소리 톤이 낮아져 있다. 그녀의 말을 끊지 않기 위해 듣고 있다는 태도만 보일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보쿠토나 나나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타로를 갖는 바람에 겁이 났어요. 그리고 내 청춘을 날리고 싶지 않았죠. 보쿠토를 사랑했다면 좋았겠지만, 알다시피 우리 둘 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 아니니까요.”
그러면서 나를 살피듯 바라보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웃는 모습은 영락없이 유타로와 닮아 있었다.
“떠났다곤 해도, 유타로가 늘 보고 싶었어요. 잠깐만 보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거절해서 나도 모르게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고 말았죠. 어차피 내가 데려갈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당신에 대해서는, 언젠가 유타로에게 진지하게 말하려고 했어요. 좀 더 큰 뒤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하려고 했습니다.”
“고마워요.”
순순히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 신기했다. 모질게 나갔어도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아이가 보고 싶지 않았을 리 없겠지. 하지만 이제 와서 보자니 염치가 없고, 자신을 엄마라고 말하기도 민망해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보쿠토와 결혼했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하루사키 씨는 놀이방에서 신이 나게 뛰어놀고 있는 유타로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그 사람과 유타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 같네요. 난 겁을 먹고 도망쳤지만 부디 당신만은 끝까지 그들 곁에 있어 주세요.”
어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대일로 이야기를 해 보니 이 여자 역시, 그냥 엄마일 뿐이다. 비록 버리고 떠났어도 자신이 낳은 아이를 마음에 담고 있었으니까. 보쿠토 씨,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한때 당신의 아내였던 이 여자는,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안하무인인 건 아닌 것 같으니까요.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유타로를 데리고 마저 장을 봤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부터 보쿠토 씨가 좋아하는 것까지 잔뜩 샀다. 오늘은 두 사람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만들 생각이다.
훗날, 때가 되면 유타로에게 친엄마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줄 것이다. 그녀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잊고,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엄마의 모습에 대해 꼭 말해 주려 한다. 유타로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런 날보다 먼저, 기쁘고 행복한 일이 찾아왔다.
아아, 유타로에게 동생이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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