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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보쿠아카] 우리 사이의 거리 - 3

[보쿠아카] 우리 사이의 거리 - 3




보쿠토 코타로 X 아카아시 케이지


우리 사이의 거리


 Written by. Sanzo

 

 

 

원래부터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 있긴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일부러 더 일찍 일어난다. 보쿠토 씨와 유타로의 아침 식사를 챙기기 위해서다. 나 혼자 먹는 거라면 간단히 차리겠는데(가끔 빵으로 때울 때도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만들 땐 몇 배는 더 신경 쓰게 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유타로가 좋아하는 달걀 프라이와 문어 소시지를 만든 뒤, 보쿠토 씨가 좋아하는 미소 된장국을 끓였다.

 

대충 준비가 끝났을 무렵 보쿠토 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왔다. 어, 벌써 일어났어?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한쪽 눈은 뜨지도 못했다.

 

“얼른 씻고 오세요.”

“응.”

 

우리 집이 아닌데도 구조가 같고, 머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어느새 내 집처럼 생활하고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이런 식으로 보쿠토 씨 곁을 맴돌아도 괜찮은 거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애써 그렇다, 고 결론을 지었다. 쏴아아-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씻기 시작했나 보다. 시곗바늘은 이제야 겨우 6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평소보다 30분이나 더 일찍 일어났다. 알람이 없는데도 6시가 되자 눈이 번쩍 떠졌다. 유타로는 내 옆에 바싹 붙어 고르게 숨을 내쉬며 자고 있었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다 조용히 빠져나와 간단히 씻었다. 우리 집이 아니니 마음대로 씻지는 못하겠더라. 그리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출근 준비를 마친 뒤 다시 왔다. 아무래도 여기서 아침밥을 먹고 출근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보쿠토 씨가 일어난 거다. 식사 준비는 다 됐고, 그럼 잠깐만 쉴까? 보쿠토 씨가 나오고 유타로를 깨울 시간이 될 때까지 여유를 부려 보기로 했다. 그래 봤자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티브이를 켠 뒤 볼륨을 낮추고 거의 화면만 보다시피 했다. 푹 자고 일어나야 기분도 좋고 쑥쑥 잘 자랄 테니 티브이 소리에 유타로가 깨서는 안 됐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특별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뉴스나 전날 했던 드라마의 재방송 정도. 딱히 볼 게 없어 뉴스를 틀었다.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 정도는 알아야지. 날씨도 중요하고. 우리 집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보쿠토 씨네 거실에는 소파가 있다는 것이다. 이사 오면서 짐을 축소한 탓에 우리 집 거실엔 직사각형의 러그와 작고 동그란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소파에 몸을 묻고 있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잠시 후, 보쿠토 씨가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며 나왔다. 상반신은 훤하게 노출한 채 말이다. 샤워한 뒤에는 체온 유지가 중요하니 반드시 옷을 갖춰 입으라고 예전부터 말했건만,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다. 이제 슬슬 날씨가 쌀쌀해지는데, 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오, 좋은 냄새.”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 리 없는 보쿠토 씨는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냄비에 온 관심을 쏟고 있다. 미소 된장국이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피식- 웃으며 일어나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먹기 좋게 그릇에 담아 식탁에 놓았다.

 

“유타로 좀 깨워 주세요.”

 

응. 대답하고 들어간지 1분도 안 됐는데, 안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깜짝 놀라 국을 푸다 말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무슨 일이에요?! 다급하게 묻자 보쿠토 씨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봐, 케이지 안 갔잖아. 그러니까 그만 울어. 응?  

 

“케이지이이이이-”

 

유타로가 나를 향해 두 팔을 뻗으며 안아 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손에 국자가 들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쿠토 씨, 이것 좀. 그에게 국자를 넘긴 후 유타로를 품에 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유타로가 좋아하는 문어 소시지를 준비하고 있었어. 작은 등을 토닥이며 안심할 때까지 가슴에 안고 있자 보쿠토 씨가 신기한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니…… 유타로가 보는 눈이 나랑 비슷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아카아시를 따를 줄은 몰랐어.”

“아무래도 매일 데리러 가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런가?”

“걱정 마세요. 그래도 유타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니까요.”

“아, 아냐! 나 질투한 거 아니야.”

 

아니라고는 하지만 얼굴이 벌게진 걸 보니 확실한 것 같다. 하여간 재미있는 사람이다. 유타로가 나를 따른다 해도 당신은 아빠이고 나는 그저 아빠의 친구일 뿐인데.

 

“자, 늦겠어요. 빨리 가서 밥 먹죠.”

 

내가 유타로를 안고 돌아서자 보쿠토 씨도 따라 나왔다. 먼저 아이를 자리에 앉힌 뒤 보쿠토 씨에게 국자를 넘겨 받아 국을 푸고, 밥까지 놓자 완벽한 아침 식사가 되었다. 잘 먹겠습니다! 힘차게 말한 유타로는 언제 울었냐는 듯 씩씩하게 밥을 먹었다.

 

 

 

**

 

 

 

퇴근 시간이 임박했을 무렵, 보쿠토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은 회식이 있어 평소보다 더 늦을 것 같단다.

 

“괜찮아요. 유타로는 제가 재울 테니까 술 너무 많이 마시진 마세요.” 

 

알았어. 아카아시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진짜 고마워! 밝고 쾌활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보쿠토 씨는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려 했을까? 부모님 댁은 거리가 좀 있어서 쉽게 맡기지 못했을 텐데. 어쨌든 유타로 덕분에 점점 더 보쿠토 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이런 식으로 나를 좀 더 의지해 주면 좋을 텐데.

 

“케이지!”

 

다른 친구들처럼 제 시간에 집에 가는 것이 익숙해졌는지 유타로는 더 이상 우울한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아빠를 생각해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캄캄한 밤이 되도록 기다렸을 것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짠해진다. 유타로를 데리고 먼저 우리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보쿠토 씨의 집으로 갔다. 그가 내게 준 그의 집 열쇠는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질 정도로 소중한 물건이다.

 

유타로와 둘이서 저녁을 먹는 건 이제 너무도 익숙해서 아이도 나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마치 오래 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맛있게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유타로에겐 아이스크림을, 나는 따뜻한 홍차를 마셨다. 함께 티브이 앞에 앉아 어린이 방송을 보고 있자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기 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묘하다고나 할까? 내가 이 집의 구성원 중 하나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케이지.”

 

만화에 집중하는 줄 알았더니, 유타로는 어느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눈빛치고는 꽤 진지하게.

 

“응.”

“계속 유타로랑 살 거지?”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렇다고 하고 싶다. 하지만 무턱대고 말했다간 아이에게 괜한 기대만 하게 만드는 꼴이 되어 버리니까. 신중해야 한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나는 케이지랑 살고 싶어.”

“……고마워.”

 

어, 이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오고 말았다. 날 원하는 유타로에게 정말로 고마웠다. 싫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심지어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해 주니 상대가 아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뭉클했다.

 

“그럼 같이 사는 거지?”

“아, 그건…….”

 

확답을 하지 않고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어느 날 보쿠토 씨가 애인이 생겼다며 다른 사람을 데려온다면 같이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뭐라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대답을 미루자 유타로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차, 상처를 준 건가?

 

“유타로, 그게…….”

 

타닷-

 

실수한 것 같아 어떻게든 달래 주려 했지만 유타로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매단 채 자기 방으로 뛰어가 버렸다.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안 그래도 상처가 많은 아이인데 나까지 보태서 뭘 어쩌자는 거야? 급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자 작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우는 모습이 보였다.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미 한 번 버림받은 적이 있는 아이에게 또 그 공포를 느끼게 하고 말았다.  

 

물론 유타로는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간 사실은 모를 것이다. 다만, 주변에서 하는 소리가 있으니 아무리 어려도 뭔가 들은 말이 있겠지. 쟤는 왜 엄마가 없느냐, 쟤네 엄마는 집을 나갔대, 하는 등의 쓸데없는 말을. 같은 반 아이들이 집에서 듣고 와 생각없이 내뱉는 소리였겠지만. 아이들이 뭘 알겠는가. 그저 부모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한 것일 텐데. 

 

나는 유타로의 침대 밑에 무릎을 접고 앉아 아이의 등을 어루만졌다. 내 손길이 닿자 아이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나까지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도, 나도 너랑 살고 싶어. 너와 보쿠토 씨 곁에 있고 싶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감정에 결국 아이의 작은 등에 얼굴을 대고 숨을 죽이며 울었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울고.

 

“유타로, 미안, 흡… 미안해. 나도 유타로가 좋아. 그래서 같이 살고 싶어.”

 

거의 반은 흐느끼며 고해성사를 하듯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다. 보쿠토 씨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진실을.

 

“있잖아, 유타로. 으음……, 난 유타로도 좋고 아빠도 좋아해. 항상 같이 있고 싶어. 정말이야.”

 

유타로가 몸을 일으켰다. 눈물범벅의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그럼 같이 살아! 나랑 살아! 가지 마! 나는 와락- 아이를 안고 입술을 깨물었다. 좀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참 많이 울었다.

 

“근데 어떡하지? 내가 아빠한테 거짓말을 했어. 아빠를 좋아하는 걸 틀기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서 거짓말을 했어.”

“괜찮아, 케이지. 사과하면 용서해 줄 거야.”

 

아이다운 답변이었지만, 정말이지 명쾌한 해답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타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근데 왜 들키면 안 돼? 좋아하면 말해야지.

 

아아, 그래. 좋아하면 그렇다고 말하면 되는 건데. 그 쉬운 걸 지금까지 못하고 있었다니. 다섯 살 아이만도 못한 바보구나. 나와 유타로는 서로를 안은 채 울었다가, 또 웃기도 했다가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케이지, 케이지……. 우리 엄마 해. 응? 엄마 하면 안 돼?”

 

겨우 진정된 마음이 또 술렁이기 시작했다. 다른 무엇보다 ‘엄마’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울렸다. 엄마라니, 내가 유타로의? 보쿠토 씨의 옆에 있어도 된다는 말인가?

 

“싫어? 아빠 좋아한다며. 그러니까 유타로 엄마 해. 케이지이이이- 흐아아아앙!”

 

내 목을 꽉 끌어안은 채 목 놓아 우는 아이를, 나는 그저 토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싶어, 유타로. 정말로……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어.

 

“자, 유타로. 울지 마. 아빠만 좋다고 하면 그렇게 할게. 유타로의 엄마가 될게. 약속할 테니까, 그만, 울어…….”

 

대체 한밤중에 아이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보쿠토 씨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유타로에게 말해 버렸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속앓이를 하느라 내내 고생했었는데, 비록 아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진짜 아빠가 좋다고 하면 케이지가 엄마 해 줄 거지?”

“응.”

“약속 지켜야 돼? 꼭이야.”

“그럴게. 유타로랑 한 약속이니까 지킬 거야.”

 

그제야 유타로는 울음을 멈추고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얼핏 웃는 소리도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엉엉 울던 아이가 배시시 웃고 있다.

 

“이제 자야지.”

 

응. 대답하고는 곧장 가슴에 기댄다. 잠이 들 때까지 품에 안고 어르는 동안 유타로의 숨소리는 점점 고르게 변해 갔다. 그리고 완전히 잠이 들었을 때, 가만히 침대에 눕히고는 얼른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 앞에서 거울을 보자 눈이 새빨개져 있었다. 아, 진짜. 이게 무슨 꼴이야. 이렇게 울어 본 적도 처음이지만, 같이 운 상대가 다섯 살 된 아이라는 사실이 더 황당하다. 언제 보쿠토 씨가 올지 모르니 눈물 자국이라도 지워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세수를 했다. 그래도 눈이 살짝 부어 운 것 같은 티가 났지만 보쿠토 씨라면 이 정도는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거실로 나와 보쿠토 씨가 올 때까지 티브이를 보려고 리모컨을 집는 순간,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확인하니 보쿠토 씨였다. 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 있으니 잠깐만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놀이터까지 왔으면 그냥 들어오지 왜 나오라는 걸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 건가? 근처까지는 택시라도 타고 왔겠지만 내려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 응, 아카아시.

 

어? 목소리가 멀쩡한데?

 

“무슨 일 있으신 건가요? 아니면 술을 많이 드신 거예요?”

- 아니야.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목소리만 들어서는 그가 절대로 회식을 하고 온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정말로 지극히 멀쩡했으니까.

 

“그럼 와서 하세요. 날씨도 쌀쌀한데 왜 밖에서…….”

- 유타로가 있으니까. 지금 잠들었지?

“네. 그래도 아이 혼자 두고 나가는 건 좀…….”

- 잠깐이면 돼. 빨리 나와.

 

그 말을 남긴 채 그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대체 뭐지? 궁금한 마음과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보쿠토 씨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진지해서 그런가? 평소의 활달함과는 확연히 거리가 먼 목소리였다. 이유를 알려면 나가는 수밖에 없으니 나는 얇은 카디건 하나를 걸친 뒤 그가 기다리는 놀이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