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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anzo/HQ!! 글연성

[보쿠아카] 우리 사이의 거리 - 2

[보쿠아카] 우리 사이의 거리 - 2




보쿠토 코타로 X 아카아시 케이지


우리 사이의 거리


Written by. Sanzo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6시 반이었다. 나는 언제나 조금 이른 시간에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을 만들어 먹고 출근 준비를 한다. 입고 갈 슈트와 넥타이를 골라 거울 앞에 섰다. 타이를 매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니 햇살이 별빛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청명할 것 같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도 30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이 여유를 좋아한다. 너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움직이는 게 좋으니까. 시간이 있으니 커피라도 한 잔 마실까? 생각이 미치니 갑자기 너무 마시고 싶어졌다. 마침 갈아 놓은 원두가 있어 금방 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막 한 걸음 움직이는 때였다. 

 

딩동-

 

초인종 소리에 커피가 아니라 현관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구지? 밖을 살짝 내다보자 보쿠토 씨가 다급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뭐지?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보쿠토 씨? 이 시간에 어쩐 일…….

“아카아시! 카레 만들 줄 알아? 카레 말이야. 응?”

 

뭐라고요?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아침부터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카레라니.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이거다. 유타로가 아침부터 카레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어떻게든 만들려던 보쿠토 씨는 손가락만 여러 군데 베였고, 결국 음식다운 것은 아무 것도 만들지 못했다. 그 순간 내가 생각이 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왔다는 거다.

 

30분의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나는 아침부터 바쁘게 카레를 만들었다. 송송송 야채를 써는 모습이 신기한지 유타로가 식탁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보쿠토 씨는 출근 준비를 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대체 그동안 둘이서 어떻게 산 거지? 신기할 따름이다.

 

“케이지, 케이지는 대단해.”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칭찬을 받는 게 의외로 기분이 좋다는 걸 처음 알았다.

 

“왜요?”

“감자를 예쁘게 썰어. 아빠는 이상하게 해. 삐뚤빼뚤.”

 

풋. 웃음이 났다.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손가락 군데군데에 베인 상처가 있는 것만 봐도 알겠다. 그래도 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 노력했다는 점만은 칭찬해 줄만 하다.

 

“유타로는 왜 갑자기 카레가 먹고 싶었어요?”

 

그러자 조금 심통이 난 얼굴로 입술을 비죽거리며 말한다.

 

“나는 벚꽃반인데, 우리 반에 마코토가 있어. 마코토는 맨날 자랑해. 엄마가 카레를 해줬다고. 장난감을 사줬다고.”

 

서툰 말이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고도 남았다. 이 어린 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직접 표현은 못해도 아마 서러웠을 것이다. 자신은 왜 엄마가 없는지 궁금했을 테고. 

 

“많이 만들었으니까 걱정 마요. 유타로가 원하면 또 만들어 줄게요.”

“케이지 좋아! 많이 좋아!”

 

다행히 유타로는 내게 별로 경계심이 없는 것 같다. 보쿠토 씨의 말처럼, 그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있어 나를 좋게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케이지, 근데 왜 선생님처럼 말해? 케이지는 선생님 아니야.”

 

내내 존댓말을 하는 것이 신경 쓰였나 보다. 유타로가 이상하다는 듯 물어본다. 내가 아이에게 존댓말을 했던 건, 처음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지나친 친밀감을 갖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어젯밤 나는 스스로 그것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 입으로 아이를 돌보겠다고 했으니 거리를 두려 해도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거다. 

 

“그럼 편하게 말할까, 유타로?”

“응응!”

 

아이가 좋다면 나도 뭐. 

 

“아카아시, 카레 다 됐어? 나도 한 그릇 줘. 빨리 먹고 가게.”

 

깔끔한 정장을 입은 보쿠토 씨가 유타로 옆에 앉아 카레가 나오길 기다렸다. 정말이지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부자지간이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보냈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평소와 다른 아침이라 더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유타로의 등원도 내가 시켰다. 시간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었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또 자처했다. 그 덕에 보쿠토 씨는 지각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유타로, 오늘도 즐겁게 지내.”

 

손을 흔들자 유타로가 조금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방긋 웃었다. 

 

“응! 케이지 안녕! 이따가 올 거지?”

“그럼. 시간 맞춰서 올게.”

 

그제야 안심한 듯 쪼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보쿠토 씨는 아마도 유타로를 데려다 주고 항상 급히 갔을 것이다. 그래서 인사다운 인사도 몇 번 하지 못했겠지. 때문에 내가 손을 흔들며 자기가 들어갈 때까지 바라봐 주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보면 볼수록 안쓰럽고 마음이 안 좋다. 사랑만 받으며 자라야 하는 나이인데, 유타로는 벌써부터 아빠를 생각하는 아이가 된 것이다. 그게 내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

 

 

 

늦은 오후. 퇴근 시간이 임박해 오자 나는 평소보다 일찍 짐을 챙겼다. 퇴근 후 들를 곳 없이 바로 집으로 향했던 여느 때와는 달리, 이제부터 유타로를 하원 시키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유타로를 데리러 간 날, 유타로는 나를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 영문을 알지 못해 당황하자 곁에 있던 선생님이 아이를 달래며 말해 주었다.

 

“유타로는 늘 제일 마지막에 집에 갔거든요. 친구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한참이나 더 있다가요. 아버님이 항상 늦으셔서 오랫동안 있다 가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일찍 데리러 와 주시니 놀란 것 같아요. 아마 좋아서 우는 걸 거예요.”

 

라며 웃었다.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달래기가 쉽지 않았다. 선생님은 보쿠토 씨로부터 앞으로는 내가 유타로를 데리러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다행이라고 말했다. 유타로가 남아 있어 선생님의 퇴근이 매번 늦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묵묵히 아빠를 기다리며 보냈을 시간을 생각하면 그녀 역시 마음이 아팠을 것이리라.  

 

유타로는 내가 데리러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여긴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마치 자신을 구하러 온 영웅이라도 된 듯이 짠- 하고 나타났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릿해진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하원 시간에 늦지 않으려 조금 일찍 짐을 챙긴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1, 2분 정도 눈치를 보다 먼저 퇴근하겠다는 인사를 남긴 채 후다닥 자리를 뜬다. 그 덕에 오늘도 제 시간에 도착했다.

 

“케이지이이이!”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나를 향해 달려온다. 넘어지니 그러지 말라고 해도 대답만 열심히 할 뿐, 다음 날이 되면 또 똑같다.

 

“오늘 저녁은 뭐가 먹고 싶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타로는 한껏 들떠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종알종알 떠들었다. 그러다 저녁 메뉴에 대해 묻자 활짝 웃으며 문어 모양 소시지가 먹고 싶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 마코토라는 아이가 또 자랑을 한 것 같은데. 뭐, 유타로가 먹고 싶다면 상관없다.

 

“알았어. 그럼 오늘 저녁 반찬은 유타로가 좋아하는 문어 모양 소시지로 하자.”

“응, 좋아! 케이지는 요리 잘해.”

 

보쿠토 씨와 살면서 온갖 희안한 음식을 다 봤는지 유타로는 지극히 평범한 음식만 봐도 맛있다, 잘한다, 라며 칭찬 일색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보쿠토 씨의 집에서 요리를 하며 그 집에서 밥을 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내 방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이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기니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퇴근해서 옷을 갈아입거나 잠을 잘 때가 아니면 거의 보쿠토 씨 집에서 있게 되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유타로가 잠이 들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캔 맥주를 꺼내 마셨다. 별다르게 하는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거나 뉴스에서 화젯거리가 된 일을 말한다거나. 그게 다였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티브이 앞에 앉아 시시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보쿠토 씨가 내게 물었다.

 

“아카아시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지금 만나는 사람이 없어도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잖아.”

 

순간, 이 사람이 나를 떠보는 것인가 했다. 뭔가 알고서 묻는 건 아니겠지? 하긴, 그럴 리가 없다.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어? 괜한 걱정이다. 하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없다고 하는 게 무난하고 편한 답변이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거짓말을 하자니 그것도 싫었다. 그냥 있다고 해도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을 테니 조금만 말해 보기로 했다. 

 

“있어요.”

 

그러자 예상대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곧바로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누군지 말해 보라는 뜻이겠지. 아무리 그렇게 봐도 말 안 할 겁니다. 단호한 태도를 취했지만 보쿠토 씨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뭐가 어때서 말 안 하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럼 말해도 되겠네.”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 뭐가 궁금합니까?” 

“들어도 모르니 말해도 상관없잖아.”

 

아아, 이 사람 성격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의외로 아주 끈질기다는 것. 이참에 눈 딱 감고 말해 버릴까? 아니, 그건 아니다. 곧바로 마음을 접었다. 보쿠토 씨는 다정한 사람이니까 내 고백을 듣고 나면 미안해서라도 어울려 줄지 모른다. 하지만 진짜 마음은 얻을 수 없겠지.

 

“하아…… 이니셜에 H가 들어가요. 됐나요?”

 

대충 머릿속에 떠오른 이니셜을 내뱉었다. 그리고 맥주 한 모금을 마신 뒤 티브이로 향해 있던 시선을 돌리니, 보쿠토 씨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화가 난 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매우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다. 학창 시절에도 몇 번 본 적이 있어 안다. 그런데 왜 그러는 거지? 거슬릴 만한 말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니셜에, H가 들어간다고.”    

“네.”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이니 될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그거, 진짜야? 정말 H가 들어가?”

 

거듭 확인하는 게 좀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상대가 보쿠토 씨라는 것만 모르면 되니까. 그가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들이키고는 조금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 말이야, 졸업한 뒤에도 몇 번인가 학교에 간 적 있어.”

“그랬나요? 제 기억으론 두 번 정도밖에 못 본 것 같은데요.”

“그건 부원들 보러 갔을 때고. 너를 보러 간 적도 있으니까.”

“……!”

 

지금 이게 농담이 아니라면, 놀라도 되는 거지? 보쿠토 씨가 나를 보러 왔었다고?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쿠토 씨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냥 이따끔씩 네 생각이 났어.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자주 났어, 네 생각. 지금쯤이면 4교시 수업 중이겠구나, 부원들 데리고 연습하고 있겠구나, 주장으로서 힘들겠구나, 하는 거 말이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평소에는 시크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툭툭 잘 내뱉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 보쿠토 씨 앞에만 서면 바보가 되는 것 같다.

 

“공강인 날에 가서 몰래 한 번씩 보고 왔지. 하하하, 너무 스토커 같나?”

“말을, 거시지 그랬어요.”

“그럼 몰래 간 의미가 없잖아.”

 

그러면서 또 웃는다. 대체 왜…… 왜 이렇게 내가 오해할 만한 소리만 하는 거지? 이러면 꼭 날 좋아했던 것 같잖아. 친한 후배가 궁금해 찾아온 걸지도 모르는데. 괜히 오버하지 말자.

 

“아카아시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느닷없는 화제 전환에 적응이 잘 안 되지만 그냥 알아듣는 척했다. 그리고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보쿠토 씨도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거잖아요. 실제로 결혼하고 싶었던 상대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막상 질문을 던져 놓고 보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나는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걸까? 아니라는 대답이 나와도 슬플 테고, 그렇다는 대답이 나와도 슬플 거다. 아니라면 날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니 괴롭고, 맞다면 내가 아닌 누구를 좋아하는 걸까? 질투하느라 괴롭고.

 

“있어. 그런 사람.”

 

역시나. 차라리 묻지 말 것을 그랬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감정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헤어날 수 없는 심연에 빠진 것처럼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쿠토 씨가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방 문을 열고 유타로가 나왔다.

 

“아빠, 나 쉬이. 쉬 할래.”

“아, 잠깐만 기다려.”

 

퇴근 길에 소시지와 함께 유타로가 좋아하는 포도 주스를 샀는데, 저녁 때 유난히 많이 마신다 했다. 안 그래도 자다 깰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에 가겠다며 일어났다. 아직 다섯 살이라 잠결에 이불에 실례를 할 법도 한데 유타로는 꼭 일어나서 말을 한다고 하니 참 기특하고 영특하다. 게다가 잘 때 취침용 기저귀도 차지 않는단다. 아이가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린 건 아닐까,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느끼게 된다.

 

화장실에서 나온 유타로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내게로 다가왔다. 자서 자야지. 보드라운 볼을 살짝 만지자 눈썹을 휘며 웃는다. 케이지는 안 자? 응, 잘 거야. 가서 자라는 뜻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예상 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유타로가 내 무릎에 안기듯 엎드리더니 나와 같이 자겠다며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유타로, 케이지는 이따가 집에 가야 해.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면 되니까…….

“싫어어엇! 같이 잘 거야. 케이지랑 잘래!”

 

웬만해서는 자기 고집을 부리거나 떼를 쓰지 않는 유타로가 오늘따라 유달리 칭얼거린다. 누군가의 품이 그리운 걸까? 보쿠토 씨가 있어도 거의 하루 종일 떨어져 있는데다 데리러 오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아서 혼자 보내는 때가 많았을 테니까.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을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 곁에 머물고 싶은 것이겠지. 그렇다고 보쿠토 씨가 아이에게 소홀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부족한 부분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타로는, 내가 그 부분을 채워 줄 수 있으리라 믿는 것 같다.

 

나는 맥주 캔을 내려놓고 유타로를 품에 안았다. 잘 울지 않던 아이가 커다란 눈에 방울방울 눈물을 매달고 있다. 아이를 안은 채 그대로 일어나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괜찮아, 여기 있을 테니까 안심해. 울먹이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잠시 후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다시 잠이 든 것 같았다. 보쿠토 씨는 아이를 받아 방에 눕히려 했지만 유타로가 내 옷깃을 꽉 잡고 있어 쉽지 않았다. 두어 번 시도하다 결국 포기했다.

 

“미안해, 아카아시.”

 

보쿠토 씨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사과했다. 나는 유타로를 안은 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누웠다. 커다란 침대는 우리 세 사람이 다 누워도 넉넉할 정도였는데, 보쿠토 씨는 기어코 바닥에서 자겠다며 따로 이불을 깔았다. 이 방은 보쿠토 씨가 쓰는 방이고, 유타로는 다른 방에서 자는데 나를 잡고 놓질 않으니 하는 수 없이 아이 방에 누으려고 했다. 하지만 보쿠토 씨는 자세도 불편한데 작은 침대에 누우면 허리가 아플 것이라며 굳이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나와 유타로에게 침대를 내주고 자신은 바닥에서 자겠단다. 셋이 누워도 충분할 것 같은데. 하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 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이건 내 욕심이다. 그러니 보쿠토 씨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유타로를 핑계로 나 역시 이 집에서 자고 갈 구실을 만든 것뿐이니까. 물론 아이도 좋다. 이제는 정말로 좋아졌다. 그렇게 거리를 벌리려 했건만, 그때마다 유타로는 순수하게 성큼 다가와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니 좋아할 수밖에.

 

“이러고 있으니까 학교 때 합숙 생각난다.”

 

합숙이라.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옆자리에 누워서 자곤 했었는데. 

 

“보쿠토 씨는 항상 눕자마자 잠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뭔가 생각날 만한 게 있나요?” 

“와, 너무해. 나 그렇게 빨리 잔 적 없거든?”

“제가 방금 ‘항상’이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진짜, 아카아시. 하나도 안 변했어. 이럴 땐 적당히 맞춰 달라고.”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린다. 웃음 소리와 성격은 그때 그 시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학창 시절의 보쿠토 씨와. 그의 말대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다. 십대 때의 우리로.

 

“고마워.”

 

무엇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보쿠토 씨가 이어서 말했다.

 

“내 옆에 있어 줘서.”

 

목소리가 느릿하고 점점 작아지는 것이, 잠이 오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니 곤히 잠든 얼굴이 보인다. 그렇게 빨리 잠든 적 없다더니. 역시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네요, 보쿠토 씨. 왜 그런 줄 아세요? 저는 항상 당신을 보고 있었거든요. 같이 있는 시간이면 언제나. 그러니까 아마 제가 당신보다 당신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내 품에 안겨 잠든 아이. 그리고 비록 자리는 떨어져 있지만 나를 향해 누워 자는 보쿠토 씨까지. 마치 내가 이 집의 가족 구성원이 된 것 같아 괜스레 흥분이 되었다. 늦은 밤인데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 기분 좋은 떨림과 흥분을 오래 간직하고 싶으니까.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사라질까 겁이 났다. 그러니 이 순간만이라도 마음껏 만끽해야지.

 

보쿠토 씨, 유타로. 잘자요.